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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의 교육이데아] 한일 IB 역사 공동수업이 보여준 미래

◆교육과혁신연구소장

교과 차이 분석한 양국 학생들

감정 앞서기보다 사실로 소통

공감대 이뤄 한일관계에 희망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이달 15일 서울대에서 한국IB교육학회 학술대회가 열렸다. 특히 눈길을 끈 세션은 제주 국제바칼로레아(IB) 학교인 표선고와 일본 나가노 요시다고교의 한일 역사 공동 수업 사례였다. 한국과 일본의 고교생들이 양국 역사 교과서를 직접 비교·분석하고 그 차이를 화상으로 상호 발표한 수업이었는데 필자도 그 수업을 직접 참관했다.

일본 학생들은 한국 교과서에서 독일 히틀러, 이탈리아 무솔리니, 일본 히로히토가 나란히 소개된 구도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731부대는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아우슈비츠·난징대학살과 함께 기술된 것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한국 교과서에는 일제 강점기 부분에 ‘강제’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위안부 피해자 증언·사진도 두 쪽에 걸쳐 자세히 다룬 반면 일본 교과서는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고 짧게 다루고 ‘강제 연행된 사례도 있다’는 식으로 서술해 한국에 비해 강제성과 범죄성을 모호하게 표현한 점을 주목했다. 자신들이 17세인데 비슷한 나이에 강제 동원된 소녀들의 고통에 대한 안타까움도 표현했다.

한국 학생들은 일본 교과서가 태평양전쟁의 명분과 각종 건설·개발 중심으로 서술된 반면 한국은 강제징용·위안부·신사참배 강요 등 인권 피해 중심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강제 연행’으로 표현하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내선일체를 내세워 인력·물자 수탈을 침략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전시 동원’으로 설명한 차이도 포착했다. 항복과 관련해서도 일본 교과서는 원폭 피해만 강조하며 패전국으로서의 아픔을 부각한 반면 한국은 독립운동과 전범 재판 등 전후 처리 중심이라는 점도 주목했다. 한국 교과서 역시 일본의 원폭 피해를 깊이 다루지 않아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게 한 측면이 있다고 성찰했다.



학생들은 양국 교과서의 기술·표현·편집 구도 차이를 비교하며 역사 갈등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이들은 “왜 우리 교과서에는 이 내용이 없을까” “왜 이렇게 다르게 서술했을까” 등을 질문하면서 서로를 비난하기보다 자국 교과서의 한계와 선택을 성찰했다.

2019년 시바 쿠마리 IBO 회장이 제주교육청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했을 때가 기억난다. 당시 우리는 태평양전쟁의 흔적인 비행기 격납고를 함께 둘러봤다. 수행단의 일본 대표와 필자는 “언젠가 한일 IB 학생들이 역사 공동 수업을 하면 좋겠다”는 대화를 나눴는데 그게 현실이 된 것이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암기하는 과목이 아니라 기억과 망각, 서술과 침묵의 구조를 읽어내는 훈련이어야 한다. “우리 교과서는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 그 침묵은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한가, 다른 나라는 같은 사건을 어떻게 가르치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역사 교육은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번 한일 IB 역사 공동 수업은 정치 구호나 외교 수사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장면을 보여줬다. 이 조용한 교실 속의 대화가 정치와 외교의 언어가 미처 닿지 못하는 곳에서 한일 관계의 미래를 조금씩 바꿔나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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