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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6 근무하는 中에 반도체시장 다 내줄판"…업계 호소에도 '주52시간 예외' 불발

■'주52시간' 족쇄 못 푼 반도체

'근로시간 관련 국회에서 노력한다'

부대의견 달아 우회로 만들었지만

"특정 업계만 예외땐 제도 흔들려"

美 고소득직 노동시간 규제 없고

中도 R&D 분야 '몰입근무' 허용


여야가 막판 진통을 거듭하던 반도체특별법 제정에 합의를 이뤘지만 핵심 쟁점이었던 ‘주52시간제 예외’가 빠지면서 반쪽짜리 지원책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야는 주52시간제 적용·예외를 두고 진통을 거듭하는 사이에 반도체 시장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일단 후속 논의의 여지를 남기고 국회 문턱을 먼저 넘기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부대 의견을 통해 절충점을 찾기는 했지만 노동계 눈치를 보는 여당이 길을 터줄 가능성이 낮아 주52시간제 적용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반응이다.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25일 여야가 합의한 반도체특별법 제정안에는 ‘반도체 연구개발(R&D) 현실을 고려한 근로시간 등에 대해 국회에서 노력한다’는 취지의 부대 의견이 달린다. 1년 넘게 공전을 거듭한 특별법 처리를 위한 우회로인 셈이다. 다만 부대 의견의 경우 근로시간과 관련한 강제 규정이 없고 ‘노력한다’는 문구가 모호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산업계 관계자는 “이를 근거로 향후 제도 개선을 요구할 수는 있겠지만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는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 출신인 양향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날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특별법 통과가 늦어지면 산업계가 받을 충격을 상쇄하기 어렵다”며 “논쟁이 길어지는 주52시간 예외를 빼서 우선 특별법 제정에 드라이브를 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별법은 그대로 통과를 시키고 향후에 정부 반대로 막힌 근로시간 부분을 따로 논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한 것”이라며 “이에 대해 당 지도부가 동의를 했다”고 설명했다.

주52시간제가 산업계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업계(반도체)만 예외를 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논리도 영향을 미쳤다. 정치권 관계자는 “주52시간제를 특정 업계에만 예외해주면 어렵게 안착한 제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52시간이라는 숫자 자체보다 업계의 핵심 인력들이 성과를 내면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야의 합의 과정은 지난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달 SK하이닉스를 찾아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도체특별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면서도 “기업의 발목을 잡는 주52시간 제한도 우리 당이 반드시 풀어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4월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반도체특별법에는 반도체 산업 지원 방안이 담겼으나 국민의힘이 요구하는 근로시간 완화 조항은 빠진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가 13일 “27일 본회의까지 여야 합의가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며 이달 국회 통과 목표를 제시했고 여야가 물밑 조율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특별법 여야 합의를 위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는 이르면 이번 주 열릴 예정이다. 소위를 거치면 산자위 전체회의와 법사위를 거쳐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정파를 떠나 국내 반도체 업계 지원책을 마련한 게 의미가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결국 근로시간 규제 해소 부분은 원안 그대로 아니냐”며 근로시간의 한계를 극복할 차선책을 모색할 방침이다. 업계도 정책 지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선두 추격을 시도하는 한편 추가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주52시간 근로 규제가 인공지능(AI) 산업을 선점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기술 개발 전쟁에서 한국 기업의 발목을 잡을 우려가 크다고 지적한다.

AI는 챗GPT처럼 검색 기능에 집중된 생성형 AI 단계에서 인간의 전문 영역을 대체하는 에이전틱 AI, 나아가 로봇과 모빌리티로 이식되는 피지컬 AI로 진화하고 있다. AI가 현실 세계의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면서 관련되는 기술과 산업도 팽창하고 있다. AI가 학습하고 추론하는 데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 텐서처리장치(TPU),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의 수요가 폭증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우리 기업들은 HBM 등 메모리반도체에서는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GPU와 같은 시스템반도체에서는 여전히 글로벌 업체들을 추격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동시에 정부 지원 받아 빠른 속도로 경쟁력이 올라오고 있는 중국 기업들도 따돌려야 하는 입장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I는 선두 업체가 시장을 싹쓸이하는 주도권 싸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앞서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며 “미국은 고소득 전문직은 노동시간 규제를 받지 않는데 우리만 주52시간 규제에 갇혀 있으면 R&D 분야에서 앞서기가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기술 굴기를 위해 996(주 6일, 오전 9시~저녁 9시)을 넘어 007(24시간, 7일) 근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R&D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R&D는 시간 제한을 두기보다는 프로젝트 단위로 몰아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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