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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일자리에…직업계고 학생들 "다시 대학으로"

◆직업계고 취업률 4년새 57.8%→55.2%

대학진학 수요는 매년 증가세

학교선 "일반고보다 내신 쉽다"

학교 내 자소서반 등장하기도

전문대와 교육과정 연계하는 등

교육부, 대대적 질적 개편 필요





20일 오후 6시 서울 강남의 한 특성화고등학교 학생 대상 입시학원. 교실 문이 열리자 후드티·생활복 차림을 한 학생들이 하나둘 파란 책상 앞에 자리를 잡았다. 학교에서 마련한 고졸 취업 교육과정인 전공 실습 수업을 마치자마자 학원으로 달려온 특성화고 학생들은 대학 진학용 내신 시험 대비를 위해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가 나오는 문제집을 펼쳤다.

강남의 한 디자인고에서 인테리어를 전공하는 조가원(18) 양은 “우리 과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는 한 명 있을까 말까”라고 말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박건우(18) 군도 “내신 경쟁을 피하기 위해 대치동 학군 중학교 출신들도 특성화고에 온다”고 했다.

25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청년 취업난이 이어지는 가운데 ‘산업 현장 전문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는 직업계고의 취업률이 매년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대학 진학을 택하는 학생은 늘어나면서 직업계고의 설립 취지가 갈수록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교육부가 발표한 ‘2025 직업계고 졸업자 취업통계’를 보면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일반고 직업반 등 직업계고 졸업자의 취업률은 2022년 57.8%에서 올해 55.2%로 매년 하락하고 있다. 반면 대학 진학률은 같은 기간 45.2%에서 49.2%로 상승해 전체 졸업생의 절반에 육박했다. 올해의 경우 전문대학 진학자는 1만 5648명(진학자 중 53.3%), 일반대학 진학자는 1만 3725명(46.7%)이었다.



청년 취업난이 심화되는 가운데 ‘고졸 취준생’의 선택지가 좁아지자 대학으로 눈을 돌리는 학생이 늘어나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입시에서 특별전형을 활용할 수 있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진학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나마 있는 고졸 일자리도 계약직 아니면 최저임금 수준이라 차라리 대학 가서 아르바이트하는 게 낫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대학 진학에 대한 학부모 관심도 인문계고 못지않다. 학원에는 ‘전문대는 절대 안 된다’ ‘수업만으로는 부족하니 과외를 붙여달라’는 식의 요구도 빗발친다. 입시학원을 운영하는 고혜영(45) 원장은 “특성화고에서 바로 취업하는 길은 사실상 막혔다”며 “고졸 채용이 줄어들면서 특성화고에도 ‘최소한 전문대는 나와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전했다.

일부 특성화고는 아예 학교 차원에서 ‘일반고보다 내신 따기가 쉽다’며 대학 진학 홍보전에 나서기도 한다. 수도권 특성화고 교사 박 모 씨는 “방과후 프로그램을 신설해 자기소개서 작성 등 진학을 돕고 있다”며 “전공 관련 활동이 많아 생활기록부에 쓸 내용이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직업계고의 초점이 진학으로 옮겨가면서 본래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부가 내놓은 ‘직업계고 재구조화 정책’은 오히려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학과 개편을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교원 전문성 강화나 장비 확충 없이 학과 명칭만 바꾸는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인공지능(AI) 관련 미디어학과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AI 기반 영상 편집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챗GPT에게 물어보라’는 얘기도 들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직업계고의 취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양보다 질에 초점을 맞춘 지속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교육부가 재구조화 사업으로 매년 직업계고 학과 100여 개를 개편하고 있지만 이후 운영 실태까지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가하는 대입 수요에 맞춰 전문대와의 교육과정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강문상 한국고등직업교육학회장은 “기술직도 석박사 학위를 마련해야 한다”며 “고등학교부터 석사 과정까지를 통합하는 ‘평생직업교육대학’ 설립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선취업 후진학 제도나 전문대와 연계된 기회를 확대하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취업률 제고를 위해 채용연계형 현장 실습을 내년 2000명까지 확대하고 협약형 특성화고를 늘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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