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11월 30일(현지 시간) 생성형 인공지능(AI) 시장의 포문을 열며 기술 혁명의 대명사로 통하던 ‘챗GPT’의 아성이 3년 만에 흔들리고 있다. 검색엔진과 운영체제(OS) 공룡인 구글이 제미나이의 성능을 급격하게 끌어올리면서 AI 혁명의 후발 주자에서 선두로 올라설 조짐을 보이고 있는 까닭이다. 특히 지난 18일 구글이 ‘제미나이 3’을 공개한 뒤부터는 오픈AI의 챗GPT가 기술 경쟁에서 밀리게 된 게 아니냐는 진단까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최근 월가에서도 오픈AI의 핵심 협력사인 엔비디아에 투자했던 자금을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으로 돌리려는 분위기가 강하게 감지되고 있다. ‘AI 거품론’이 증시에 여전히 남은 상태에서 최종 승자가 될 기업을 가리려는 월가 투자자들의 셈법이 한층 더 복잡해진 모양새다. AI 산업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아직은 엔비디아 의존도가 높은 한국 반도체 기업의 전략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구글, ‘제미나이3’ 잇딴 찬사에 ‘나홀로’ 강세…엔비디아·MS 하락 속 시총 3위 ‘껑충’
24일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0.44%,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55%, 나스닥종합지수는 2.69% 오르며 21일에 이어 2거래일 연속 상승 곡선을 그렸다. 특히 나스닥지수는 지난 5월 12일(4.35%)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르며 최근 부진을 만회했다.
이날 뉴욕 증시의 상승세를 이끈 기업은 구글이었다. 알파벳은 6.31% 뛰어올라 전체 기술주 강세를 이끌었다. 알파벳은 특히 최근 AI 거품론 속에서도 주가를 강하게 방어하며 다른 기업들과 차별화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알파벳은 올 9월 15일 상장 21년 만에 처음으로 시가총액 3조 원을 돌파한 데 이어 이달 21일에는 마이크로소프트까지 제치고 시총 3위 기업으로 뛰어올랐다. 지난달 말만 해도 281.19달러에 불과했던 주가는 이달 들어 13.3% 이상 치솟으면서 24일 318달러를 넘어섰다. 알파벳의 시총 규모(3조 8437억 달러)는 이제 2위인 애플(4조 771억 달러)에도 바짝 다가섰다.
이는 이 기간 시총 1위 기업인 엔비디아가 3분기(8~10월) 호실적에도 거품론를 극복하지 못하고 9.8% 떨어진 것과는 크게 대비되는 행보다. 오픈AI와 연관된 또 다른 기업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도 이달 들어 24일까지 8.5% 추락했다.
구글에 뭉칫돈이 몰리는 데에는 이달 18일 출시한 제미나이 3의 영향이 컸다. 구글은 출시 첫날부터 제미나이 3을 자사 검색 서비스에 곧바로 적용하는 초강수를 뒀다. 이용자들이 구글 검색창에 검색어를 입력한 뒤 ‘AI 모드’ 탭을 누르기만 하면 손쉽게 제미나이 3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구글이 AI 전략을 바꿨음을 알리는 강력한 신호였다. 이전까지 월가에서는 구글이 핵심 매출원인 검색 광고 부문의 손해를 피하기 위해 AI를 소극적으로 도입한다고 의심했다. 제미나이 3은 구글이 AI를 통해 검색 부문의 지배력까지 강화할 수 있다는 기대를 낳기에 충분했다. 구글 검색의 AI 모드는 미국 시장부터 먼저 적용하고 한국 등 다른 국가에는 순차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18일 제미나이 3을 공개하며 “전례 없는 수준의 깊이와 어감(뉘앙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최첨단 추론 능력을 갖췄다”며 “출시 첫날부터 제미나이 모델을 검색에 적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구글은 제미나이 3을 인간의 과제를 대신하는 AI 에이전트로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구글 안티그래비티’도 이날 함께 선뵀다.
제미나이 3에 대한 이용자들의 반응도 올 3월 제미나이 2.5를 선보였을 때보다 훨씬 열광적이었다. 이는 지난 8월 7일 혹평을 받았던 오픈AI의 GPT-5와 비교해도 판이하게 다른 반응이었다. 제미나이3은 이용자가 직접 평가하는 ‘LM아레나 리더보드’에서 기존 수위권이었던 ‘그록’ 4.1과 제미나이 2.5프로를 제치고 1501점으로 정상을 차지했다. 또 가장 어려운 AI 성능 평가로 불리는 ‘인류 마지막 시험’에서도 37.5%의 최고 점수를 받아 제미나이 2.5 프로(21.6%)와 GPT-5.1(26.5%)을 모두 뛰어넘었다. 경시대회 수준의 수학 문제 가운데 가장 어려운 항목으로 구성된 ‘매스아레나 에이펙스’에서도 기존 최고 점수인 5.21%를 크게 웃도는 23.4%를 기록했다.
4~5년 뒤 컴퓨팅 용량 1000배로…데이터센터 투자 넘어 칩 성능 개선 박차
구글에 대한 기대는 제미나이 3 출시에 따른 일회성 이슈로 그치지 않았다. 이 회사가 광범위한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기반으로 이미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투자 여력과 기술 협업 생태계 조성 측면에서 경쟁사를 앞설 수 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21일 CNBC가 공개한 아민 바흐다트 구글 클라우드 부사장의 ‘AI 인프라’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업은 경쟁사를 따돌리기 위해 컴퓨팅 능력 향상에 사활을 걸고 있다. CNBC에 따르면 바흐다트 부사장은 지난 6일 전사 회의에서 이 보고서를 공유하며 “6개월마다 컴퓨팅 용량을 두 배로 늘려야 하고, 4∼5년 뒤에는 1000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흐다트 부사장은 이어 “기본적으로 같은 비용과 전력·에너지로 1000배 높은 용량과 컴퓨팅, 네트워크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며 “데이터센터 등 물리적 인프라 확충뿐 아니라 자체 개발한 AI 칩 성능 개선으로도 처리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AI 모델 성능을 물리적 투자로만 향상시키는 게 아니라 자체적인 기술 발전으로도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피차이 CEO는 과잉 투자를 우려하는 한 직원의 질문에 “이런 시기에는 투자 부족의 위험이 매우 크다”고 맞받아쳤다. 피차이 CEO는 “내년 AI 시장은 경쟁이 치열할 것이고 분명히 기복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구글의 재무 건전성을 언급하며 “우리는 다른 기업들보다 실수를 더 견딜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강조했다.
월가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챗GPT에 뒤처진다고 평가받던 구글의 AI 기술에 대한 시각을 바꾼 지점은 또 있다. 최근 은퇴를 선언한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회장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식 보유 변화다. 17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버크셔 해서웨이는 AI 대응에 부진한 애플 주식을 지난 3분기 추가 매도해 지분 보유량을 기존 2억 8000만 주에서 2억 3820만 주로 줄였다. 그 대신 알파벳 주식을 43억 달러(약 6조 3500억 원)어치 새로 매집해 보유량을 1785만 주로 늘렸다.
미국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샘 올트먼 오픈AI CEO도 제미나이 3이 출시되기 전 시범 서비스를 미리 접한 뒤 지난달 회사 직원들에게 메모를 공유하고 “구글의 AI 발전이 회사에 일시적인 경제적 역풍을 일으킬 수 있다”며 “당분간 분위기가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xAI를 설립해 그록을 개발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19일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이례적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남기며 제미나이 3의 성과를 인정했다.
‘앤스로픽과 파트너십’ MS, 오픈AI 의존도 줄여…‘순환 거래’ 우려도 여전
구글과는 반대로 오픈AI와 챗GPT의 위상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오픈AI는 올트먼 CEO와 그렉 브록먼 오픈AI 회장, 머스크 CEO가 구글에 대항하기 위해 2015년 비영리 단체로 만든 조직이다. 2022년 11월 30일 챗GPT를 세상에 처음 선보인 뒤 승승장구한 덕분에 지금은 비영리 재단이 영리 추구 자회사를 지배하는 식으로 조직 구성이 복잡하게 바뀌었다. 월가에서 추산하는 오픈AI의 기업가치는 무려 5000억 달러(약 737조 원)에 달한다. 이는 전 세계 비상장 회사 가운데서는 최대 규모다.
실제 오픈AI의 초기 투자사인 마이크로소프트(MS)는 18일 앤스로픽, 엔비디아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으며 일종의 ‘보험’을 들었다. 해당 협약으로 엔비디아는 100억 달러, 마이크로소프트는 50억 달러, 총 22조 원가량을 앤스로픽에 투자하기로 했다. 오픈AI 출신들이 2021년 설립한 앤스로픽은 그간 구글과 아마존에서 주로 투자를 받았다.
앤스로픽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 클라우드 서비스 300억 달러(약 44조 3000억 원)어치를 구매해 컴퓨팅 용량을 최대 1기가와트(GW)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 AI 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업 고객에게 앤스로픽의 모델 ‘클로드’를 제공한다. 대상 클로드 모델은 소넷 4.5, 오퍼스 4.1, 하이쿠 4.5 등이다. 클로드는 아마존웹서비스(AWS)와 구글 클라우드,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등 세계 3대 클라우드 서비스 모두에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AI 모델이 됐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앤스로픽의 모델을 사용하고 그들은 우리의 인프라를 활용하면서 함께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함께 협약을 맺은 엔비디아는 앤스로픽 모델이 성능·효율성·비용을 최적화할 수 있도록 하는 설계와 엔지니어링 작업에 참여한다. 앤스로픽은 엔비디아의 ‘그레이스 블랙웰’ ‘베라 루빈’ 등을 활용해 1GW 규모의 컴퓨팅 자원을 활용한다. 앤스로픽이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의 투자를 받고, 이 투자금으로 다시 엔비디아의 칩을 장착한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를 구매하는 일종의 ‘순환 거래’ 계약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19일 이 거래를 가리켜 “2022년 말 챗GPT를 출시한 이후 넘어서야 할 존재였던 오픈AI의 지배력이 위협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면서 구글의 제미나이 3을 두고는 “엔비디아 반도체 대신 자체 칩으로 훈련하는 덕분에 오픈AI보다 잠재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오픈AI와 엔비디아가 마주한 그래픽 처리장치(GPU) 감가 연한 논란 등에서 구글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진단이었다. 금융투자 회사 DA 데이비슨의 길 루리아 분석가도 이날 로이터통신에 “이번 협력의 핵심 요소는 AI 경제가 오픈AI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엔비디아가 올 9월 22일 오픈AI와 손잡고 최대 1000억 달러(약 140조 원)를 투자해 10GW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고 밝힌 계획에 대해서도 월가는 여전히 순환 거래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19일 젠슨 황 CEO가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순환 거래 문제와 거품론을 정면 반박했음에도 월가는 다음날 엔비디아를 대량으로 매도했다. CNBC에 따르면 올트먼 CEO는 지난 8월 기자들과 만난 저녁 자리에서 15초 동안 ‘거품’이란 표현을 세 차례나 반복하고 “이미 통제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하며 AI 거품론을 스스로 먼저 띄웠다. 이코노미스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픈AI를 중심으로 한 순환 거래가 시장을 매료시켰으나, 이제 투자자들은 이에 대해 겁을 먹고 있다”고 전했다.
12월 성적 대화 규제 완화…챗GPT 미래, ‘엔비디아 의존’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영향
AI 경쟁의 압박이 심해지자 오픈AI도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전략을 시도하고 나섰다. 올트먼 CEO는 지난달 14일 X에 글을 올리고 “12월에는 연령 제한 기능을 더 완전히 도입하면서 ‘성인 이용자는 성인답게 대하자’는 원칙에 따라 인증된 이에게는 성애 콘텐츠(erotica) 같은 훨씬 더 많은 것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올트먼 CEO는 같은 달 15일에도 X에 글을 쓰고 “우리는 세계에서 선출된 도덕 경찰이 아니다”라며 비판 여론을 반박했다.
오픈AI는 이달 20일 데이터센터용 하드웨어 개발을 위해 대만 폭스콘(홍하이정밀공업)과도 손을 잡았다. 미국 내 시설에서 데이터센터 장비를 생산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잠재적 관세를 피하겠다는 목적의 협업이다. 오픈AI는 AI 산업의 하드웨어 수요 정보를 공유하고, 폭스콘은 하드웨어 설계·제조를 맡는다. 오픈AI는 현재 브로드컴과도 협업하면서 자체 맞춤형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구글과 오픈AI·엔비디아를 중심으로 한 AI 생태계의 미래는 한국 기업과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전망이다. 앞서 올트먼 CEO는 지난달 1일 한국을 방문해 오픈AI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고대역폭 메모리(HBM) 공급 투자 의향서(LOI)를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와 각각 체결한 바 있다. 스타게이트는 오픈AI가 소프트뱅크, 오라클과 함께 5년간 500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전역에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올트먼 CEO는 같은 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도 이재명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과 만나 미래 협업 문제를 논의했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HBM 제품의 주요 매출처가 엔비디아에 쏠린 점도 우리 경제에는 변수다. 구글이 제미나이의 시스템을 자체 개발 추론 칩 텐서처리장치(TPU)를 중심으로 구축하면서 엔비디아 GPU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낮춘 까닭이다. 구글 TPU 설계·제조의 핵심 협력 회사는 주가가 24일 하루에만 11.10% 치솟은 브로드컴과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다. 구글 TPU의 사용 증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서도 HBM 공급 다변화·확대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제미나이 3 출시를 기점으로 AI 모델 간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지면서 최종 승자 유력 후보에 대한 월가의 투자 쏠림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기준으로 챗GPT의 주간활성이용자 수는 약 8억 명으로 아직은 제미나이보다 훨씬 많은 상태다. 제미나이는 같은 시기 주간이 아닌 월간활성이용자 수조차 약 6억 5000만 명 정도 밖에 안 된다. 관건은 구글이 제미나이를 검색엔진, 유튜브, 지도 등 거대한 자체 데이터 생태계에 얹으면서 기존 경쟁 구도에 균열을 만들 수 있는가다. 구글은 아직 수익도 못 내는 오픈AI보다 재무 건전성에서는 크게 앞서고, 엔비디아 칩과 같은 외부 제품·서비스에는 덜 의존한다. AI 거품론이 커질수록 주식시장에서 그나마 반사 이익을 얻는 기업은 단기적으로 구글이 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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