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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살았던 웃음 되찾아"…쪽방촌 밝힌 서울대 치대생들[르포]

서울역 '우리동네구강관리 플러스센터'

쪽방촌 주민들에게 무료 치과진료 제공

서울시·우리금융미래재단·서울대 협력

개소 후 이용자 1118명·진료 2766건

"미래 의료인으로서 나눔의 가치 배워"

17일 권호범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와 서울대 치의학과 학생들이 서울 용산구 우리동네구강관리 플러스센터에서 진료를 보고 있다. 정유나 기자




“어르신, 새 틀니 잘 맞으세요? 초반에는 조금 불편할 수 있어요.”

17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우리동네구강관리 플러스센터’. 설선홍(28) 씨는 환자의 입안을 살피며 틀니의 위아래가 맞물리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서울대 치의학과 3학년인 그는 올해 7월부터 2주 간격으로 이곳에서 의료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자 설 씨는 “식사를 잇몸으로 하다 상처가 난 것 같다”며 능숙하게 연고를 발랐다.

지난해 7월 서울역 쪽방촌에는 서울시 쪽방상담소에 등록된 주민들을 위한 무료 치과가 문을 열었다. 앞서 2022년 12월 종로구에 마련된 쪽방촌 치과 1호점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자 두 번째 센터가 개소한 것이다. 1호점에서는 ‘행동하는의사회’가, 2호점에서는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 10여 명과 재학생들이 주 3~4회 주민들을 진료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쪽방 주민과 식사하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치아가 좋지 않아 고기를 먹지 못한다’는 사연을 듣고 추진됐다. 서울시가 공간을 마련하고 우리금융미래재단이 인건비와 사업비를 지원하는 구조다. 운영 1주년을 넘긴 2호점은 올해 10월 말까지 1118명에게 진료 2766건을 제공했다. 진료 내용은 틀니조정 464건, 충전 치료 354건, 신경치료 107건 등이다. 곧 개소 3주년을 맞는 1호점은 누적 이용 인원이 2187명을 넘어섰다.

이날 2호점에는 권호범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의 지도 아래 학생 4명이 각각 환자를 맡고 있었다. 학생들은 ‘오른쪽 치아 치료받고 괜찮으셨어요?’, ‘시린 느낌이 들면 손 들어주세요’라며 환자들의 상태를 세심히 확인했다. 권 교수는 뒤에서 지켜보다 “물이 조금 많이 들어간 것 같다”는 등 필요한 조언을 건넸다. 그는 “봉사활동이라도 실수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긴장을 놓칠 수 없다”며 “활동이 끝나면 학생들에게 부족한 점에 대해 피드백한다”고 말했다.



운영 초기에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예약 시간에도 주민들이 나타나지 않아 사회복지사가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틀니 조정이나 신경치료처럼 여러 차례 내원이 필요한 진료는 설득 과정이 필수였다. 센터 전담 인력인 치과위생사 전현미(57) 씨는 “초반에는 ‘정말 공짜가 맞냐’며 의심하는 분도 많았다”며 “점차 입소문이 나고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스스로 찾아오는 주민들도 생겼다”고 설명했다.

실제 주민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이날 깨진 앞니를 치료받은 최만수(55) 씨는 “이제는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다”며 “가지런한 치아 덕분에 더 열심히 살 힘이 생기는 것 같다”고 전했다. 틀니를 맞춘 김영국(69) 씨는 “동자동에서 30년을 살았지만 치과 진료는 처음”이라며 “새 이빨은 잘 관리할 생각”이라고 웃어 보였다. 센터에서는 진료뿐만 아니라 구강관리 교육도 이뤄진다. 올바른 칫솔질과 틀니 관리법 등을 알리는 캠페인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교수진은 프로그램이 교육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치아 사례를 경험하고 미래 의료인으로서 나눔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설 씨는 “구강 상태가 사회·경제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주민들로부터 ‘식사할 때 훨씬 편하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뿌듯하다”고 말했다. 한동헌 센터장(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은 센터의 궁극적인 목표가 ‘참의료를 행하는 치과의사 양성과 봉사 가치 실현’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는 서울시의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철학이 새로운 복지사업으로 정착하게 됐다는 데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도 시민들의 삶을 촘촘하게 챙기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17일 서울 용산구 우리동네구강관리 플러스센터 개소 1주년을 맞아 주민들이 붙여둔 포스트잇. ‘앞으로도 오래 함께해요’, ‘잊고 살았던 웃음을 찾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정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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