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광주의 학살자', 끝내 사죄는 없었다…전두환 사망 4년, 남겨진 기록들 [오늘의 그날]



그날의 뉴스는 지나갔지만, 그 의미는 오늘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의 그날’은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지금을 읽습니다.<편집자주>


전두환씨가 향년 90세로 사망한 2021년 11월 23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조문객이 조문하고 있다. 뉴스1




2021년 11월 23일, ‘전(前) 대통령’ 전두환씨가 5·18 유족에 대한 단 한마디의 사과 없이 생을 마감했다. 향년 90세.

전씨는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해 통제했다. 이후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며 수백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그럼에도 그는 끝내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생전 고(故) 조비오 신부가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하자 “성직자란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고, 이 발언으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재판까지 받았다.

1980년대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으로 ‘경제 대통령’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지만, 그의 마지막은 쓸쓸했다. 바로 한 달 전인 10월 26일 세상을 떠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식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노태우씨 빈소에는 여야 대선 주자와 정치권 인사들이 조문을 왔지만, 전씨의 빈소에는 주요 정치권 인사들이 발길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 역시 조문이나 조화 없이 “유가족 위로”라는 짧은 메시지만 남겼다.

1996년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한 전두환씨가 법정에 나선 모습. 그는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목적 살인 등의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MBC뉴스 갈무리


◇ 사과 없는 40년…“법은 존중한다” 했지만 책임은 끝내 부정=전씨는 집권 과정부터 5·18 유혈 진압까지 이어진 핵심 책임에 대해 생전에 단 한 차례도 명확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1979년 10.26 사건 직후, 그와 하나회 세력은 혼란을 틈타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군권을 장악했고, 이 과정에서 학생·정치인·재야인사 등 2699명이 대거 구금됐다. 이후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5·18 민주유공자유족회는 2005년 사망자를 606명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전두환은 이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1988년 백담사로 정치적 유배에 오른 뒤에도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1995년 반란수괴·내란목적살인 등 13개 혐의로 구속됐을 때조차 그는 “정치적 이유로 특별법까지 만들어 재조사하는 데 응할 이유가 없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2017년 출간한 회고록에서는 조비오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표현해 논란을 키웠고, 결국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는 징역 8개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며, 항소심 결심을 앞둔 상태에서 생을 마감했다.

정의당은 2019년 12월 12일 전두환씨가 '12·12 군사반란' 당일인 이날 쿠데타 주역인 하나회 멤버들과 함께 서울 강남에 위치한 고급식당에서 1인당 20만원 상당에 달하는 고급 점심식사를 했다고 밝혔다. 뉴스1


특히 2019년 12월 12일, 12·12 군사반란 40주년 당일 포착된 장면은 큰 공분을 일으켰다.

전씨는 이날 서울 강남의 고급 중식당에서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 최세창 전 공수여단장 등 군사반란 핵심 인물들과 함께 1인당 20만 원 상당의 코스요리를 즐겼다.

임한솔 당시 정의당 부대표는 “전두환이 은색 양복 차림으로 계단도 거뜬히 오르내릴 만큼 건강한 모습이었다”며 “샥스핀 코스요리에 와인까지 곁들이며 식사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시점이었다. 당시 전씨는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사건에 대해 “알츠하이머 때문에 재판 출석이 어렵다”고 주장하던 때였다. 그러나 공개된 영상 속 그는 정상적으로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재판은 못 가면서 호화 만찬은 즐긴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2021년 10월 27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 왼쪽엔 문재인 대통령의 근조화환이 오른쪽에는 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씨의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뉴스1


△ 노태우 측은 사과했지만…전두환은 끝내 “발포 명령 없었다” 주장=전씨와 같은 해 10월 26일 세상을 떠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에는 여야 지도부와 대선 주자들이 조문을 왔다. 두 사람 모두 하나회 출신이었지만, 반응은 극명하게 달랐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씨는 2019년 직접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희생자와 유족들께 사죄드린다”고 고개를 숙였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사과 의사를 밝혔다.

반면 전씨 측은 끝까지 책임을 부정했다. 생전 내내 5·18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던 전씨의 입장은 사망 직전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그의 측근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발포 명령은 없었다”며 “사죄 요구는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 “광주의 학살자”라 부른 해외 언론…조용했던 마지막=전씨 사망 소식에 해외 언론도 일제히 비판적 평가를 내놨다. AFP는 ‘한국의 전 독재자: 광주의 학살자(the 'Butcher of Gwangju')’라는 제목의 부고를 실었고, 뉴욕타임스(NYT) 역시 “군사독재자 전두환”이라고 규정했다.

국내 여론 역시 차갑기만 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전두환이 죽었다고 진실까지 묻을 수는 없다”고 했고,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그렇게 무시무시한 권력도 결국 저렇게 초라할 뿐”이라고 전했다.

전씨의 사망으로 20세기에 집권했던 대통령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게 됐다. 생전 전씨는 “북녘이 보이는 전방 고지에 백골로 남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유해는 아직도 연희동 자택에 머물러 있다.



北 해킹 추적 '팔로알토 유닛42', 韓 상륙 이유는? [김성태의 딥테크 트렌드]
환율 상승·외인 매도 공습 속 코스피 3900 붕괴…개인 ‘빚투·레버리지’로 맞섰다[선데이 머니카페]
폭염·한파 이상기후에 채소 가격 폭등…외식업계 ‘비상’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