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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진줄 알았는데…”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3가지 방법 [건강 팁]

■최수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죽을 뻔하거나 죽음의 현장 경험한 후 극심한 긴장상태

감정조절 어려울 땐 가벼운 신체활동이 마음 회복 도와

심호흡 등 감정조절 방법 다시 배우고 필요 시 약물치료

전문가 도움 받아 아픈 경험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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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지 몇 년이 지나 잘 회복된 골절 부위나 수술 흉터가 어느날 갑자기 아프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상처가 있던 곳은 흔적이 남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의 상처 역시 마찬가지다. 죽지 않고 살아남았는데, 아물어진 줄 알았던 생채기가 다시 나를 괴롭히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일반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삶의 스트레스 범주를 넘어 신체적인 안녕과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을 정신적 외상 또는 트라우마라고 한다.



내가 죽을 뻔했거나 바로 옆에서 죽음의 현장을 함께 경험하면, 우리는 그 상황에 압도당하고 순간적으로 얼어붙거나 극심한 긴장 상태를 겪는다. 사건 당시 에너지가 남아 몸과 마음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이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나는 이 세상을 헤쳐나갈 능력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 몸은 작은 자극은 물론 아무런 자극이 없어도 쉽게 경계 상태에 돌입한다. 왜 이런 일을 겪었는지, 그 사건이 일어난 지 한참이 지나도 나는 왜 이 상태인지 같은 질문을 던져보기도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차라리 옆에 있는 가족을 탓하거나 살아남은 자신을 탓하며 죄책감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택해 고립되는 이들도 있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쉽게 폭발하거나 술에 의존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가만히 조용한 방에 누워 머리 속으로 내 마음을 조절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이럴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마음이 회복됐다고 느낄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먼저 몸을 움직여 마음이 회복되도록 도울 수 있다. 몸을 도저히 움직이지 못할 것처럼 느껴진다면 자세부터 바꿔보자. 실제 2분 동안만 자세를 바꿔도 전신의 호르몬이 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긴장된 어깨를 내리고 허리를 펴는 등 몸의 자세에 따라서도 정신 상태가 달라진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몸이 한없이 늘어져 있다면 누운 상태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근육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를 점진적 근육이완법이라고 한다. 몸을 일으켜 앉고 씻는 일상의 활동도 마음을 챙기며 행한다면 회복을 위한 움직임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다시 배우는 것이다. 트라우마 이후에는 일상을 살아가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보다 ‘생존’에 특화되도록 감정, 특히 공포를 담당하는 뇌 영역이 과도하게 작동하곤 한다. 트라우마 반응으로 감정이 극과 극을 오가는 증상을 경험하고 있다면 감정통제법을 다시 배울 필요가 있다. 과잉 흥분 상태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심호흡’이다. 폐는 오장육부 중에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관이다. 심박수나 위장관 운동과 달리 호흡의 속도와 깊이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긴 호흡을 통해 ‘지금은 그다지 긴장할 때가 아니다’라는 신호를 뇌에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호흡을 통한 이완도 평소 연습해놓지 않는다면 위기 상황에서 바로 사용하기 어렵다. 심호흡을 할 땐 천천히 끝까지 모든 공기를 뱉을 수 있도록 내뱉는 숨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환자에 따라서는 격렬한 감정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약물치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근육이완 요법. 사진 제공=국립정신건강센터


세 번째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원치 않았던 경험 또는 후회되는 일에 대해 ‘아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한다. 상처를 오염 없이 깨끗하게 봉합하려면 괴롭더라도 먼지와 병균을 깨끗이 씻어내는 소독 과정이 우선이다. 우리는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 때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꼈는지에 대해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언어로 표현되기 전까지 그 경험은 엉킨 실뭉치와 같이 뒤죽박죽 상태인 경우가 많다. 트라우마를 남긴 경험에 대해 그 당시와 이후 내 자신의 반응에 대해 언어로 표현될 때에야 비로소 그 경험을 진정으로 인정할 수 있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을 겪었지만 그것은 현실이었고,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임을 인지해 신체적·정신적으로 인정하고 나아가야 한다. ‘내가 정말 그런 일을 겼었구나’, ‘그렇지만 이렇게 다시 살아가고 있구나’, ‘본래의 나는 여기 그대로 있구나’를 다시 느끼게 하는 이 과정은 때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트라우마로부터 살아난 사람이 다시 본인 삶의 주체의식을 되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트라우마의 회복 과정일 것이다. 트라우마 증상을 겪었거나, 그 터널을 지나고 있는 분들께 자신이 가진 용기를 바라봐주길 당부한다.

최수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사진 제공=서울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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