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유통기업 월마트가 다음 달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나스닥으로 이전한다고 21일 밝혔다. 1972년 상장 이후 53년 만의 결정이다. 시가총액 854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유통기업이 기술기업 중심 시장을 과감히 선택한 데서 월마트의 비즈니스 모델을 디지털 전환 가속화와 기술 기반 성장 전략에 두겠다는 절박함이 읽힌다. 월마트는 “사람 중심, 기술 주도라는 우리의 장기 전략에 부합한다”고 밝혔지만 결국 전통 유통만으로는 미래 경쟁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이 결정은 국내 자본시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코스피·코스닥은 미국 NYSE·나스닥처럼 구조적으로 분리된 시장은 아니지만 시장 역동성 측면에선 비교할 만하다. 그러나 미국에선 전통 산업의 거대 기업도 성장성과 기술력이 모인 시장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있는 반면 한국은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일방적 ‘상향 이전’만 있다.
월마트의 나스닥 이전은 마치 코스피에 있는 롯데쇼핑이 기술 중심 성장을 위해 코스닥으로 가겠다는 격이다. 그러나 이는 코스닥의 처지를 감안하면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코스닥은 종목 수(1809개)만 많을 뿐 수급·펀더멘털·시총 등에서 코스피와 비교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올해 상반기에 절반가량이 적자를 기록했고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지만 퇴출되지 않는 ‘좀비 상장사’도 수두룩하다. 이러다 보니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투자 가운데 코스닥 비중은 5%에 그친다. 시장에 대한 신뢰 부족 탓이 크다. 네이버·카카오·셀트리온 등 한때 코스닥을 대표한 기업들이 모두 코스피로 옮겼고 현재 코스닥 1위인 알테오젠 또한 이전 상장을 준비 중이다. 올해 지수 상승률을 봐도 코스닥은 코스피의 절반인 30%에 불과할 정도로 양극화가 심하다.
월마트의 나스닥 이전 같은 일이 한국에서도 가능해지려면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한계 기업은 최대한 빠르게 퇴출시키고 기술 잠재력이 높은 기업에는 상장 문턱을 낮춰 모험자본이 적극 유입되는 시장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다음 달 선보이는 증권종합투자계좌(IMA)가 코스닥 벤처펀드 투자를 의무화한 만큼 ‘생산적 금융’이 실제 혁신기업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힘쓰는 일도 중요하다. 월마트의 나스닥 이전은 자본이 기술과 성장성에 따라 움직이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 정부와 자본시장 관계자들이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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