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국회의 예산안 심의가 진행되고 있다. 728조 원의 내년 예산안 규모는 올해보다 8.1% 늘었다. 현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를 충분히 반영한 수치다. 예산안 법적 처리 시한은 다음 달 2일로 시간은 부족한데, 코드·포퓰리즘·밀실 예산이라는 정치 공방과 국민 불신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국회 예산 심의의 방점은 국가의 재정 건전성 개선에 둬야 하는데 현실은 사뭇 다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에 따르면 내년 국가채무는 사상 최초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50%를 넘어 약 1415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추세라면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말인 2029년에는 약 1800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국가채무의 증가는 미래 세대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남게 되지만 여야 정치권은 단기적인 이해관계에만 몰두하고 중장기적인 국가 미래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정부가 인공지능(AI) 대전환과 초혁신 경제 달성에 예산 편성을 집중한 것은 올바른 방향성이라고 본다. 그러나 AI 관련 예산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부·중소벤처기업부 등에 분산 편성된 것은 중복 투자의 우려가 있다. 부처마다 유사한 사업으로 중복 수혜가 발생하고 부처 칸막이로 인해 중복·과다 예산 집행을 조율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예산 편성과 집행의 효율성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예산안 심의에서 의무지출에 대한 여야의 대승적인 조율이 필요하다. 의무지출은 국민연금·기초연금·아동수당·국채이자 등 법에 따라 불가피하게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예산이다. 중기 재정지출 계획에 따르면 2029년까지 100조 원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해 복지재정의 수요·지출 증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지방선거를 위한 여야의 선심성 예산 주고받기는 자제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복지 재정 확대는 의무지출을 늘려 경기 침체 등의 상황에서 지출의 여력을 축소하는 부메랑이 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정부 예산안 원안에 없었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전세보증금과 수리비를 지원하는 예산 110억 원을 편성했다. 누가 보더라도 코드 예산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정부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의지도 훼손하는 행보다. 지난해 민주당이 전액 삭감했던 대통령실의 특수활동비를 여당이 되자 복원한 것 또한 전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역대 최대 규모인 150조 원의 ‘국민성장펀드’는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펀드’의 실패 경험에도 불구하고 추진되는데 전형적인 관치 포퓰리즘 예산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국민성장펀드가 기존의 정책 펀드와 중복으로 투자되면 국가 재정이 손실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회 예산안조정소위는 부실한 포퓰리즘 예산의 밀실 심사로 미래 세대에게 빚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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