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전력 수요가 전기자동차 증가와 데이터센터·로봇 등 인공지능(AI) 산업의 확산 등 산업구조 변화로 인해 향후 10년간 매년 3% 내외의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에너지산업은 현재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환기에 있으며 국가별로 정책의 무게중심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에너지 안보와 탄소 중립, 전력망 확충, 산업 경쟁력 유지를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에너지 전환의 성패는 그리드(송전망), 저장 기술, 정책 일관성 등 인프라·제도적 병목을 얼마나 빠르게 해소하고 소비자의 지지를 받으며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전력 산업은 2002년 구조 개편에 따라 한국전력을 중심으로 한 수직적 통합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러한 구조는 정책 목표 달성과 가격 안정에는 효율적이었으나 탄소 중립, 에너지 전환, 분산형 전원 등으로의 이행에는 구조적 한계를 갖는다. 발전, 송배전, 전력 판매 등 전력 산업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한전은 에너지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와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과 같은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정부의 규제 실패로 인해 재무 건전성이 악화하고 탄소 중립, 에너지 전환 대응에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전력 산업이 무기력에서 벗어나 활력을 되찾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 체제를 개편해 새로운 거버넌스를 갖추고, 새로운 기술·시장·파트너를 도입·개척·발굴해야 한다. 신기술을 도입하고 적용하려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소명을 다한 시스템과 구조에서 탈피해 에너지 안보 달성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이행하기 위한 최적의 체계를 다시 만들고 역할을 조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합리적인 에너지믹스를 바탕으로 에너지 안보 달성과 탄소 중립, 착한 에너지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에 한전 중심의 수직적 통합 구조를 개편해 한전홀딩스 산하에 전력 거버넌스 담당, 판매·송배전 네트워크 담당, 발전 담당의 자회사를 두는 형태로 재편할 것을 제안한다. 발전 분야는 에너지원에 따라 원자력, 화력, 태양광·수소, 풍력·수력 등으로 재편하고 책임과 권한을 부여해 전력 생산은 물론 해당 분야의 산업 생태계 구축과 해외시장 진출을 주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전력 사업의 해외 진출을 위해 새로운 파트너들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해외 신시장에서 공동 수주하고 원전 등 발전설비 설계·제작 관련 업체의 인수합병도 고려하는 등 국내 시장의 포화·한계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안보와 탄소 중립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고 전력 산업의 현안을 시급히 해결하기 위해 한전의 독점적 운영 체계를 ‘시장 기반의 공공 플랫폼’으로 서둘러 전환해야 한다. 한전은 모든 것을 직접 공급하는 기업이 아니라 시장·계통의 공정하고 효율적인 운영을 보장하는 ‘시스템 조정자’와 전력 생산과 관련 산업의 생태계를 육성하고 키우는 ‘주도적 역할 수행자’로 거듭나야 한다. 이와 함께 개편에 따라 설립된 자회사의 자율·독립 경영 보장, 송전망 공공성 강화, 판매시장 단계적 개방, 분산형 전원의 활성화, 요금 체계 정상화가 병행될 때 우리나라 전력 산업은 위기에서 벗어나 탄소 중립과 착한 에너지 전환의 현실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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