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 프로들은 손 감각에 민감하다. 맞는 순간 볼이 어디로 어떻게 향할지 안다. 그립 관리에도 정성이다. 라운드 후에는 항상 페이스뿐만 아니라 그립까지 깨끗하게 닦아 두고, 비가 오는 날에는 그립이 물에 젖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국내 투어 프로들은 어떤 그립을 선호하는지 직접 조사했다. 드라이버나 아이언에 쓰는 스윙 그립의 경우 소재로 분류했을 때 남녀 모두 고무 그립 사용률이 높았다. 특히 여자 프로들의 경우 고무 그립 사용률이 무려 91%에 달했다. 형태에 따른 분류로 보면 립 그립보다는 라운드 그립 비중이 월등히 높았다. 퍼팅 그립의 경우 일반 그립과 두꺼운 그립의 비율은 남녀 모두 약 7대3 정도로 나타났다.
남자 선수 55%는 고무 그립…실 그립은 13%
남자 선수들의 스윙 그립을 자세히 살펴보면 고무 그립 비율이 55%(77명)에 달했다. 그 다음은 윗부분은 실, 아래는 고무로 된 반실 그립 30%(42명), 실 그립은 13%(18명), 그리고 기타 그립은 2%(4명)를 차지했다.
클럽에 따라 혼용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통산 2승을 기록 중인 조우영의 경우 드라이버와 아이언에는 고무 그립을 끼웠지만 페어웨이우드에는 반실 그립을 장착했다. 통산 4승의 베테랑 김승혁과 황도연은 우드류에는 반실 그립, 아이언에는 고무 그립을 장착해 사용하고 있었다. 반대로 김동우는 우드류에는 고무 그립, 아이언에는 실 그립을 장착했다. 고무 그립을 사용 중인 유송규는 웨지에는 반실 그립을 끼워 사용했다.
“두껍지만 방향성에 도움”…김홍택의 ‘점보맥스’
필드와 스크린을 오가는 ‘하이브리드 골퍼’ 김홍택의 경우 그립이 일반 제품보다 굵어 보인다. 그가 사용하는 그립은 ‘점보맥스’다. 이 그립은 ‘필드의 물리학자’ 브라이슨 디섐보(미국) 등이 사용하는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김홍택 외에 전재한과 이준석도 점보맥스 그립을 끼워 사용 중이다.
김홍택은 “작년 초에 점보맥스 그립을 퍼터에 먼저 끼웠는데, 만족스러웠다. 이후 지난해 시즌 마지막 대회부터 드라이버, 아이언, 웨지 등의 스윙 그립도 모두 점보맥스로 교체했다”고 했다. 점보맥스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야구, 테니스, 하키에 비해 골프 그립은 너무 가늘다. 그립이 가늘면 꽉 움켜쥐게 된다”며 슈퍼 사이즈 그립을 출시한 배경을 설명했다.
김홍택은 “그립이 두껍기 때문에 손목을 잘 안 쓰게 돼 정확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 손의 힘을 빼는 대신에 몸 전체를 사용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며 “전에 사용했던 그립보다 2배 두꺼운데 무게는 오히려 10g 가볍다”고 했다. 김홍택은 2021~2023년 그린 적중률 1위에 올랐고, 올 시즌에도 국내 남자 선수 중 가장 정교한 아이언 샷을 날리고 있다.
올 시즌부터 점보맥스로 갈아탄 전재한은 “그립이 굵지만 힘을 쓰는 데에 지장을 줄만큼은 아니다”며 “일반 고무가 아니라 스펀지 같은 수지 계열 소재라서 가볍다. 덕분에 클럽 전체 무게를 줄일 수 있다. 스윙 스피드 향상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준석은 8월부터 점보맥스로 바꿨다.
딱 1명…김재호, 호주산 가죽 그립 사용
김용희 롯데 2군 감독의 아들로 렉서스 마스터즈에서 생애 첫 우승을 달성한 김재호는 국내 투어 선수 중 유일하게 가죽 그립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재호는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가죽 그립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원래 손에 땀이 많이 난다. 장갑을 몇 개씩 가지고 다녔다”면서 “가죽 그립을 사용하면 미끄러지지 않는다”고 했다.
김재호는 가죽 그립을 생산하는 호주 업체(그립마스터)에 직접 연락해 수입해서 사용한다. 이 업체는 소, 양, 캥거루 가죽 등으로 그립을 제작한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가죽을 빙글빙글 돌려가며 감는 방식은 아니다. 얇은 고무 위에 가죽 그립이 미리 감겨 있어 일반 그립처럼 밀어서 끼우면 된다.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겠다’고 묻자 김재호는 “비싸긴 한데 내구성이 우수해 한 번 교체하면 1~2년은 사용한다”고 했다. 김재호는 시즌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 때는 아이언에 골프프라이드의 MCC(고무와 실 그립 반반) 그립을 장착한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김재호는 “새로운 가죽 그립을 구하기 전에 임시로 끼운 것”이라고 했다.
김비오와 이원준은 그립 테이핑만 4번
일반 사이즈 그립을 사용하면서 그립을 끼우기 전 테이핑 작업을 통해 두께를 두껍게 하는 선수들도 있다. 김비오와 이원준은 그립 테이핑을 4번이나 한다. 이동환은 전체에 걸쳐 2번 테이핑을 한 후 오른손 위치에 테이핑을 한 번 더 한다. 정선일은 오른손 위치에만 한 번 더 테이핑을 한다.
조승진 핑골프 테크팀 차장은 “그립 테이핑을 3번 정도 하면 한 사이즈 더 굵어지는 효과가 있다”며 “김비오는 훅이 나는 걸 극도로 꺼린다. 손목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테이핑을 여러 번 해달라고 요청한다”고 했다. 타이틀리스트의 리더십팀 관계자는 “손이 큰 남자 선수들이 대체로 안정적이고 견고한 그립감을 위해 약간 두껍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여자 91%는 고무 그립…실 그립은 中 지유아이 유일
여자 프로들의 그립 구성은 남자 선수들에 비해 단순한 편이었다. 91%인 109명이 고무 그립을 사용했고, 반실 그립은 8%인 10명에 그쳤다. 실 그립 사용자는 중국 선수인 지유아이 한 명뿐이었다.
립 그립 사용률은 23%였다. 이는 남자 선수들의 립 그립 사용률(14%)보다 9%포인트 높은 수치다. 이건희 골프프라이드 대표는 “립은 손에 딱 걸린다. 덕분에 힘을 쓰기에 좀 더 유리하다. 이런 이유로 여자 선수들이 조금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립 그립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선수로는 박현경, 이예원, 황유나, 유효주, 박결, 김수지, 임희정, 이소영 등이 있다.
박현경은 “골프를 처음 시작하던 초등학생 때부터 립 그립을 사용했다”며 “아버지께서 스윙할 때 그립이 손에서 잘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립 그립 사용을 권했다”고 했다. 이어 “특정 구질을 주로 구사하는 선수에게는 립 그립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때그때 상황마다 구질을 만들어서 치는 선수에게는 립 그립보다는 라운드 그립이 유리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퍼터 그립은 일반 두께와 두꺼운 그립의 사용 비율이 남녀 대략 7대3으로 비슷했다. 두꺼운 퍼터 그립을 사용하는 남자 선수들은 32%인 44명, 여자 선수들은 32.5%인 39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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