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공영방송 BBC의 사장과 보도국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짜깁기해 방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BBC는 9일(현지시간) 팀 데이비 사장과 뉴스 보도 부문 책임자인 데보라 터너스 국장이 사퇴를 선언했다고 발표했다. BBC는 지난해 10월 ‘트럼프: 두 번째 기회?’ 특집 다큐멘터리에서 미 의회 폭동이 일어난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연설을 의도적으로 편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세 부분을 한 문장처럼 보이도록 짜깁기해 의회 폭동을 선동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지적이다. 사장과 보도 국장의 동시 사퇴는 BBC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다.
앞서 영국 텔레그래프는 지난달 29일 유출된 BBC 내부 문건을 통해 시사 프로그램 ‘파노라마’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편집, 2021년 1월 의회 난입 사태를 트럼프 대통령이 부추긴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1년 1월 6일 워싱턴DC에서 “우리는 의회로 걸어가 용감한 상하원 의원들을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파노라마 편집본에서는 “우리는 의회로 걸어가... 내가 여러분과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싸운다. 지옥같이 싸운다”는 발언이 나왔다. 원래 50분의 시차가 나는 발언을 짜깁기해 하나의 멘트로 이어붙인 것이다.
텔레그래프가 공개한 내부 문건은 BBC의 전직 외부 자문위원이 작성한 것으로, BBC 아랍어 방송의 이스라엘-가자 전쟁 보도의 편향성도 지적됐다. 문건은 또 트랜스젠더 이슈 보도가 트랜스젠더 찬성 의제를 추진하는 LGBT 전문 기자들에 의해 사실상 검열됐다고 덧붙였다.
BBC는 이날 홈페이지에 올린 기사에서 최근 자사가 여러 건의 방송이 공정성 논란에 휘말렸다는 사실도 알렸다. BBC는 가자지구 다큐멘터리와 관련해 해설자가 하마스 고위 관계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고, 한 음악 공연 방송에서 펑크 듀오 밥 빌런(Bob Vylan)이 “이스라엘 방위군(IDF)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친 장면을 그대로 방영해 편집 지침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데이비 사장은 사퇴를 발표하며 “BBC는 전반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지만 몇 가지 실수가 있었고, 사장으로서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터너스 국장도 “파노라마 논란이 BBC에 손해를 끼치는 단계에 이르렀다”며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실수가 있었지만, BBC 뉴스가 제도적으로 편향됐다는 최근 주장은 잘못됐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의 사임은 사미르 샤 BBC 회장이 영국 의회에서 발표할 예정인 사과 성명에 앞서 나온 것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루스소셜 계정에 “BBC의 고위층이 내 훌륭한 연설을 조작하다 적발돼 사퇴하거나 해고되고 있다”며 “부패한 기자들을 폭로해 준 텔레그래프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BBC)은 대선에 개입하려 한 매우 부정직한 사람들”이라며 “무엇보다 그들은 많은 이가 우리의 1호 동맹이라고 여기는 외국의 인물들로, 민주주의에 참으로 끔찍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BBC를 “100% 가짜뉴스”, “좌파 선전 기계”라고 부르며 맹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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