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 확산과 경제 저성장, 인구 감소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노동시장이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 기업들은 실적과 무관하게 인력 재편을 진행하고, 청년층은 일자리 진입 장벽이 높아지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희망퇴직은 특정 업종이나 연령대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금융업계가 가장 두드러진다. 주요 5개 시중은행의 희망퇴직 규모는 2022년 2357명, 2023년 2392명, 2024년 1987명을 기록하며 매년 2000명 안팎을 유지했다. 주목할 점은 같은 기간 은행권 실적이 사상 최대를 경신했다는 사실이다. 2024년 국내 은행의 순이익은 22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5.5% 증가했고, 이자이익도 60조원에 근접했다. 수익성과 인력 감축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희망퇴직이 위기 대응책이 아닌 상시적 인력 관리 수단으로 변모했음을 보여준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 기조는 청년 일자리 창출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IMF는 한국의 GDP 순위가 2023년 12위에서 2030년 15위로 세 계단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경제성장률이 올해 0.9%, 내년 1.8%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면서 1%대 저성장이 장기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닌 구조적 한계로 진단한다. 성장률이 2% 미만에 머무는 한 청년층을 위한 양질의 신규 일자리 창출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세대 간 고용 경험의 차이는 박탈감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현재 40~50대는 산업화와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정규직 중심의 안정적 고용 환경을 경험했다. 반면 20~30대는 태어날 때부터 불안정 고용이 일상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한 20대 구직자는 "부모 세대는 노력하면 안정적 직장을 얻을 수 있었지만, 우리 세대는 아무리 노력해도 불확실하다"며 "세대 간 격차가 능력이 아닌 운의 문제로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노동시장 패러다임을 흔들고 있다. 과거 자동화가 단순 노동을 대체했다면, 이제는 문서 작성, 데이터 분석, 고객 응대 등 사무직 핵심 업무까지 AI가 수행한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신입 채용 규모를 축소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AI 활용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신규 인력 채용이 줄어드는 경향이 뚜렷하다. 당장의 인건비 절감 효과는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 내 세대 교체와 혁신 역량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층의 구직 포기 현상도 심각한 수준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15~29세 청년 중 '쉬었음' 상태인 인구는 약 45만명으로, 해당 연령대의 17%에 달했다. 이들 중 34.1%는 "적합한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30대 역시 '쉬었음' 인구가 32만8000명으로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용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경제활동 이탈이 단기 실업이 아닌 '구조적 좌절'로 심화되고 있다"며 "노동시장 진입 기회 자체가 축소되면서 젊은 세대의 체념이 확산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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