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역점 교육 사업인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에 성과에 따라 배정 예산에 차등을 두는 ‘성과예산제’가 도입된다. 이를 통해 교육부는 5년간 4조 원 이상의 재원이 투입되는 이번 정책이 ‘예산 나눠 먹기식’으로 운영되는 것을 방지하는 한편 거점국립대 간의 경쟁을 촉발시켜 대학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교육계에서는 그러나 거점국립대 살리기와 별도로 글로벌 톱10 대학을 육성할 전략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9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에 매년 대학별 사업 성과 평가를 바탕으로 이듬해 예산을 차등 배정하는 방안을 도입하기로 했다. 각 대학은 성과에 따라 S·A·B·C 중 하나의 등급을 부여받는다. 교육부는 이 같은 평가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엄정한 재정 집행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또 최하 등급을 받은 대학의 지원금은 전년 대비 최대 20%가량 깎이며 이 같은 감액분은 최고 등급을 받은 대학에 배분된다. 평가 지표로는 특성화 분야와 관련된 세계 대학 순위, 학내 연구소 성과, 대기업 취업률 및 계약학과 운영 현황, 국제화 수준 등이 논의 중이다.
이 같은 성과예산제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이 경쟁력 낮은 지방 거점대 등에도 고루 배분될 경우 정책의 효율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교육부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사업에서도 유사한 성과 관리 체계를 운영 중이지만 이번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에서는 예산 차등액과 평가 결과까지 모두 공개하는 방식으로 재정 투명성을 보다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한 지방 거점국립대 총장은 “이번이 지방대학을 살리기 위한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는 점에서 교육부와 대학 총장 간의 공감대가 형성됐으며 예산 차등액을 20%로 늘리자는 것 또한 대학 측이 먼저 제안한 것”이라고 밝혔다. 거점국립대 총장들은 서울대 10개 만들기 최종안이 올해 말께 공개되는 만큼 계약학과 정원 확대를 목표로 지역 거점 기업들과 꾸준히 접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1200억은 우수 지역大에…"‘지역특화’ 평가 기준 마련해야"
정부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실행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가칭)’ 사업에 성과예산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이 사업이 ‘예산 나눠 먹기’로 변질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다. 차등적으로 예산을 분배하는 성과예산제를 도입한다 해도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정치권에서 교육부 등 정부 부처를 압박할 가능성이 여전하다. 교육계에서는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지방 특화 산학협력 등 차별점을 확실히 찾지 못한다면 결국 지역 거점 국립대의 수명 연장 정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내년도 기준 연 8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며 9개 지거국에 차등 배분한다는 계획이다. 8000억 원의 예산 중 6800억 원은 지거국 9곳의 각 학생 수, 필요 연구 시설 유무 등의 여건을 고려해 배정하고 나머지 1200억 원은 지역 앵커 기업 및 우수 교원, 석박사 인재 유치 가능성이 높은 3개 대학에 ‘몰아주는’ 배분 방식을 검토 중이다.
교육부는 이른바 ‘성과 예산제’ 방식으로 예산 배분이 이뤄질 것이라 강조하며 대학들의 경쟁력 제고 방안 마련을 압박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1200억 원을 받도록 선정된 3개 대학 역시 400억 원씩 균등하게 나누는 것이 아니다”라며 “(대학과 연계된) 전략산업의 시급성 및 학교의 준비 정도에 따라 1~3위 순위별로 지원금 차이가 꽤 클 수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또 지자체 중심으로 대학 성과 평가가 이뤄졌던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라이즈)’와 달리 이번에는 중앙정부와 기업이 모두 참여해 더욱 다층적인 평가가 이뤄질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실제 지자체가 직접 대학을 육성 및 지원하도록 한 라이즈는 권역별 라이즈센터가 각 대학의 성과를 모니터링했으며 이 과정에서 대학과 무관한 지표가 개입되거나 담당 인력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했다. 반면 이번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과 관련해서는 교육부 외에도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산업통상부 등이 모두 평가에 참여하도록 했으며 각 대학과 연계된 지역 앵커 기업 관계자들의 평판 및 대학 입시 결과 추이 등도 평가지표에 넣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지거국들도 예산 확보에 사활을 건 모습이다. 한국교육개발원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5년 기준 4년제 국공립대의 총 수입은 약 3조 1000억 원이며 이 중 ‘정부 이전 수입’은 58.3%가량을 차지한다. 4년제 사립대의 경우 전체 수입에서 정부 이전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19.1%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정부 예산 지원 규모에 따라 지거국의 경쟁력도 크게 달라진다. 한 대학 관계자는 “학교당 5년간 최대 1000억 원을 지원했던 이전 정부의 ‘글로컬대학30’ 사업보다 이번에 대학별 예산 편차가 훨씬 커질 가능성이 있다”며 “국립대는 전체 수입에서 등록금 비중이 30%가 채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번 예산 확보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처럼 엄정한 성과 기반 지원 체계를 만들고 있는 배경에는 지역 특성 및 대학 특화 전략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만 쏟아부을 경우 ‘예산 나눠 먹기’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자리한다. 실제 정부가 2014년부터 5년간 2조 9000억 원을 투입해 추진한 ‘대학 특성화사업(CK사업·SCK사업·PRIME사업)’의 경우 투입 재정 대비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상당했다. 감사원 또한 2022년 보고서에서 당시 대다수 대학이 지역사회 수요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특성화 사업 지원을 신청했으며 명확한 기준 없이 사업이 진행된 결과 지역 발전에 필요한 우수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당초 취지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 지원을 받은 특성화 학과 가운데 지역사회 수요가 높은 ‘지역 연계 학과’는 839개로 비중이 41.4%에 그쳤다.
이와 관련해 대학이 제출하는 사업 계획을 기반으로 예산 지원 대학을 분류하는 선정 방식 자체를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개발원 관계자는 “이 같은 사업 계획 기반 방식은 대학의 행정 부담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사업 계획서나 사후 결과 보고서 작성 요령과 같은 공모 사업 대응 역량을 과도하게 키우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며 “상위 10% 수준의 논문 발간 실적이나 졸업생의 취업률 및 평균 연봉과 같은 사후 성과 수치를 바탕으로 예산 지원 대학을 선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정책 방향을 보다 명확히 해야 실효적인 성과가 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진택 전 고려대 총장은 “해당 정책은 연구 성과에 집중한 대학을 만들 것인지, 서울대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지역 대학을 육성하겠다는 것인지 목표가 명확하지 않다”며 “글로벌 연구계에서 서울대조차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데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등 지역별 과기원이 운영 중인 상황에서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수도권 A사립대 총장은 “지역 정치 논리가 대학 정책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우리 교육 정책을 보면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진단했다.
“계약학과가 청년 유인의 열쇠”…기업 모시기 총력전
‘국가균형성장을 위한 지방대학 육성 방향(서울대 10개 만들기)’이 공개된 뒤 학부모와 학생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부분은 ‘학부생 대상 계약학과 확대 방안’이다. 이는 별도의 학과 신설이 아니라 기존 학과에 계약 정원제를 도입·확대하는 방식으로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개별 대학의 산학 연계 역량이 계약학과 규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9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각 거점 국립대학은 지역 특화 사업과 관련된 기존 학과 내에 취업이 보장되는 정원을 확보할 계획인 가운데 현재 협약을 맺을 기업 탐색전과 함께 ‘어떤 학과의 몇 학년부터 도입할지’를 놓고 내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교육부가 지난달 발표한 시안에 포함됐던 ‘(지거국) 입학 시 대기업, 지역 앵커 기업 등에 취업이 보장되는 계약학과 확대’ 방안에 따른 밑작업이다. 학생들을 비수도권 대학으로 유인할 수 있는 최대 유인책이 ‘안정된 취업과 진로 보장의 통로 제공’이라는 것이 정부의 분석이다. 현재 지거국 중 채용 조건형 계약학과를 운영 중인 곳은 세 곳에 불과하다. 경북대 전자공학부모바일공학전공(30명)과 충남대 해양안보학전공(40명), 전남대 기계IT융합공학과(30명)로 이 중 전남대 학과는 채용 조건형과 재교육형이 융합된 학과다.
이에 따라 각 지거국은 전략 사업과 연계한 계약 정원제 도입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2023년 시작된 계약 정원제는 대학과 기업이 계약을 체결해 일반 학과 정원의 20%까지 정원 외로 계약 정원을 추가하고 산업체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제도다.
예컨대 대학이 그린 바이오 산업에 주력할 경우 기존의 생명공학과와 생물학과를, 미래모빌리티 산업의 경우 기계공학과와 항공우주공학과를 선정하고 일부 학과생에 대해 지역 앵커 기업 채용을 확정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학과 통폐합을 하거나 새로운 융합학과를 만들지 않고 기존 학과 체계를 유지해도 돼 절차적으로 훨씬 간편하다.
이 같은 방식을 채택한 데는 이미 계약학과를 운영하고 있는 수도권 주요 대학에서 발생하고 있는 ‘중복 운영 문제’를 피하겠다는 목적도 있다. 실제로 서강대에는 이미 SK하이닉스와 채용 계약을 맺은 시스템반도체공학과가 있지만 2026학년도부터 별도의 반도체공학과가 추가로 만들어졌다. 또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과 연계된 고려대 차세대통신학과·반도체공학과 소속 교수진은 모두 같은 대학 전기전자공학부 전임 교원이기도 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목표로 하는 계약학과는 통상 1학과-1기업씩 매칭되는 계약학과와 달리 한 학과에 여러 기업이 참여해 채용 협약을 맺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결국 각 계약학과 규모는 대학별 기업 유치 역량에 달린 셈이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거점 국립대 B 총장은 “방산 분야 계약정원을 확대할 계획”이라면서 “권역 내 모든 방산·항공 기업을 가능한 후보군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한 기업당 열 명씩 정원(TO)을 배정할 경우 수십 명에 대한 채용 보장이 가능해 사실상 계약학과 신설과 동일한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다만 각 지역의 기업 정주 여건과 함께 이들 대학이 과연 기업이 원하는 산업형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느냐가 사업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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