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대장동 개발 비리’ 1심 판결에 대한 항소를 포기하면서 내부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수사·공판팀은 대검찰청과 법무부 등 윗선이 항소 기한 마감 직전까지 항소장 제출을 막았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이번 결정으로 수천억 원대의 부당이득 환수 가능성도 사실상 사라졌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 지검장은 전날 법무부에 사의를 표명했다. 7월 4일 취임한 지 4개월여 만이다. 정 지검장은 “중앙지검의 의견을 설득했지만 관철되지 않았다”며 “대검의 지시를 수용하되 중앙지검의 입장이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이번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사의를 표명했다”고 설명했다. 정 지검장은 항소장 제출 마감 약 4시간 전까지 항소 제기를 승인했으나 대검이 재검토를 지시한 뒤 최종적으로 항소를 불허하자 중앙지검 수사·공판팀에 항소 포기 방침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대장동 민간 사업자 일당은 배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법 1심에서 징역 4년에서 8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김만배 씨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은 각각 징역 8년, 남욱 변호사는 4년, 정영학 회계사는 5년, 정민용 변호사는 6년을 선고받고 모두 법정 구속됐다. 형사사건의 항소 제기는 판결 선고일로부터 7일 이내에 해야 하지만 검찰은 항소 기한인 7일 자정까지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대장동 사건 공소 유지를 맡은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가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글에 따르면 1심 선고 사흘 뒤인 이달 3일 수사·공판팀은 일부 피고인의 무죄 판결과 낮은 형량, 부당이득 7886억 원 중 473억 원만 추징된 점을 법리 오해로 판단해 만장일치로 항소를 결정했다. 중앙지검은 5일 항소 제기 보고서와 관련 문건을 대검 반부패부에 전달했고 내부에서는 이미 항소를 전제로 한 결재 절차가 진행 중이었다. 7일 오후에는 부장검사, 4차장검사, 검사장 결재까지 모두 마무리됐으나 대검 반부패부가 돌연 ‘재검토’를 지시했다. 강 검사는 이후 대검이 항소 불허 방침을 통보하자 4차장이 직접 반부패부장에게 전화해 설득을 시도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항소 마감 시한이 2시간여 남은 7일 오후 10시 중앙지검은 대검 담당 연구관에게 ‘지검장 판단으로 항소장을 접수해도 되는지’를 문의했고 공판 담당 검사들은 법원에 나가 항소장 제출을 준비했다. 그러나 자정 무렵 중앙지검 4차장은 “대검이 불허했고 검사장도 승인하지 않았다”고 전하며 항소 접수를 중단시켰다고 한다. 검찰 안팎에서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이진수 차관이 항소 불허 방침을 정했고 대검이 이에 따라 입장을 바꿨다는 말이 돌았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은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할 수 있으나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할 수 있다. 따라서 법무부의 항소 포기 지시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위법 논란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은 “대장동 사건은 일선청의 보고를 받고 법무부의 의견을 참고해 판결 취지와 항소 기준, 사건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끝에 항소하지 않기로 판단했다”며 “이는 검찰총장 대행인 제 책임 아래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해명했다. 정 장관은 10일 오전 항소 포기와 관련해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을 진행한다.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민간 업자 5명 전원이 항소하면서 2심 재판은 진행될 예정이다. 다만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2심 재판부는 1심보다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다. 대장동 개발 사업의 부당이득 상당 부분도 사실상 환수가 어려워졌다. 검찰은 민간 업자들이 성남도시개발공사의 내부 정보를 이용해 7886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기고 공사에 4895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며 전액 추징을 요구했지만 1심 재판부는 손해액 산정이 불가능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 적용이 어렵다고 보고 추징액을 473억 3200만 원으로 제한했다.
한편 이번 ‘항소 포기 사태’의 여파로 검찰 내 사표 행렬이 이어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현직 검사장급인 박영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이날 노 직무대행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문자를 보냈고 초임 검사인 천영환 울산지검 검사도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국민에 대한 배임적 행위를 한 법무부 장관과 대검 수뇌부는 사퇴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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