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늘 예측 범위 안에 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지난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관세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습니다. ‘이변’이란 단어가 모처럼 현실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2~3일 내”, 강훈식 비서실장은 “이번 주 안”이라며 조인트 팩트시트(한미 합의문) 발표를 예고했습니다. 그리고 한 주가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참을성 없는 언론과 야당은 들끓고 있습니다. 특히 야당은 “또 양치기 소년”, “성과 포장용 이벤트였다”며 정부와 대통령실을 겨냥했습니다. 한 여권 관계자는 “합의 자체는 실체가 있는데도 참모들이 성급하게 시점을 못 박아버려 부담과 빌미를 줬다”고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이변에 가까운 극적 타결…한미 관세협상
미국 측 절차가 지연되면서 대통령실 공기까지 미묘하게 바뀌었습니다. 급기야 지난 7일(금요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기자들과 만나 “안보 분야의 경우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그대로 발표해도 될 만큼 문구가 완성됐지만, 회담에서 새로운 얘기들이 나와 반영할 필요성이 생겼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새 이슈에 대한 조정은 대부분 마친 상태이며, 미국에서 문건을 검토하면서 의견을 추가로 수렴하는 작업을 하느라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동안의 협상 흐름을 감안하면 ‘정상회담에서 새로 나온 이슈’는 재래식 무장 원자력잠수함 건조를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팩트시트에 해당 내용이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양 정상이 논의한 이슈는 다 커버한다”고 답하며 사실상 포함을 인정했습니다.
팩트시트 장담에 ‘머쓱한 침묵’흘러
극적 타결의 현장이 이제는 ‘머쓱한 침묵’으로 변한 형국입니다. 외교는 속도보다 정합성이 중요합니다. 상대국 절차, 의회 승인, 기술 검토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발표 자체가 리스크가 될 수 있습니다. 협상 중에는 늘 “상대방이 있어 구체적 언급은 어렵다”는 단서를 붙이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협상을 이어온 대통령실이었지만, 이번에는 ‘성과’라는 단어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참모들이 “최종 문구를 다듬는 과정에서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며 신중히 선을 그었다면, 이런 부담을 스스로 질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난 6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 비서실장이 “이번 주를 넘기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을 때 기자실에서 한숨이 새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외교 현안을 장담하듯 특정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상황이 이렇자 대통령실도 수습에 나섰습니다. 7일 대통령실은 국정감사장에서 강 실장의 발언의 취지를 바로 잡는 안내 문자를 아래와 같이 공지했습니다.
맞습니다. 강 실장의 발언은 주도면밀했고 정확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3일 대통령실 브리핑에서도 강 실장은 한·미 협상 결과 팩트시트 발표 시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양국 간에 이견이 크게 없는 상황”이라며 “팩트시트는 이번 주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저희의 자체적인 전망으로는 이번 주 내에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재차 밝힌 바 있습니다.
수직 상승한 李대통령 지지율…목 마른 성과
대통령의 참모들이 성과에 목 말랐던 것은 이해할 만합니다. 한미 관세협상을 포함한 APEC 외교 성과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수직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한국갤럽 11월 1주차 조사(4~6일, 전국 성인 1002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에 따르면,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63%로 한 달 반 만에 60%대를 회복했습니다. 부정 평가는 29%, 의견 유보는 8%였습니다. 긍정 요인 중 ‘외교’가 30%로 가장 높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실용외교의 결과물은 보수 언론마저 인정할 만큼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그 성과를 국민에게 보고하는 과정은 더 정교했어야 했습니다. 다 된 밥인데 팩트시트가 한 주 만에 나오면 어떻고, 한 달 만에 나오면 어떻겠습니까. 합의된 내용의 정합성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번 주 중에” “2~3일 안에”라는 말 한마디가 국민 기대를 높인 만큼, 한 달 새 6%포인트 오른 이 대통령 지지율도 이번 주 조사에서 되레 흔들릴 수 있습니다. 외교는 말로 빛을 낼 수도 있지만, 그 말 한마디로 쌓은 성과를 초라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언론도 며칠 안에 내놓느냐를 묻기보다 합의 문구의 내실을 따져 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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