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치 아라치는 초등학교 1학년 때인 1977년에 개봉한 대한민국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정식 영화제목은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로 동시대를 살아온 분들이라면 줄거리의 대강을 기억할 것이다. 주제곡 ‘달려라 마루치, 날아라 아라치’는 누군가 선창만 해주면 어렵지않게 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당시 관객수 16만명 이상을 기록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흥행에 있어 역사적 영화였다. 당시 부모님과 동행하지 않고 극장에서 벗들과 본 최초의 만화 영화였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기억될만한 영화였다. 당시 벗들은 영화관에서 마루치, 아라치와 같은 편이 되어 파란해골단과 용감하게 싸웠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한참동안 마루치, 아라치의 발차기를 흉내내며 지냈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인터넷에 마루치 아라치를 검색해 보았고 다행스럽게도 50년 가까이 지난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다시 만난 마루치 아라치는 마치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가 알프레도가 마지막으로 남겨 준 필름(검열에서 삭제된 키스 장면들을 모아놓은 필름)을 다시 보는듯 가슴을 울렸다. 멀리 떨어져 살아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그리운 벗을 준비 없이 갑작스레 만난 듯 뭔가 어색했지만 한 번 꼬옥 안아주고 싶은 영화였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마루치 아라치의 줄거리를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물리학자 장동환 박사는 동해 수중 공원에서 열리는 핵물리학자회의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결의를 하고자 한다. 이에 반해 파란해골단장은 장동환 박사를 납치해 광속으로 날아가는 우주선을 만들어 지구, 더 나아가 우주의 지배자가 되고자 한다. 물론 마루치 아라치가 수많은 역경을 극복한 후 파란해골단장을 쳐부수고 장동환 박사를 구출한다.’
거의 정지화면 같은 장면들은 현대 애니메이션의 시각으로 보면 유치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장면 하나하나가 모여 중간중간 끊어질듯 이어지는 이야기들로 신기하게 재탄생한다. 지금보아도 시대를 앞서간 장면, 너무나도 인간적인 장면, 한껏 섬뜩한 장면, 은근 안타까운 장면, 웃음을 참기 어려운 장면들이 어울어져 만화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들이 되어 한 편의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잠시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들어가 보자. 양 사범과 장 선생이 마루치 아라치가 살고 있는 동굴에 들어와 이름을 묻는 장면에서 마루치는 선생이 순수 우리말도 모르냐고 핀잔을 주면서, 마루치의 마루는 산마루, 등마루 할 때처럼 가장 높은 꼭대기를 뜻하는 것이고, 아라치의 아라는 알, 아래, 아랑 등 아름다운 소녀를 뜻한다고 또박또박 말해준다. 1970년대의 현실에서 그런 태도로 어른들이나 스승님들에게 말했다면 상당히 강한 물리적 타격을 감수해야 했다. 우리 모두 하고 싶었던 말이지만 억눌린 현실에서 입도 뻥끗하기 어려웠던 말을 마루치가 대신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봐도 속이 확 뚫리는듯 시원하다.
마루치 아라치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어깨가 쳐진 50대 중반의 아저씨, 아줌마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다. 뭐든 다 할 수 있었던 씩씩했던 초등학교 어린이로 잠시나마 돌아가는 기적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연재를 시작한 ‘마루치 아라치 인문학’이 애니메이션처럼 으뜸이 된다면 좋겠고 아름다운 글이 된다면 좋겠다. 욕심을 좀더 부려본다면 몇십 년이 흐른 뒤 다시 읽히는 글이 되어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면서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바라본다. 초등학교 1학년 마루치처럼 발차기를 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마루치 아라치 인문학을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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