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그립 시장은 ‘총성 없는 전쟁터’로 불린다. 골프 클럽 시장에 비하면 규모도 작고 조용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의 약 50%를 점유한 것으로 알려진 골프프라이드가 그립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가운데 슈퍼스트로크와 일본 업체 이오믹, 국산업체 캐비어, 해치골프 등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그립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건 클럽에 비해 개발 비용이나 인력이 적게 소요되는 등 시장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브랜드가 점차 많아지면서 각 업체들은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들을 쏟아내고 있다.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경쟁 업체와는 차별화된 도전을 하면서 자신들만의 특장점을 가진 야심작들을 내놓고 있다. 점점 더 치열해지는 ‘그립 전쟁’ 속에서 각 브랜드들이 살아남기 위해 모든 걸 쏟아 부은 전략적 아이템들을 소개한다.
그립계 ‘절대 1강’ 골프프라이드의 혁신 ‘얼라인 맥스’
그립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브랜드는 골프프라이드다. 1949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출신의 기업가이자 발명가인 토마스 L. 파윅이 창립한 이후 골프프라이드는 그립 분야에서 혁신적인 제품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원래 골프 그립은 동물 가죽을 가공해서 만들었는데 골프프라이드가 고무 소재를 사용하면서 이제는 고무 그립이 보편화됐다. 샤프트에 직접 끼워 넣을 수 있는 ‘슬립 온’ 그립을 처음 선보인 것도 골프프라이드다.
골프프라이드의 혁신적 아이디어는 그립 시장에서의 ‘아성’으로 돌아왔다. 글로벌 시장에서 골프프라이드는 점유율 약 50%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위 자리를 두고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경쟁 브랜드들과는 이미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는 각각 80%와 85%의 선수들이 골프프라이드 그립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시장 장악력을 선보이고 있다.
매번 혁신적인 소재와 아이디어로 그립 업계를 선도해 온 골프프라이드는 2017년 또 한 번의 혁신을 통해 2위 그룹과의 격차를 벌리려 했다. 골퍼의 수준과 관계없이 스윙 내내 일관된 손 위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얼라인(ALIGN) 기술을 시장에 내놓으며 “역시 골프프라이드”라는 찬사를 받았다. 얼라인 기술은 출시와 함께 최초의 돌출형 리지 디자인으로 투어 골퍼와 아마추어 골퍼 사이에서 탄탄한 팬 층을 확보했다.
이런 찬사에도 골프프라이드는 혁신을 멈추지 않았다. 일부 골퍼들이 훨씬 더 뚜렷한 리지를 원한다는 피드백을 받았고 기존 모델을 보완하는 2세대 디자인으로 리지를 25% 더 높여 일관성을 극대화한 얼라인 맥스를 개발했다. 또 그립의 상단에서 하단까지 이어지는 보다 긴 리지를 적용해 골퍼가 원하는 샷에 맞춰 손 위치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게 만들었다.
얼라인 맥스는 기존 얼라인의 대체품이라기보다는 돌출형 리지 기술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싶은 골퍼들을 위한 또 다른 선택지다. 얼라인 맥스의 장점을 살펴보면 먼저 일관된 손 위치로 손의 자연스러운 윤곽에 맞춰 일관된 손 배치와 정렬을 돕는다. 또 셋업과 스윙 전반에서 클럽페이스 각도를 더욱 정확하게 인식하도록 도와 클럽페이스를 스퀘어 상태로 유지할 수 있게 만든다.
국산 그립의 자존심 캐비어…그들의 야심작 ‘사이클론’
외국 업체들의 홍수 속에 굳건하게 국산 골프 그립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아이앤씨테크의 ‘캐비어(Caviar)’다. 글로벌 업체에 비해 규모와 제품 수는 적지만 한국 골퍼들의 니즈에 맞는 제품을 발 빠르게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을 살려 다양한 컬러의 감각적인 제품을 내놓고 있다.
캐비어의 주력 상품은 사이클론 트리 플렉스 그립이다. 그립을 삼중 구조로 제작해 강한 비틀림 저항 응력이 발생하도록 설계됐다. 삼중 구조 중 엘보(Elbow)층은 충격 흡수 기능을 담당한다. 반복적인 강한 임팩트로 인해 발생하는 충격이 엘보에 전해지지 않도록 이를 흡수해 골퍼들의 자연스런 스윙이 가능하도록 만든다. 두 번째 토크층은 비틀림을 방지한다. 헤드의 원심력과 공기 저항에 의해 발생하는 비틀림을 방지하기 위해 스윙 속도에 맞게 재질의 경도 차이를 조정한 층이다. 마지막 바깥은 미끄럼 방지층이다. 강력한 미끄럼 방지를 위해 아일랜드 엠보싱 구조로 설계했다. 바다의 섬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엠보싱 위에 또 하나의 엠보싱을 독립적으로 구성한 형태다. 여기에 왼손과 오른손 부분의 엠보싱 구조를 차별화해 부드러운 스윙과 미끄럼 방지를 극대화했다. 이를 통해 러프나 벙커, 페어웨이 등 다양한 환경에서도 탁월한 비거리와 함께 안정성을 제공한다.
사이클론 트리 플렉스 그립에는 악력이 약해도 쉽게 빠지지 않게 새끼손가락을 잡아주는 주는 고리형 캡이 탑재돼 있어 골퍼들의 편안한 스윙을 돕는다. 이밖에 캐비어가 자체 개발한 엘라스토머 소재를 사용해 그립의 빠른 경화를 막고 부드러운 촉감의 유지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골프 그립은 온도가 낮아지면 굳고 딱딱해져서 미끄럽게 되는데 캐비어는 온도 변화에 딱딱해지는 고무 특성을 완화시키는 첨단 소재를 사용해 쉽게 변형되지 않게 제작했다. 여기에 자체 개발한 엘라스토머 분자에 강력한 결합력을 가진 특수 소재와 실리카 보강제를 첨가해 내구성과 내마모성을 30% 이상 향상시켰다.
톱랭커 선택 받은 이오믹…그들의 히트 상품 ‘스티키 아미’
PGA 투어 11승의 마쓰야마 히데키(일본), 세계 랭킹 3위이자 최연소로 골프 명예의 전당에 가입한 리디아 고(뉴질랜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박현경, 이예원, 노승희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일본의 골프 그립 업체 이오믹 제품을 사용하는 선수들이라는 것이다.
마쓰야마는 이오믹의 스윙 그립 X-그립 2.3을 사용하고 있다. 리디아 고와 박현경도 스윙 그립을 이오믹 제품으로 맞춰 사용하고 있으며 이예원과 노승희는 퍼팅 그립을 따로 세팅해 사용 중이다.
일본 골프 그립 브랜드인 이오믹은 일반 골퍼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절대 강자’ 골프프라이드 아성에 도전하는 2위 업체들 중 하나다. 이오믹은 자신들이 직접 개발한 신기술을 골프 그립에 집약해 토크를 최대한으로 낮추는 데 집중했다. 기존 그립 브랜드들이 사용했던 고무 대신 ‘이오 맥스(IOMAX)’라는 신소재를 탑재하고 그립 엔드 내부를 길게 함으로써 비틀림을 억제하는 로 토크 컨트롤 기능을 넣었다. 동시에 그립 엔드 비중을 높여 헤드가 가볍게 느껴져 카운터 밸런스 효과를 구현해 헤드 스피드 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 제품을 탄생시켰다. 이로 인해 이오믹 그립은 토크를 0.2~0.3mm까지 낮췄다.
이오믹의 최근 주력 상품은 남성용인 스티키 블랙 아미와 여성용인 스티키 아미 레이디스다. 스티키 블랙 아미는 이오믹의 컬러링 기술을 적용해 만든 그립이다. 스티키 아미 그립에 검은색을 가미한 카무플라주 패턴이다. 그립마다 패턴이 다른 게 특징이다. 스티키 아미 레이디스는 기존 스티키 아미 그립에서 여성들이 편안하게 잡을 수 있도록 크기와 무게를 줄여 출시한 제품이다. 총 5가지 색상으로 출시됐으며 리디아 고가 사용하는 제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매킬로이의 퍼터 그립 슈퍼스트로크…램킨의 기술력 더해진 스윙 그립까지
올 4월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89회 마스터스 최종일. 18번 홀(파4) 연장 2차전에서 버디 퍼트에 성공하면서 4대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퍼터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의 왼손에는 슈퍼스트로크의 제너지 피스톨 투어 퍼터 그립이 꼭 쥐어져 있었다.
슈퍼스트로크는 2009년 오버사이즈 퍼터 그립을 처음 선보이며 골프 그립 시장에 혁신을 일으킨 브랜드다. 모든 스윙과 스트로크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혁신해온 슈퍼스트로크는 스윙 그립 라인업도 강화하기 위해 독보적인 그립 제조 기술력을 가진 100년 역사의 램킨을 지난해 인수했다.
슈퍼스트로크는 최근엔 램킨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스윙 그립 레블(REVL) 라인을 출시했다. 레블 라인은 램킨의 기술력과 슈퍼스트로크만의 차별화된 인체공학적 디자인을 전략적으로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정교한 컨트롤과 뛰어난 내구성 또는 최상의 편안함 등 무엇을 추구하든 모든 골퍼는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레블 그립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퓨전, 플레이어, 컴포트의 세 가지 옵션으로 구성됐으며 램킨의 창립 100주년을 기리기 위해 모든 그립 끝부분에 특별 제작된 ‘램킨 100’ 엠블럼을 새겼다.
PGA 투어의 조던 스피스(미국), 패트릭 캔틀레이(미국), 저스틴 로즈(남아공) 등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슈퍼스트로크 레블 그립을 올 시즌부터 사용하고 있다. 2019년 PGA 투어 신인상 수상자이자 통산 2승을 자랑하는 임성재도 슈퍼스트로크의 앰버서더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슈퍼스트로크의 한국 공식 수입원은 PXG를 국내에 수입·판매하고 있는 카네가 맡고 있다. 퍼트 그립은 총 7가지, 스윙 그립은 총 5가지를 판매하고 있다. 공식 사이트에서는 그립 셀렉터 툴을 이용해 몇 가지 간단한 질문에 답을 하면 자신에게 알맞은 완벽한 그립을 추천받을 수도 있다.
하이엔드 국산 골프그립 브랜드, 해치골프
지난해 론칭한 해치골프는 골프를 즐기는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기능과 함께 개성과 스타일을 중요시하는 새로운 골퍼 세대를 위해 탄생했다. 검은색 고무소재의 그립이 대부분인 기존 시장에서 해치골프는 그립으로 패션성과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골퍼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라인업은 뉴트럴 그립과 뉴 스트라이프 그립 두 가지다. 모두 순도 높은 합성 고무 소재를 사용해 만들었으며 세련되고 감성적인 디자인을 더했다.
뉴트럴 그립은 산업 디자이너와 순수 미술 작가의 협업을 통해 기능적인 만족도와 예술적 심미성을 강조했다. 절제된 세련미와 클래식 컬러의 조합이 특징이다. 여성용은 스카이블루, 버건디, 핑크, 그린, 베이지 5가지 색상으로 구성됐다. 남성용은 블랙, 베이지, 그린, 스카이블루 4가지다.
스트라이프 패턴으로 산뜻하고 경쾌한 컬러감을 뽐내는 뉴 스트라이프 그립은 여성용 4가지(라일락, 레몬, 브라운, 민트), 남성용 3가지(카키, 화이트, 블루) 색상이 출시됐다.
디자인 골프 그립 시장의 발전이라는 비전을 앞세운 해치골프는 스윙 웨이트를 조절하는 등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그립 버튼을 개발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그립 버튼은 그립 끝에 붙이는 동전 형태의 장식으로 표면에 양각 혹은 음각, 다채로운 컬러로 그래픽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 비상시 볼마커로도 사용 가능하며 골프채 분실 시 방지를 위한 이름표 역할도 할 수 있다.
[서울경제 골프먼슬리]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phillies@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