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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아닌 이해가 필요한 화학물질 [이무열의 생활 안전]

이무열 동국대 약대 교수(국민건강생활안전연구회 이사)

40%가 위험한 화학제품 문구 안봐

정부의 안전사회 노력 빛 발하려면

기업 규제 넘어 소비자 참여시켜야

이무열 동국대 약대 교수(국민건강생활안전연구회 이사)




‘구연산으로 청소하고 락스로 마무리했는데 눈이 따갑고 구역질이 나며 어지럽다’는 한 소비자의 하소연을 접한 적이 있다. 산성 세제와 락스를 함께 사용하면 염소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은 "산성 세제나 주방 세제 등과 혼합하여 사용하지 마십시오. 자극적인 가스를 방출할 수 있습니다.”라는 제품 경고 문구를 잘 눈여겨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몇해전 락스 중독으로 인한 사망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적도 있다.

국민건강생활안전연구회가 2023년에 전국 성인 2046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 따르면 ‘생활 화학제품을 사용하기 전 설명서를 꼼꼼히 읽는다’고 응답한 소비자는 5점 만점에 3.18점에 불과했다.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고 번거로움을 피하고도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10여 년간 정부는 화학 물질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 제도적 기반을 꾸준히 다져왔다.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화학물질관리법’, ‘인체적용제품의 위해성평가에 관한 법률’ 등이 시행되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초록누리’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독성정보제공시스템(Tox-Info)’을 통해 화학물질과 제품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을 전면 개편해 운영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도 실제 사용 현장에서 안전을 담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무리 정교한 규제도 소비자의 행동을 직접 통제할 수 없고, 아무리 많은 정보도 소비자가 찾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화학은 어렵고 독성학은 더욱 낯설다. 이해 부족은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회피로 이어진다. 스마트폰은 오용의 폐해에도 불구하고 그 유용성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잘 안다. 화학물질도 첨단 과학의 산물이며, 막연한 기피는 과학이 제공하는 편익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다. 소비자에게 필요한 것은 ‘화학물질 혐오(chemophobia)’가 아니라 ‘위험 이해력(risk literacy)’이다.



앞선 조사에 따르면 생활 화학제품 관련 정보의 이해 난이도는 5점 만점에 2.73점이었다. 절반 가까운 소비자가 “내용이 어렵다”라고 답한 셈이다. 따라서 사용법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거나 경고 문구를 시각화하여 소비자들의 직관적인 이해를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은 누구의 몫인가?



화학 물질의 위해를 줄이고 안전을 강화하는 방안은 먼저 정부의 제도에 기대게 된다. 다만 제도는 산업계를 중심으로 한 규제에 머무르기 쉽다. 이런 점에서 시민사회와 산업계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소통 플랫폼으로서 ‘화학안전정책포럼’의 운영은 고무적이다. 운영을 시작한 지 벌써 서너해가 지났으니 그간의 성과를 돌아볼 때다. 보장된 국민의 참여가 실제로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논의가 얼마나 개방적이었는지, 일부 단체에 발언권이 집중되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제도와 정책 설계에서 소비자 입장이 얼마나 고려되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물론 국내 산업계에서 화학 물질이나 제품 관련 규제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엄격하고 까다로워 사업하기 어렵다고 푸념하는 현실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 이제는 정부가 산업계에 대한 규제 관리 차원을 넘어 종합적으로 소비자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정부는 앞으로의 5년을 위한 ‘제2차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 관리 종합계획’ 수립을 준비하고 있다. 국민 건강을 위해 사전에 꼼꼼하게 규제책을 보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소비자와의 소통에 신경을 써야 한다. 결국 소비자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반영되는 통로를 잘 마련할 때 비로소 ‘화학 물질 안전 사회’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전 사회를 위한 방점은 소비자의 협력 없이는 찍을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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