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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케이블과 데이터 안보 [김윤명의 AI 웨이브]

김윤명 디지털정책연구소장

AI 시대 해저케이블로 데이터 전송

바다 아래 국가 신경망 재점검할 때





인공지능 시대의 데이터는 하늘을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다속을 달린다. 전 세계 인터넷과 모바일 트래픽의 95% 이상이 해저케이블로 전송된다. 국제 데이터의 대부분은 위성이 아니라 해저 광케이블을 통해 이동한다는 의미이다. 금융거래부터 원격의료, 디지털정부 서비스, 심지어 국가안보와 우주·항법 데이터까지 국가의 신경망인 유리섬유에 실려 심해를 가로지른다. 그럼에도 해저케이블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동안 정책적 관심을 두지 못했다. 문제는 관심의 부족이 곧 취약성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해저 지진과 해류, 어선 닻 걸림 같은 우발 요인에 더해, 특정 구간을 노린 고의 훼손이나 사이버공격 가능성까지 겹치면, 케이블 하나의 단절이 산업과 행정 등 국가 전반의 장애로 번질 수 있다.

해저케이블을 민간 통신설비로만 볼 것인가, 국가 기반으로 볼 것인가는 정책의 출발점을 가른다. 지금까지는 사업자 자율과 비용 효율이 우선이었지만, AI 전환과 클라우드 집중이 가속화되면서 기준을 바꿔야 한다. 핵심은 회복탄력성이다. 안전한 시스템은 고장이 ‘없다’가 아니라, 고장이 ‘나도 버틴다’. 이를 위해 첫째, 경로와 착륙지의 지리적 분산, 육상 구간 이원화 같은 다중화 설계를 의무화해야 한다. 둘째, 산업 특성에 맞춘 복구 시간 목표를 정해 장비·선박·인력의 상시 대기 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셋째, 허가·조달·요금 인가 등 핵심 규제수단에 안전·복구 요건을 연동해, 안전이 비용 항목이 아니라 사업의 기본 조건이 되도록 해야 한다.

보안은 사이버와 물리를 함께 봐야 한다. 착륙국과 중계국에는 이중 전력과 냉각, 출입통제를 기본으로 하고, 24시간 보안관제와 이상징후 탐지를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해상 구간은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과 해양 레이더, 드론·초계 체계를 연계해 위험구역을 동적으로 관리하고, 접근 패턴을 상시 모니터링해야 한다. 전 구간 트래픽은 강한 암호화를 기본값으로 삼되, 메타데이터 수준의 이상 탐지로 변조·유출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는 체계를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신·금융·클라우드·플랫폼이 함께하는 합동 레드팀·블루팀 훈련을 정례화하면 사이버-물리 융합 공격에도 대응력이 축적될 것이다.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은 국가가 뒷받침해야 한다. 다경로 확보나 심해 구간, 장거리 우회 루트처럼 수익성이 낮지만 국가에 반드시 필요한 투자에는 정책금융과 세제 지원이 유효하다. 대규모 장애에 대비한 재보험·공동보험 풀을 만들어 리스크를 분산하고, 정부·군·정보기관이 보유한 해양 위험지도를 민간과 상시 공유하면 설계·운영의 합리성이 높아진다. 더 나아가 인접국과 공동 매설과 상호 백업 협정을 추진해 지정학 리스크를 분산하는 외교적 해법도 병행할 때 효과가 커진다. 바다는 연결되어 있고, 연결이 곧 안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해저케이블/클라우드/국가 AI 인프라는 하나의 삼각 구조로 설계되어야 한다. 공공 GPU와 국가 LLM, 데이터 안심구역, 디지털정부 서비스는 안정적인 백본 없이는 힘을 쓰지 못한다. 케이블의 용량과 지연, 가용성은 곧 클라우드와 AI의 성능지표다.



평소에는 효율을 따지되, 위기 시에는 원칙이 바뀌어야 한다. 트래픽의 우선순위를 재배치하고, 해외·대체 루트로 경로를 우회하며, 공공·금융 같은 필수 서비스에 필요한 대역폭·지연·손실 한도에 대한 서비스 품질(QoS)을 강제하는 국가 AI 비상모드가 필요하다. 이런 장치가 있어야 데이터 흐름이 끊기지 않고, 데이터 주권이 구호를 넘어 실제로 작동할 것이다.

해저케이블은 바다 밑에 숨은 신경망이다. 오늘날 하이퍼스케일러(빅테크)가 해저케이블 신설 투자와 공동 소유를 주도하고, 국제 데이터 사용 대역폭의 큰 몫을 차지하는 흐름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해저케이블의 60% 이상을 하이퍼스케일러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현실은 해저 인프라를 국가 주권 차원의 전략 자산으로 다루어야 함을 시사한다.

민간의 효율에 국가의 책무를 더하고, 법·제도·재정이 맞물리는 구조로 전환할 때 우리는 위기에도 끊기지 않는 연결과 더 강한 데이터 주권을 갖게 된다. 국가의 소버린이 해저케이블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작은 수면 아래 인프라를 국가 전략의 한가운데로 올려놓는 일이다.

서경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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