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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26만 GPU 확보와 성장의 조건

김지희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대규모 칩만큼 혁신 필요한 때

기업의 자유 폭넓게 용인해야

'창조적 파괴'로 성장 주도할 것

김지희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경제성장과 기술 발전의 관계를 탐구해온 세 학자에게 돌아갔다. 필리프 아기옹, 피터 하윗, 조엘 모키어는 새로운 기술이 어떻게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사회가 그것을 받아들이며 경제가 성장해 왔는지를 각자의 방식으로 설명했다. 이들 연구의 핵심 메시지는 지속적인 성장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낡은 것을 대체하는 혁신의 순환 속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은 꾸준히 ‘성장의 원천’에 주목해왔다. 2018년 노벨경제학상은 그 원천을 사람에게서 찾은 폴 로머에게 돌아갔다. 로머는 기술과 혁신이 사람에게서 나오는 아이디어이며 이 아이디어는 물질적 자원과 달리 나눌수록 줄지 않기 때문에 인류 전체가 공유할 수 있고 이것이 경제성장을 이끄는 힘이라고 봤다. ‘컴퓨터를 연결해 서로 통신하게 한다’는 인터넷의 아이디어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연결을 확장시켰고 더 많은 사람이 쓰고 개선할수록 속도와 품질이 높아졌다. 전 세계가 인터넷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누리게 된 것도 그 결과다. 이처럼 아이디어가 공유되고 발전할 때 경제는 성장한다. 로머는 이런 점에서 아이디어를 만들고 나누는 ‘사람’이 경제성장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수상자 아기옹과 하윗은 여기에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라는 역동성을 더했다. 로머가 공유되는 아이디어의 축적을 성장의 연료로 봤다면 이들은 그 아이디어가 경제 안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 즉 새로운 기술이 어떻게 낡은 기술을 대체하며 경쟁이 이뤄지는지를 설명했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등장은 마차와 마부라는 산업을 사라지게 했지만 동시에 물류와 이동의 효율성을 혁명적으로 높였다. 파괴는 고통스럽지만 그 속에서 생산성이 향상되고 사회 전체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아기옹과 하윗의 연구는 이런 교체와 경쟁의 순환이야말로 경제를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핵심 동력임을 보였다.

로머의 ‘협력적 공유’와 아기옹·하윗의 ‘경쟁적 파괴’는 언뜻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이론은 성장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로머의 말처럼 사람들 간의 협력과 공유를 통해 축적되지만 그 아이디어가 시장에 적용돼 기존의 비효율을 대체할 때는 아기옹과 하윗의 말처럼 경쟁과 파괴의 모습을 띤다. 아이디어가 쌓여야 혁신이 가능하고 경쟁이 있어야 혁신이 현실이 된다. 성장은 나누는 힘과 깨뜨리는 힘이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지속된다.



이러한 성장의 원리와 혁신의 조건은 지금 인공지능(AI) 시대를 준비하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26만 개가 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우리나라가 곧 확보하게 된다고 한다. 이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다. 그러나 칩의 수가 곧 기술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 자원이 어떻게 활용되고 어떤 아이디어를 낳느냐이다. 이제 AI 시대의 물리적 환경을 마련했으니 그 위에서 협력과 도전, 창조적 파괴가 일어날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아기옹과 하윗, 그리고 이들의 연구를 발전시킨 후속 연구들은 창조적 파괴의 조건으로 교육과 인적 자본, 기업의 자유로운 진입, 연구개발(R&D) 인센티브,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적 관용을 제시한다. 여기에 모키어는 기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회의 문화적 태도가 이 모든 것의 근간임을 강조한다. 대규모 AI 인프라가 확보된 우리에게 이는 분명한 메시지다. 진짜 성장은 결국 그 인프라 위에서 뛰놀 ‘사람’에게 달려 있다. 아무리 뛰어난 AI 인프라를 갖춰도 실패가 낙오로 여겨지고 진입이 막히며 변화와 갈등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아무도 낡은 것을 파괴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노벨경제학상이 던지는 메시지는 하드웨어를 넘어선 ‘사회적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다. 아이디어를 만들고 나누는 ‘사람’이 마음껏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의 ‘창조적 파괴’가 활발히 일어나며 새로운 기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문화적 토양이 뒷받침될 때 AI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을 이끄는 든든한 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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