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동네’에서 산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도시에서 평생을 살지만 삶의 기억과 체험은 언제나 동네에서 출발한다. 매일 걷는 골목길, 작은 카페와 편의점,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와 학교 운동장, 어르신들이 모이는 작은 공원은 세대마다 다른 추억을 품고 있지만 모두에게 친근한 삶의 무대다. 19세기 김정호 선생의 ‘수선전도’에도 재동과 대사동(현재 인사동)이 기록돼 있듯이 동네는 오랜 시간 우리의 삶을 지탱해온 기본 단위였다. 조선시대 한양 사람들도 우물(洞)을 함께 쓰며 공동체를 이뤘다. 우물을 나눠 마시는 사람들이 곧 이웃이 됐고 함께 살아가는 터전이 바로 동네였다.
도시는 크고 복잡하다. 변화와 발전은 수치와 통계로 나타나지만 시민이 직접 체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동네의 변화는 작지만 빠르고 분명하며 시민이 생활 속에서 곧바로 느낄 수 있다. 사소한 불편도 바로 드러나고 작은 개선만으로도 삶의 질은 달라진다. 가까운 곳에서의 만족이 도시 변화에 대한 믿음을 키우고 동네의 작은 성공이 모여 도시를 바꾼다. 도시를 움직이는 힘은 결국 동네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동네라는 말조차 점점 낯설어지고 있다. 이는 곧 우리의 생활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다. 더 이상 이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저층 주거지만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 건설과 재개발·재건축에도 동네의 회복이 절실하다. 지금까지 아파트는 공급 측면의 성과는 있었지만 공동체 관계나 동네다운 정서는 소홀히 여겨졌다.
앞으로의 정책은 변화하는 공동 주거를 생활권과 유기적으로 연계한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더 나아가 대규모 개발과 함께 소규모 개발을 묶고 연계하는 정비 방식의 혁신과 이를 뒷받침할 행정과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야 건전한 사업성과 주민이 만족할 수 있는 성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도시에서 추상적으로 여겨져 그동안 실현이 어려웠던 ‘마을’ 개념도 동네 기반 위에 첨단기술과 이웃의 협력이 더해질 때, 모두가 바라는 새로운 도시 모델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우리나라가 추진하는 인공지능(AI), 디지털 전환, 스마트도시와 같은 거대한 화두와 첨단기술도 동네에서 실현될 때 시민의 공감을 얻는다. 첨단기술이 단순히 구현에만 그치지 않고 동네를 건강하게 하고 이웃 관계를 풍요롭게 하는 도구로 쓰일 때 시민의 일상적 행복은 더욱 커진다.
국제적 논의 역시 다르지 않다. 유엔 해비타트는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속에 도시 회복의 힘은 동네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첨단기술과 정책이 시민 삶에 정착하려면 생활 단위인 동네 중심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도시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파리 15분 도시’ 역시 이동 거리를 줄이고 동네 안에서 필요한 삶의 요소를 충족하는 생활형 도시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도 동네는 시민 공감과 관계가 살아 움직이는 생활 단위이자 정책이 가장 효과를 내는 실행 단위로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도시가 나아갈 길은 결국 동네에 있다. 동네는 지나온 우리의 삶의 뿌리였고 지금의 일상이자 터전이며 앞으로의 행복의 기반이다. 우리는 도시 전체가 아니라 매일 사는 동네에서 행복을 배운다. 동네가 살아나야 도시가 건강해지고 도시의 미래도 그곳에서 완성된다. 좋은 도시는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오늘, 우리가 걷는 동네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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