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연료를 사용하는 핵추진잠수함 도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바로 다음 날인 10월 30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나는 한국이 현재 보유한 구식이고 기동성이 떨어지는 디젤잠수함 대신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밝히면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추진잠수함을 개발·보유할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도입은 우리 군의 오랜 숙원이다. 군 내부적으로 한국이 독자 설계·건조한 3세대 잠수함인 장보고-Ⅲ 배치-Ⅱ 장영실급(3600톤급)의 후속 잠수함을 핵 추진 방식으로 건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군은 지금부터 건조에 들어가면 2030년대 중반에 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척의 건조 비용은 2조~3조 원가량으로 최소 5000톤급 대형 핵추진잠수함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인도에 이어 세계 일곱 번째 핵추진잠수함 보유국에 올라서게 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핵추진잠수함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 “사실상 핵무기가 아니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한국은 현재 핵무기를 제작 및 보유할 수 없다. 특히 재래식 탄두가 장착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나 순항미사일을 탑재할 뿐 핵 공격 능력이 없는 ‘비핵무기’로 분류돼 NPT에 저촉되지 않는다. 핵무기를 만들 수 없는 저농축우라늄(농축도 20% 미만)을 핵연료로 이용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핵추진잠수함 도입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두 잠수함 간 능력 차이 때문이다.
핵추진잠수함과 디젤잠수함의 가장 큰 차이는 바닷속에서 기동하는 속도다. 핵추진잠수함이 KTX라면 디젤잠수함은 완행열차로 구분된다. 핵추진잠수함은 평균 시속 37∼47㎞로 지구 한 바퀴(4만 120㎞)를 도는 데 40여 일이 걸린다. 반면 디젤잠수함은 평균 시속 11∼15㎞로 140여 일이 소요된다.
특히 핵추진잠수함은 도중에 보급품 및 연료를 재보급받거나 기항지도 필요 없다. 수중 작전 능력 측면에서도 핵추진잠수함은 무제한이지만 디젤잠수함은 매일 의무적으로 수면 가까이 올라와야 하고 속력 및 수중 작전 지속 능력이 떨어지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공격 능력 면에서 핵추진잠수함이 헤비급 펀치라면 디젤잠수함은 플라이급 펀치 수준이다. 생존 능력(은밀성) 역시 핵추진잠수함이 스텔스함이라면 디젤잠수함은 세미 스텔스함으로 평가된다.
잠수함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탄도미사일을 운용하는 핵추진(원자력)잠수함의 함종 분류기호는 ‘SSBN’로 불린다. 최초로 실용화한 미 해군에서 명명했다. SS는 ‘잠수함(Ship Submersible)’, B는 ‘탄도미사일(Ballistic)’, N은 ‘원자력(Nuclear)’을 의미한다. 현존 잠수함 중에 가장 크고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갖췄다.
다음으로 순항미사일 탑재 핵추진잠수함은 ‘SSGN’, 탄도미사일을 운용하지 않는 공격형 핵추진잠수함은 ‘SSN’으로 불린다. 추진 체계가 디젤엔진으로 탄도미사일을 탑재한 재래식 잠수함은 ‘SSB’로 호칭된다.
미국을 기준으로 SSN은 핵추진잠수함(로스앤젤레스(LA)급·버지니아급·시울프급, 대함전 및 대잠전을 주임무로 수행), SSGN은 핵추진순항미사일잠수함(오하이오급, 토마호크 순항유도탄 이용 타격 임무 수행), SSBN은 핵추진탄도미사일잠수함(오하이오급, SLBM 적재해 전략적 임무 수행) 등이 해당된다. SSB은 재래식 탄도미사일잠수함(한국 도산안창호급)이 포함된다.
공격형 잠수함은 크게 세 가지 등급이 있다. 미국의 로스앤젤레스급·시울프급·버지니아급 등이다.
최초의 잠수함은 로스앤젤레스급 고속 공격형 잠수함이다. 1976년 처음 취역해 총 62척이 건조됐으며 마지막 취역 잠수함은 1996년 9월 취역한 USS 샤이엔함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추진잠수함이 로스앤젤레스급이다. 뉴욕 올버니,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애리조나 투손과 같은 미국 도시의 이름이 붙여졌다.
제조 비용은 2019년 기준으로 15억 9000만 달러(현 시세 약 2조 2310억 원)에 달한다. 배수량은 부상 시 6082톤, 잠수 시 6927톤이다. 길이는 110m이며 추진기는 1기의 S6G 원자로(150~165㎿)가 적용됐다. 속도는 해상과 잠항 시 모두 20노트(시속 23마일·약 37㎞)이며 잠수 깊이는 290m에 달한다.
시울프급은 로스앤젤레스급의 후속 기종이다. 1983년에 디자인 작업을 시작해 10년간 29척의 잠수함이 건조될 예정이었지만 12척으로 축소됐다. 냉전 종식과 예산 제약으로 1995년 함대 추가가 취소된 탓이다. 시울프급은 척당 약 30억 달러(약 4조 2100억 원)의 비용이 든다.
부상 시 8600톤, 수중에서는 9138톤(USS지미카터는 1만 2139톤)이다. 1개의 S6W 원자로가 5만 7000마력(43㎿)의 추진력을 낸다. 속도는 무음으로 20노트(시속 37㎞), 최대 35노트(〃65㎞)가 가능하다. 무제한 항속거리를 가지고 있어 잠수 깊이는 490m에 이른다. 50기의 토마호크 함대지 공격미사일, 하푼 대함미사일, Mk 48 유도 어뢰를 탑재했다.
2004년에 취역한 버지니아급 잠수함은 핵추진순항미사일 고속공격형 잠수함이다. 제너럴다이내믹스 일렉트릭보트(EB)와 헌팅턴잉걸스인더스트리가 설계했다. 스텔스와 정보 수집 및 무기 시스템 기술을 통합한 미 해군의 최신 잠수함 모델이다. 미 해군은 최근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을 버지니아급 잠수함으로 대체할 예정이다.
제작 비용은 2023년 기준으로는 35억 달러(약 4조 9119억 원)에 이른다. 길이는 115m와 140m 두 형태가 있다. S9G 원자로로 추진되며 28만 마력(210㎿)의 힘을 발휘한다. 2개의 스팀터빈으로 4만 마력(30㎿)의 출력이 가능하다. 속도는 25노트(시속 46㎞) 이상으로 항속거리는 무제한이다.
핵추진탄도미사일잠수함(SSBN)으로 분류되는 미 해군의 오하이오급 잠수함은 1981년부터 운용하기 시작했다. 성능 개량을 통해 현재 미 해군이 운용하는 ‘전략 핵 추진 잠수함’의 대명사로 통한다. ‘부머스(Boomers)’로 불리며 미국의 전략적 핵 억지력의 일환으로 한 번에 수 개월 동안 수중 작전 수행이 가능하다. 오하이오급 잠수함에는14척의 SSBN과 4척의 순항미사일잠수함(SSGN)이 포함된다. 각각 1만 8750톤의 배수량을 가지고 있다.
옛 소련이 설계한 4만 8000톤급 타이푼급과 2만 4000톤급 보레이급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잠수함이다. 오하이오급 잠수함에는 24발의 SLBM ‘트라이던트Ⅱ’를 탑재하고 있다. 러시아 핵추진잠수함 ‘보레이급’의 16발 미사일, ‘타이푼급’의 20발 미사일보다 더 많아 공격력이 훨씬 강하다.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도입에 나선다면 롤모델로는 뭐가 있을까.
현재 미 해군이 가장 많이 보유한 버지니아급 잠수함은 7800톤급이다. 건조 비용은 3조 6000억 원에 달한다. 영국의 최신형 아스튜트급 공격용 핵추진잠수함은 7000톤급으로 건조 비용은 2조 원 이상이다. 프랑스 바라쿠다급(쉬프랑급) 핵추진잠수함은 5400톤급으로 건조 비용은 1조 6000억 원가량이다. 한국형 핵추진잠수함이 채택할 5000톤급과 체급이 유사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프랑스는 괜찮은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개발 파트너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다.
게다가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하기 이전에는 20% 미만 저농축우라늄으로 핵추진잠수함 건조 및 운용이 가능하다. 따라서 프랑스 바라쿠다급(5400톤) 핵추진잠수함은 농축률 20% 미만인 핵연료를 사용하는 만큼 고농축을 제한한 한미 원자력협정 위배 논란을 피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우리 군의 핵추진잠수함 롤모델로 꼽힌다.
루비급 잠수함의 후속인 바라쿠다급 잠수함은 프랑스 DCNS사(社)가 개발했다. 한국형 핵추진잠수함의 모델로 부각된 바라쿠다급 핵추진잠수함은 안전 잠항 심도 400m, 최고 속력은 수중 25노트(시속 46㎞), 수상 14노트(〃26㎞)로 60명의 승조원이 탑승한다. 최대 70일까지 작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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