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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정 칼럼] 국회 국정감사 유감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올해 정기 국회의 국정감사가 이제 막바지로 향해 가고 있다. 그런데 국감을 지켜본 기자와 전문가들의 평은 올해 국감이 사상 최악에 가깝다는 것이다. 특별히 드러난 이슈나 참신한 정책 대안 제시는 없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국회의원들의 추태만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행정부나 유관 기관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국감은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다. 물론 대부분의 민주 국가에서는 의회가 정부를 견제한다는 의미에서 국정조사나 청문회 등을 개최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처럼 정기적으로 광범위한 기관들에 대한 감사를 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1987년 헌법을 개정할 때 유신헌법으로 폐지되었던 국감을 부활하면서 막강했던 행정부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국회에 큰 권한을 주었던 것 같다.

사실 국감은 국회의원들이 개인적인 실력을 발휘할 좋은 기회이다. 국회의 다른 고유 업무인 법안 통과나 예산 배정은 다수결로 결정되기 때문에 다른 의원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정당 지도부의 방침도 중요하다. 하지만 국감에서의 의원들 질문이나 이슈 제기는 다수결의 제한을 받지 않고 정당 지도부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다. 오직 의원 개개인의 소신과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용기와 실력만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의정 활동이 자주 다수당의 의원 숫자에 막히는 소수 야당 의원들에게는 자신의 실력을 알릴 절호의 기회이다.

그러나 이번 국감에서는 눈에 띌만한 비리를 폭로하거나 큰 이슈를 제기한 스타 국회의원이 없었다. 결국 의원들의 성의나 실력 부족을 탓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자신들의 개인적인 일에 대한 보복성 질의나 사과 요구, 질 낮은 합성 사진 등으로 국감장을 희화화하는 일들만 국민들의 눈에 띄었다. 이번 국감은 그렇지 않아도 바닥을 치고 있는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더 깎아 먹은 것이다. 이처럼 국감이 질 낮은 정쟁으로 파행을 겪으면 속으로 좋아하는 쪽은 피감 기관들이다. 자신들이 펼친 정책의 정당성이나 행정의 적법성을 국민 앞에서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중요한 정책에 대해 그 문제점이나 대안적 장단점을 여야의 관점에서 진지하게 논의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에 국가와 국민들은 피해를 본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예가 법제사법위원회일 것이다. 지금 여당인 민주당은 우리나라의 사법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려 하고 있다. 3권 분립을 포함한 국가의 기본 골격을 재설계하는 수준이다. 당연히 그 변화가 일반 국민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텐데, 이번 국감에서는 의원들 사이의 막말과 낯 뜨거운 정쟁으로 인해 이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볼 수 없었다.

또 다른 상임위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다. 과방위는 그 이름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정보기술과 방송·통신에 관한 의사 결정을 하는 상임위이다. 그런데 이번 국감에서는 여야가 방송에 관한 문제에서 워낙 첨예하게 대립하는 바람에 과학기술에 대한 충실한 감사나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잘 알다시피 지금 세계는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문명의 대전환기에 있고, 모든 나라가 관련 기술의 개발과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우리나라 이재명 정부도 ‘AI 3대 강국’을 대표 국정 목표로 삼고,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사업을 시작하는 한편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며 과학기술 연구개발비를 늘리는 등 많은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과 집행 과정을 국회가 감시해야 할 텐데 이번 국감에서는 여기에 대한 논의도 실종되다시피 했다. 과연 특정인에 대한 보도의 편파성 논란이나 의원 간 욕설 문자 문제가 국가의 백년대계인 과학기술 진흥보다 중요한가.

필자는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헌정회가 발간하는 월간지 ‘헌정’의 9월호 권두언에서 “국민을 편 가르는 정치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야의 협치 실현으로 솔선수범하여 분열되어 있는 나라의 분위기를 바꾸기를 바란다”라고 썼다. 그런데 올해 국감을 보니 그런 기대는 난망이다. 정치인들의 대오각성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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