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10명 중 3명은 자녀의 키를 키우기 위해 칼슘, 비타민D 등 각종 영양제와 성장 보조제에 투자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작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과다 사용과 수면·운동 부족, 불규칙한 식습관 문제는 10년 전보다 악화돼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는 2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창립 3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 기자회견을 열고 '바른 성장 및 건강한 생활습관 실천에 대한 사회적 인식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한국갤럽과 함께 올해 6월 23일~7월 28일 만 5~18세 자녀를 둔 부모 201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부모들은 자녀의 키를 키우려고 키 성장 보조제(28.0%)나 칼슘(33.9%), 비타민D(32.4%)를 먹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성장호르몬 주사제를 맞혔다는 응답은 4.6%였다. 현재나 과거에 자녀의 성장 관련 문제를 겪었다고 응답한 학부모는 성장 보조제를 썼다는 응답률이 47.0%로 더 높았다.
실질적인 효과를 두고는 회의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키 성장 보조제의 효과를 체감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5.7%가 '보통' 또는 '효과가 없음'이라고 답했다. 이영준 대한소아내분비학회 부회장(고려대안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은 "미용적인 관점에서 큰 키를 선호하는 추세가 강해지면서 성장 보조제, 한약 같은 손쉬운 해결책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짙어지는 듯 하다"고 말했다.
자녀가 성장했을 때 부모들이 원하는 키는 남성이 180.4㎝, 여성이 166.7㎝였다. 2022년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의 제8차 한국인 인체치수 조사에서 나온 20대 평균 신장(남성 174.4㎝·여성 161.3㎝)보다 5㎝가량 큰 수준이다.
식습관, 수면, 운동 등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생활습관 관리 지표는 10년 전보다 오히려 악화했다. 자녀들의 스마트폰, 컴퓨터 등 전자기기 하루 평균 사용 시간을 물었을 때 2시간 이상인 경우가 주중 51.7%, 주말 71%로 나타났다. 초등학생의 경우 주중에는 43.5%가, 주말에는 66.5%가 하루 2시간 이상 전자기기를 사용했다. 2016년 조사 당시 하루 2시간 이상 사용한다는 응답률이 20.4%였음을 감안하면 10년새 2배 이상 늘었다. 자녀가 미취학 아동인 경우에도 주중 전자기기 사용 시간이 1시간 이상∼2시간 미만이라고 응답한 비중이 31.6%였다. 성장 초기 단계부터 디지털 기기에 과도하게 노출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잠자기 직전까지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비율은 55.7%에 달해 전자기기 사용이 수면의 질 저하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절대적인 수면시간도 부족했다. 성장에 가장 중요한 시기인 초등학생의 경우 하루 8시간 미만 수면한다는 응답이 36.3%로, 2016년 35.2%보다 1.1%P 올랐다. 대한수면학회에 따르면 연령별 하루 적정 수면시간은 미취학 아동(3∼5세) 10∼13시간, 학령기 아동(6∼13세) 9∼11시간, 청소년(14∼17세) 8∼10시간이다. 운동이나 식습관 관리도 뒷전이었다. 신체 활동의 경우 전체 응답자의 55.3%가 자녀들의 운동 횟수를 주 3회 미만이라고 답했다. 신체 활동이 부족한 원인으로는 '아이가 너무 바빠서'(63.5%)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식습관 관련 설문에서는 하루 세 끼 식사를 하지 못한다는 응답률이 19.6%였다. 특히 여고생의 40.2%는 하루 두 끼 이하로 식사했고, 미취학 아동들도 7.3%가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황일태 대한소아내분비학회장은 "성장은 단기간의 주사나 보조제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충분한 수면과 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운동이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며 "성장호르몬이나 성장 보조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데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부족하지 않은 영양분을 과잉으로 섭취하면 오히려 부작용에 노출된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이해상 대한소아내분비학회 홍보이사(아주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2016년과 2025년 조사를 비교해보면 스마트폰 사용 증가와 수면 부족, 운동 부족, 불규칙한 식습관 문제가 10년간 지속되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가 미취학 자녀 시기부터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어 조기 개입과 관리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성장의 기초는 숙면·운동·균형 잡힌 식습관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다”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확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올바른 성장 문화를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기 위한 홍보 활동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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