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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경주 APEC서 ‘다자 협상력’ 발휘해 경제·안보 국익 키워야”

◆ 이수진 한국협상학회장(KAIST 교수)

李 정부, 경제와 안보 균형 이룬 대미 협상 전략 필요

대미 투자 성과 위해 다자간 통화 스와프도 구축해야

‘원청비례 책임제’ 기업의 노란봉투법 부담 덜 수 있어

일상 속 협상에선 ‘고정 파이 편향’ 극복해야 윈윈 가능

이수진 한국협상학회장이 2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상생활 속 협상에서는 상대 이익이 나의 손해라는 ‘고정된 파이 편향’을 극복해야 윈윈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글로벌 경제·안보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그 여파로 우리나라도 안팎으로 수많은 국가적 난제에 직면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마칠 때만 해도 관세 협상 타결 전망이 밝은 듯했지만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를 둘러싼 이견 조율과 대중 관계 등 협상 난제들이 풀리지 않고 있다. 새 정부는 정치 정상화와 노사 이슈 등 쉽지 않은 과제들을 풀면서 국민 통합과 경제 재도약을 이룰 수 있는 해법도 찾아야 한다. 이수진 한국협상학회장은 2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중 무역 전쟁 틈바구니에서 우리나라는 무엇보다 신중하면서도 현실적인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며 “미국과 협상에서는 경제와 안보 협력의 균형을 맞추는 한편 국제사회에서 다자간 협상 역량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학회장은 이어 “일상생활 속 협상에서 개인들은 상대 이익이 나의 손해라는 ‘고정된 파이 편향(Fixed-pie bias)’을 극복하면 윈윈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국제사회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외교 및 협상에서 우리의 준비 과제는.

△우리나라로서는 당장 미국과의 협상에서 관세율을 낮추고 국익을 챙기는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수출 중심의 우리 경제구조를 감안하면 중장기적으로 시장 다변화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인도를 포함해 중립적인 아시아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번 APEC 정상회의를 잘 활용해야 한다. APEC 정상회의를 통해 다자간 협상 역량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우리나라가 원하는 목표를 명확하게 세우고 여러 외교 수단을 잘 활용해 실질적인 협력과 성과를 만들어내는 전략적 외교를 폭넓게 펼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대통령은 APEC 기간 트럼프 대통령과 또 한 차례 중대한 외교적 협상을 벌여야 한다.

△미국은 동맹 관계에서 경제와 안보를 하나로 묶으려 하고 있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통상과 대북·대중 이슈는 따로 떨어져 있는 독립 의제가 아니다. 미국이 무역 전쟁의 주요 상대국으로 겨냥한 중국은 이미 인공지능(AI)·로봇·드론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주요 산업에서 우리는 중국의 영향을 피하기도 힘들다. 정부는 이런 경제적 상황을 인지하고 신중하면서도 현실적인 외교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에서는 경제와 안보 협력의 균형을 맞추고, 시장 다변화와 신기술 협력 확대를 중심으로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아울러 중립적 나라들과 교역을 넓혀 외교적 입지를 강화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돌출적인 트럼프식 협상 방식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 전략은.

△트럼프 대통령은 잘 알려진 것처럼 협상 초기에 최대한 강경한 입장을 내세우다가 시간이 지나면 점차 완화된 제안을 하는 경향이 있다. 사업가로서 익힌 블러핑(허세) 전략일 수 있지만 미국 내 강경파와 온건파 보좌진 간의 내부 의견 충돌이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 미국은 복잡한 자국 정치 상황과 국민들의 기대 속에서 협상에 임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단기적 압박보다는 미국 내 정치적 역학을 이해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협상을 지나치게 서두르기보다 신중하게 진행하며 협력 관계를 강화하면 미국 내 다양한 의견이 조율돼 최종적으로는 보다 유화된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의 관세 후속 협상과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와 관련해 우리에게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3500억 달러를 현금화해 한꺼번에 선불로 투자한다면 자칫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3500억 달러 투자에 대해서만큼은 다양한 방식을 놓고 정교한 협상을 해야 한다. 정부는 미국과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을 요청했는데 미국은 국제통화가 아닌 한국 원화를 받고 달러를 내줘야 하는 방안에 장점이 없다고 생각하는 만큼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협상을 위해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를 특정 금액으로 한정해 요구할 수 있다. 둘째로는 대미 협력 투자국, 예를 들면 일본, 유럽 주요 국가 등과의 다자간 상호 통화스와프 네트워크를 구축해 외환위기 발생 시 공동 대응 체계를 마련하는 길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 우선주의로 인해 여러 장벽에 부딪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곳곳을 원조하던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선 것은 결국 위기 의식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은 자국의 산업 경쟁력이 약해지자 안보와 직결된 철강·조선·반도체 등을 먼저 재건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한국을 가장 적합한 파트너 중 하나로 보고 투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미국 공장에 대한 우리 기업의 투자는 국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조지아주 근로자 체포 사태에서 보듯 해외 투자에는 여러 리스크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미국 투자 기업들은 현지 수요를 담당하는 미국 내 공장과 그 외 지역 수출을 맡는 공장을 이원화해야 하고, 연구소도 이원화할 필요가 있다. 투자가 많이 필요한 연구개발(R&D)은 미국 내 이윤으로 담당하고, 훈련은 현지 채용 미국인과 더불어 한국 사람도 그 비용으로 받도록 해야 한다. 국내 연구소와 시너지가 날 수 있도록 역할 분담과 백업 플랜도 정교하게 짜야 한다.

-‘노란봉투법’으로 경영 활동에 어려움이 커진 기업들의 부담을 덜 수 있는 협상 전략은.



△노란봉투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해소와 중소기업 활성화 등을 목표로 하지만 하청 업체가 많은 대기업 입장에서는 이들 모두를 직접 상대하기 어려운 문제점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합리적인 협상 전략으로 첫째, ‘원청 비례 책임제’를 고려할 수 있다. 하청의 재하청 요구가 있을 때 직속 상위 기업과 그 위 상위 기업이 책임을 적정 수준으로 비례해서 감당하는 것이다. 둘째, 연중 반복되는 하청 파업으로 인한 경영 차질을 막기 위해 ‘파업 날짜 동기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원청별 하청 그룹 내에서 파업 일정을 조율해 파업이 분산되지 않고 같은 기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생산 중단이 장기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이다. 실질적인 적용을 위해서는 노조 및 이해 관계자들과 충분한 협의와 조정이 필요하다.

-일자리 부족과 세대 갈등 등으로 청년층의 좌절감이 커지면서 적지 않은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세대 갈등과 청년 일자리 문제는 복합적인 구조를 지닌 사회적 이슈로 거시적 해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미시적 접근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적지 않은 갈등이 비난과 불평에서 시작되며 세대 갈등도 예외는 아니다. 해결의 첫걸음은 비난을 멈추고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청년들이 겪는 극심한 입시 경쟁, 취업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젊은 세대도 기성세대를 향한 비판만이 아닌 작은 감사의 마음을 가져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실생활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협상 원칙이 있다면.

△자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상대의 이익이 곧 나의 손해라는 ‘고정된 파이 편향’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갈등을 줄이려면 이 편향부터 극복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은 협상을 이기고 지는 싸움으로 만들며 일상 속 다양한 갈등 상황을 악화시킨다. 협상 경험이 많은 사람조차 이런 인지 편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를 극복하려면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현명한 질문을 통해 파악해야 한다. 협상에서는 상대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한 질문과 진정성 있는 소통을 이끌어 내는 지혜가 중요하다. 간단하지만 잊기 쉬운 중요한 협상 행동은 왜 이것이 당신에게 중요한지를 겸손하게 묻는 것이다. 그 질문이 상대방의 진짜 필요를 드러내고 협상의 방향을 바꾸는 열쇠가 된다.

-협상학회가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협상학 분야에서 최근 가장 주목하는 주제는.

△가장 뜨거운 주제는 단연 AI 협상이다. 온라인 쇼핑, 계약 협상 등 일상에서 개개인들이 AI와 협상하는 시대가 열렸다. AI는 전통적 방식의 연구를 통해 축적한 협상 데이터를 새롭게 분석해 협상학 이론과 방법론 확장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인간을 대신해 협상하는 대리인으로서 AI와 또 다른 대리인 AI 간의 협상, AI와 인간의 일대일 협상, 다자간 AI 협상 등 복잡한 맥락에서 어떻게 신뢰가 형성되고 정보 교환이 이뤄져 협상 결과가 도출되는지 연구할 주제들이 무궁무진하다. AI 시대의 협상은 기술과 인간의 협력이 핵심이 될 것이다. AI를 도구가 아닌 신뢰할 수 있는 협상 파트너로 어떻게 설계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윤리적 기준이 필요하다.

이수진 협상학회장. 조태형 기자


◆ She is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조직심리학 석사, 코넬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에서 방문조교수로 활동했으며 2007년부터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룹 간 협력에 관한 연구로 미국경영학회(AOM) 갈등 관리 분야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MIT 슬론경영대학원과 UC 어바인 폴머리지경영대학원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했으며 현재 한국협상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수진 협상학회장. 조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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