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의 최대 굴욕 중 하나로 꼽히는 사건이 지난 1968년 1월 23일 동해상 원산 앞바다에서 벌어졌다. 조선인민군 해군 동해함대 근위 제2 수상함전대에 의해 동해상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미 해군 군함 USS ‘푸에블로호’(AGER-2)가 나포된 것이다. 미 해군 군함이 적대국에게 나포된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당시 푸에블로호에 탑승해있던 미군 승조원 80여명은 간첩 활동을 벌인 혐의로 11개월간 북한에 억류됐다. 나포 과정에서 총격으로 1명이 사망했고 억류됐던 82명은 같은 해 12월 23일 귀환했다.
동해안에 정박해 있던 푸에블로호는 1998년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 지시로 평양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내 보통강변으로 옮겨져 당시 모습 그대로 북한의 대외 선전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주변은 북한식 안보공원으로 구성됐다. 푸에블로호는 배수량 900t 미만의 소형 함정으로 최대 속력은 시속 13노트에 불과하다. 자체 무장은 50구경 기관총 2정 뿐이다.
주목할 점은 미 해군 소속 푸에블로호의 정체다. 일반적인 군함이 아니라 ‘정보수집함’이라는 것이다. 해제된 미 국방부 기밀문서에 따르면 “(푸에블로호에게) 가능한 북의 해역에 가깝게 접근해 북한의 반응을 알아보라”는 명령이 나온다. 우리 해군에서 운용하는 ‘해양정보함’(AGS)에 해당된다.
해양정보함은 해군작전사령부 직할부대로 준장급 맡고 있는 해양정보단 소속이다. 이 부대는 해군이 운용하는 작전세력을 위해 해양정보를 수집·분석해 표적정보를 생산하는 것은 물론 기상·해양·음향 정보 등을 지원하는 정보부대다. 각 함대 및 예하 작전부대, 군함은 해양환경과 관련된 전술정보 및 예보자료 등을 해양정보단에서 지원 받는다.
해양정보단은 1995년 10월 1일에 해양기상 및 전자전 등을 담당하는 해군작전사령부 예하 해양전술정보단으로 창설됐다. 2012년 2월 1일에 해양정보단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2017년 2월 해군 정보병과 부활로 해군정보단(Naval Intelligence Group)으로 개편했다.
이후 2022년 8월 부대명이 다시 현재의 ‘해양정보단’으로 변경됐다. 2023년 10월에 진해 해군기지에 위치했던 본부를 부산 해군기지로 이전했다. 이 때 지휘관 계급도 대령에서 준장으로 격상됐다. 해양정보단 예하 함정의 위치와 세부적인 편제사항, 병력현황 등은 모든 군사 II급 비밀로 분류된다. 올해 부대 창설 30주년을 맞았다.
해양정보단은 수중음향정보·전파정보·해양환경정보 등 군사정보 수집이 주요 임무인 해양정보함(해양조사함)을 보유·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해군은 해양정보단으로부터 각종 군사정보를 제공받아 대잠전, 전자전 등 정보작전을 수행한다. 현재 해군이 보유한 해양정보함은 ‘신세기함’(AGS-12), ‘신기원함’(AGS-13) 2척이다.
신세기함은 두 번째 해양정보함으로 2003년 취역했다. SWATH형 쌍동선 형태의 2800t급 함정이다. 신기원함은 ‘신천옹’(AGX-II) 사업을 통해 건조된 세 번째 해양정보함으로 2012년 취역했다. 길이 114m, 경하배수량 3500t급 함정이다. 신세기함과 마찬가지로 무인기(UAV) 운용이 가능하고 외형이 상선과 비슷한 모습이다. 1993년 취역한 1000t급 첫 번째 해양정보함인 ‘신천지함’(AGS-11)이 있었지만 2013년 12월 퇴역했다.
신세기함과 신기원함은 비닉사업(비밀사업)으로 건조 비용은 국가정보원 예산으로 충당해서 건조했다. 이들 해양정보함에서 수집된 정보는 군 정보기관 및 국가정보원에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양정보함은 해군이 작전을 수행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해양데이터 및 외국의 전파정보, 대잠수함 정보 등의 수집이 주요 임무로 해군력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 전력이다. 미 해군 다음으로 많은 이지스구축함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해상자위대의 전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해상정보 특히 적 함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 덕분이다.
예를 들어 바다 깊숙이 접근하는 잠수함이 어느 나라 잠수함인지를 식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제대로 식별하지 못하면 엄청난 군사적 위협이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아군인지 적군인지, 적군이면 어떤 잠수함인지를 식별하는 특정적인 음문데이터를 평소에 대량 수집·분석해 표준화된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이런 역할을 담당하는 게 해양정보함이다.
일본은 1976년부터 후타미급(Futami) AGS-5104 ‘와카사’, AGS-5105 ‘니치난’, AGS-5106 ‘쇼난’ 등 3척의 해양측정함과 히비키급(Hibiki) AOS-5201 ‘히비키’, AOS-5202 ‘하리마’, AOS-5203 ‘아키’ 등 3척의 음향측정함 등 최근까지 총 6척의 해양정보함을 운용하며 구소련 시대 잠수함에서부터 중국 잠수함, 한국 잠수함에 대한 광범위한 음문데이터를 수집해오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이러한 데이터에 기반해 대잠전 작전을 수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히비키급 해양정보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우리의 신세기함처럼 외형은 SWATH형 쌍동선 형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4000t 이상 차세대 해양정보함 2척 확보
이 같은 일본 해상자위대의 정보력에 발맞춰 우리 해군도 대북 정보 수집능력 강화를 위한 차기 해양정보함 건조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해군은 1조 9400억 원을 투입해 2035년까지 4000t급 이상의 차세대 해양정보함을 2척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방위사업청은 내년 상반기 중에 ‘기본 설계’ 발주를 시작으로 차세대 해양정보함(AGS-Ⅲ) 획득 프로젝트에 들어갈 방침이다. 대북 정보수집 등 비밀스런 작전을 수행하는 만큼 정보수집과 은밀한 기동 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차세대 해양정보함(AGS-Ⅲ) ‘개념 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수주한 바 있다.
기존 2척의 해양정보함으로는 동해와 서해를 오가면 대북 정보수집에 한계가 있는 것은 물론 최근에는 동해상에 일본의 함정이 자주 진입하고 서해 및 남해상에 중국과 러시아의 함정 등도 수시로 출몰하고 있는 탓에 해양정보함 추가 도입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최소 4척 이상의 해양정보함을 보유해야 적국의 함정에 대한 음문데이터를 축적해 미래의 대함전 및 대잠전 등에 제대로 대비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중국은 12척, 일본은 6척 보유하고 있는 해양정보함을 우리 해군은 2척만 보유하고 있는 상황으로 주변국의 정세 변화에 따른 해양에서의 정보수집 능력 강화가 절실하다”며 “게다가 운용한 지 10년이 훨씬 넘는 기존 해양정보함은 원거리 탐지 능력이 제한되고 장비의 성능 개량이 시급해 서둘러 차세대 해양정보함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대북 정보수집 및 강화되는 주변국의 해양 작전에 대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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