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금 고수 전략'이 최근 잇따른 금값 급등 덕분에 뜻밖의 이익을 누리고 있다. 금을 팔지 않고 지켜온 이탈리아의 결단이 결실을 맺은 셈이다.
16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중앙은행(이탈리아은행)이 보유한 금은 미국과 독일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다. 보유량은 2452톤이며, 현 시세로는 약 3000억 달러(약 425조원)에 달한다.
이탈리아의 이러한 전략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정권이 120톤의 금을 약탈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전쟁 후 남은 금은 20톤으로 줄었으나, 전후 경제 기적 시기 수출 호조로 달러가 대량 유입되자 일부를 금으로 전환하며 1960년대 초에는 보유량이 1400톤으로 늘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는 전 세계적 불안정을 초래했고, 이탈리아에서는 사회적 혼란과 잦은 정권 교체로 국제 투자자 신뢰가 흔들렸다.
스테파노 카셀리 SDA 보코니 경영대학원 학장은 "극심한 통화 불안정 속에서 서구 중앙은행들은 최후의 신뢰 상징으로 금을 매입했다"고 설명했다.
1976년에는 자본 유출로 생긴 재정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금괴를 담보로 독일 중앙은행에서 20억 달러를 차입했지만 한 번도 금을 판 적은 없다. 살바토레 로시 전 이탈리아은행 부총재는 자신의 저서에 "금은 국가 신뢰가 흔들릴 때 꺼내 쓰는 최후의 보루"라고 강조했다.
이탈리아은행이 보유한 금의 절반(약 1100톤)은 로마 본관 지하 금고에, 나머지는 미국, 영국, 스위스 등에 분산 보관돼 있다. 이탈리아의 국가 부채는 3조 유로(약 4957조원)로, GDP 대비 137% 이상에 달하지만, "부채를 줄이기 위해 금을 팔자"는 주장은 번번이 무산됐다.
일각에서 "금괴를 팔아 국민 복지나 공공서비스에 쓰자"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이탈리아은행은 매각 의사가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셀리 학장은 "세계 질서가 재편되고, 암호화폐나 스테이블코인이 떠오르는 시대에 중앙은행은 '가장 뜨거운 자산'을 쥐고 있다"며 "금을 팔지 않는 건 옳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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