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의 부정을 목격한 샤리야르 왕은 여자들에 대한 불신의 마음을 품고 잔인한 복수를 시작한다. 그리고 누구나 알다시피 셰에라자드가 스스로 새 왕비가 돼 천일 하고도 하루 동안 이야기를 들려준다. 왕은 마음을 고쳐 먹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온다. 수백 년간 내려온 흥미로운 스토리지만 살만 루슈디는 다르게 해석한다. 잔혹한 여성 학대를 정당화하는 거짓 시대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죽은 사람들의 최종 숫자는 삼천하고도, 이백 그리고 열여섯입니다. 죽은 사람 중 열세 명은 남자입니다.(그리고 여자는 3203명이나 죽습니다)”
‘아라비안나이트(천일야화)’에서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인도 출신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의 2003~2020년 에세이, 비평, 강연 등 43편의 글을 모은 ‘진실의 언어(원제 Languages of Truth)’가 번역 출간됐다.
루슈디는 ‘악마의 시’ 출간 이후 이슬람교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살해 위협에 시달려왔고 2022년 문학 축제에서 강연을 준비하다가 습격당해 오른쪽 눈을 실명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표현의 자유의 상징으로 세계인들의 뇌리에 각인돼 있다.
책은 문학과 소설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말한다. 아이일 때부터 인간은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채듯 이야기를 원하며 이런 이야기에서 그리는 세계는 결국 우리의 일부가 된다. 우리가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가치관을 형성하고 현실을 이해하는 틀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는 이야기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어떤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라고 강조한다. “상상력으로 빚어진 이야기라는 ‘비진실’은 사랑과 증오, 용기와 비겁, 삶과 죽음이라는 ‘진실’에 도달하는 통로가 되어준다”고 말한다.
수록된 글은 주제에 따라 4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스토리텔링을 인간의 근원적 욕망으로 규정하며 그 성격에 대해 논하고 작가로서 자신의 창작론을 펼친다. 2부는 셰익스피어·세르반테스 등 문학 거장들의 작품과 삶을 비평한다. 3부는 자유가 무참히 공격받는 시대 예술과 문학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작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성찰한다. 4부는 회화·설치미술·사진 등 문학 외 예술 영역에서 표현의 자유를 짚어본다.
루슈디는 이 시대에 문학과 예술이 수행해야 할 역할을 강조한다. 아이웨이웨이와 류샤오보가 중국의 사회 문제를 고발하고, 푸시 라이엇이 러시아의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카라 워커가 회화를 통해 인종주의와 노예의 역사를 드러내듯 말이다. 책에 실린 저자의 글들은 평생 ‘자유’라는 근원적 가치를 수호해온 그의 문학적 족적과 맞물려 있다.
“여러분은 우리가 만든 엉망진창의 세계를 바꿀 수 있으며, 여러분이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여러분의 이상은 우리의 이상보다 더 오래갈 것입니다.” 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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