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1기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이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기소됐다. 트럼프 대통령 비판자들을 겨냥한 정치적 보복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16일(현지 시간) 메릴랜드주 연방 대배심은 볼턴을 1급 비밀을 포함한 국방 기밀을 불법으로 보관하고 유출한 18건의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2018년 4월부터 2019년 9월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내면서 업무를 기록한 자료 수백장을 기밀 취급 인가가 없는 두 명의 친척과 공유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볼턴은 개인 이메일 계정을 통해 이 자료를 전송했으며, 해당 계정은 이후 이란 정부와 연계된 단체에 의해 해킹됐다. 또 다수의 기밀 문서를 출력해 메릴랜드 자택에 보관한 혐의도 받는다. 팸 본디 법무장관은 “권력을 남용하고 국가 안보를 해친 사람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법 앞에 예외는 없다”고 강조했다.
볼턴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의 변호인 애비 로웰은 “이 사건은 이미 수년 전 조사돼 종결된 사안”이라며 “볼턴은 단지 다른 공직자들처럼 개인 일기를 기록했을 뿐이며 이는 범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자료들은 연방수사국(FBI)이 2021년부터 인지하고 있던 가족 기록물”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기소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보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당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를 앞두고 그를 수사했던 인사들을 잇따라 재판에 넘기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산 부풀리기’ 의혹을 조사한 러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은 대출 사기 혐의로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했던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은 허위 진술 혐의로 각각 기소됐다.
볼턴 역시 트럼프 대통령과 불화를 겪어온 인물이다. 외교·안보 분야의 대표적 강경파로 불린 그는 트럼프 집권 1기 대북 압박과 대이란 제재를 주도했으나 외교 정책 노선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을 빚다 경질됐다. 이후 여러 매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해왔다. 자신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맡기에 부적격한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기소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경쟁자들을 겨냥한 일련의 조치 중 하나”라고 짚었다.
이날도 볼턴은 “이번 기소는 트럼프 비판자들에 대한 보복성 탄압의 일환”이라며 “내 행동의 정당성을 증명하고, 트럼프의 권력 남용을 드러내겠다”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행사에서 볼턴 기소와 관련한 질문에 “그는 나쁜 사람”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수사 자체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부터 진행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뉴욕타임스(NYT)는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 비판자 중 한 명으로 이번 사건이 정치적 보복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면서도 “수사 자체는 바이든 정부 당시 정보기관이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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