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 년간 미국은 중국이 길을 잃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장장 35년간의 놀라운 성장에도 불구하고 베이징은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 지도부는 첨단 과학기술에서 교육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가장 혁신적인 분야에 탄압을 가했고 기업가들을 추방하거나 침묵하게 만들었다. 중국의 ‘늑대 전사’ 외교는 인도와 호주·베트남 등 이웃 국가들을 소외시켰다.
하지만 그 시대는 막을 내렸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삐뚤어진 진로를 바로잡았다. 지난달 유엔 총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회원국들을 희망 없는 실패 국가로 싸잡아 비난하고 유엔을 향해 기나긴 험담을 늘어놓았다. 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유엔 창건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 그는 여러 측면에서 다자간 시스템을 강화할 것을 제안하면서 중국이야말로 건설적인 의제를 설정하는 초강대국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미국이 외국에서 제작된 영화에 100% 관세를 물리겠다고 협박하는 등 보호주의에 힘을 쏟는 가운데 최근 중국은 개발도상국으로서 누려온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자유무역 지지자들이 과거 수십 년간 중국으로부터 얻어내려 했던 중요한 양보다. 미국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빈곤 국가들에 과도한 관세를 부과한 데 비해 중국은 최빈국들은 물론 아프리카 53개국을 포함해 자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일부 중진국들에 무관세 교역을 제안했다.
워싱턴이 퍼붓는 관세와 모욕에 적과 아군 모두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은 예측 가능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펼치는 진지한 국가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데 힘을 쏟는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경쟁 분야는 첨단기술인데 여러 부문에서 중국은 이미 우세를 보인다. 태양광 패널에서 전기차 배터리에 이르는 친환경 기술 분야에서 베이징은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13개의 핵심 기술을 추적한 결과 중국이 5개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7개 분야에서는 1위와의 격차를 좁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그러나 워싱턴은 인공지능(AI) 분야만은 독보적인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확신한다. 오픈AI·앤스로픽과 구글은 범용인공지능(AGI) 경쟁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다고 자신한다. 반면 중국의 AI 접근법은 미국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베이징은 개발 단계에서 AI를 응용하고 채택하는 데 중점을 둔다. 물류·스마트도시·의료·로봇 등 경제와 사회의 모든 영역에 AI를 접목하려 한다. 이런 전략은 AI가 실질적인 경제 변혁과 수익을 신속하게 창출하고 생산성을 높이며 새로운 기술을 일상생활에 접목하도록 보장한다.
중국은 또 다른 모델을 선택했다. 미국 기업들이 자사의 프런티어 모델을 독점적인 소유권의 장벽 뒤에 가둬둔 데 비해 중국 업체들은 쉽게 조정하고 배포할 수 있는 개방형 AI 시스템을 출시하고 있다. 중국이 개방형 기술 플랫폼을 수용한 반면 미국이 폐쇄형을 선호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런 전략은 중국의 AI를 글로벌 표준으로 만들 수 있다. 특히 저가의 맞춤형 도구를 필요로 하는 개발도상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기에 화웨이의 6G 지배력까지 보태면 세계의 AI 인터페이스는 중국이 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기술 전략을 더 가공스럽게 만드는 것은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도메인 통합이다. 베이징은 단지 AI 모델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을 하드웨어·기반시설과 도시에 접목하고 있다. 로봇 공학을 생각해보라. 중국 기업들은 실제 환경에서 보고, 생각할 수 있도록 풍부한 센서 배열을 갖춘 인간형 휴머노이드와 사족 보행 로봇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은 미국에 비해 거의 9배나 많은 산업용 로봇을 일터에 설치했다.
드론과 비행자동차도 살펴보라. 중국은 이른바 저고도 경제를 구축하고 자율비행체를 위해 도심의 하늘길을 나눠주고 있다. 선전에서는 이미 드론이 소포를 배달한다. 광저우에서는 자율비행 자동차가 승객들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여기에서도 강점은 통합이다. 센서·AI·하드웨어와 규제가 조화를 이뤄 혁신적인 기술을 만들어 낸다.
미국에서는 기초과학 및 기술에 대한 정부 지원이 삭감됐고 여러 명문대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포위 공격을 받고 있다. 현 정부는 세계 최고의 연구 대학인 하버드 공략을 위한 전쟁에 돌입했다. 정부 폐쇄 직전의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과 국방장관은 수백 명의 군 장성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뒤 군살을 빼고 인종적 편견과 차별을 경계하는 워크 이데올로기에 맞서 싸우라고 일장 훈계를 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우리는 진지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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