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챔피언을 비롯한 아마추어 고수 골퍼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자기 절제력이 뛰어나다. 제주 나인브릿지 클럽 챔피언에 5회(2006~2008년, 2011~2012년) 이름을 올린 김재혁 제주 미치과 원장도 1969년생으로 50대 중반이 됐지만 몸엔 여전히 군살 하나 없다. 술은 종종 즐기지만 담배와 커피는 입에 대지 않는다. 둘째는 대부분 빠르게 골프 실력이 향상된다는 점이다. 김 원장도 입문 첫해에 싱글 핸디캐퍼가 됐다. 셋째는 대부분 쇼트 게임 귀신이다. 젊은 프로처럼 장타를 날리진 못해도 그린 주변에만 가면 볼을 홀 바로 옆에 척척 붙인다. 김 원장의 장기도 어프로치와 퍼팅이다.
“2000년에 제주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군 생활을 시작했는데, 당시엔 주변에서 다들 골프를 했어요. 저도 당연히 골프를 해야 하는 걸로 알았죠. 기왕 하는 김에 제대로 배우자는 각오로 항상 레슨을 받으면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2~4시간씩 연습한 덕분에 실력이 금세 늘었던 것 같아요.”
전역 후 치과를 개업하면서 잠시 골프에 소홀했던 김 원장은 병원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다시 골프에 매진했다. 2006년부터 3년 내리 나인브릿지 클럽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클럽 챔피언은 그의 골프 인생에 큰 행운도 가져다줬다. 당시 나인브릿지가 주도해 세계 100대 코스 골프클럽 대표들의 대항전인 월드클럽챔피언십(WCC)을 개최했는데, 김 원장도 나인브릿지 대표로 4회 출전한 것이다.
WCC 대회에서 외국 클럽 챔피언들과 쌓은 친분은 김 원장에게는 커다란 골프 자산이 됐다. 그들의 초대를 받아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를 비롯해 뮤어필드, 커누스티, 킹스반스 등을 둘러봤고 호주의 로열 멜버른, 일본의 도쿄와 가스미가세키 등에서도 라운드 기회를 얻었다. 김 원장은 그중에서도 세계 최초로 13개의 골프 룰을 만들었던 HCEG(명예로운 에든버러 골퍼들의 모임)의 홈 코스인 뮤어필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사실 뮤어필드는 아무것도 모르고 방문했어요. 근데 처음 보는 순간 완벽한 링크스로 다가왔어요. 광활한 대지에 홀만 앉힌 레이아웃인데, 극도로 정제된 가운데 세련된 느낌이 풍기더군요. 타이거 우즈와 어니 엘스 등 유명 선수들이 거쳐 간 호텔에서 묵는 호사도 누렸고요.”
해외 명문 코스를 돌아보면서 골프 시야도 넓어졌다. 김 원장은 “명문 코스 멤버들의 경우 실력을 떠나서 상대에 대한 배려, 코스에 대한 보호, 에티켓 등이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 골프장도 디봇 수리 도구를 항상 비치해 둔다”며 “그런데 우린 골프를 책을 통해 배웠기 때문에 의식을 하지 않으면 그들의 그런 행동이 자동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또한 클럽하우스 등 너무 보이는 측면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그 친구들이 무조건 옳은 건 아니지만 화려함의 거품을 빼고 골프의 본질에 보다 충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소신을 밝혔다.
해외 골퍼들이 한국 골프에 대해 부러워하는 것도 있다고 했다. 바로 캐디 시스템이다. 김 원장은 “외국 골퍼들은 한국에 와서 한 명의 캐디가 네 명의 플레이어를 훌륭히 커버하는 걸 보고는 깜짝 놀란다”며 “이런 시스템은 한국이 해외에 수출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라고 했다.
올해부터 서울경제 한국 10대 골프장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 원장이 코스를 평가할 때 유심히 보는 건 ‘사람과 코스 관리’다. “조경을 비롯한 심미적인 요소도 중요하죠. 근데 고객을 응대하는 사람이 첫째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은 코스 관리고요. 코스 디자인이야 유명 설계가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했겠죠. 관건은 그 훌륭한 코스를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가 아닐까요.”
김 원장은 내년에는 로열 카운티다운, 로열 포트러시, 밸리뷰니온, 라힌치, 포트마녹 등 숨겨진 명문 코스가 많은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골프 여행을 계획 중이다. “은퇴 후에는 골프채를 들고 전 세계를 누비고 싶어요. 주변에 실제 그렇게 하시는 분들이 ‘집이 최고야. 나가지 마’라고 하지만 그래도 한 번은 해본 후에 그런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또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홀인원이다. 티샷 방향에 따라 공략 루트가 완전히 달라지는 나인브릿지 18번 홀(파5)에서 생애 첫 이글을 시작으로 그동안 수 차례 이글을 기록해봤지만 홀인원의 짜릿한 맛을 아직 경험하진 못했다고 한다.
베스트 스코어가 3언더파 69타인 그에게 골프는 어떤 의미일까. “몇 년 전 골프엘보 때문에 2년간 아예 골프채를 못 잡은 적이 있어요. 가죽공예, 사이클 등 다른 취미를 가져 봤지만 어떤 것도 골프만큼 저를 흥분시키진 못했죠. 처음 클럽 챔피언이 되던 해, 상대와의 숨 막히던 승부의 순간에 터졌던 벙커 샷 버디의 짜릿함은 지금도 생생해요. 골프는 저를 여전히 설레게 하는 유일한 스포츠예요.”
[18문 18답]
1 구력
처음 골프를 접한 건 2000년 3월 제주 남문골프연습장
2 평균 타수
레귤러 티잉 구역 기준 핸디캡 4
3 월 평균 라운드 수
주말 골퍼 수준
4 보유 골프 회원권
클럽 제주 나인브릿지
5 평소 코스를 평가할 때 우선으로 삼는 기준
무엇보다 잔디 관리가 가장 중요하고 코스 디자인과 직원들의 전문성을 고려한다
6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국내 골프장
추억이 가장 많은 클럽 제주 나인브릿지
7 가장 독특하다고 생각하는 골프장
바다와 섬이 있는 자연 풍광과 가장 잘 어우러져 있고 세련된 클럽하우스가 인상적인 남해 사우스케이프 골프 & 리조트
8 나의 베스트 파3 홀은
바다를 가로질러 티샷을 하는 멋진 전남 해남 파인비치 골프클럽의 비치 코스 6번 홀
9 나의 베스트 파4 홀은
‘최경주섬’이 생긴 제주 핀크스 서코스 9번 홀. 그린 앞 개울이 여러 가지 전략을 생각하게 하며 짜릿한 승부가 연출된다
10 나의 베스트 파5 홀은
클럽 제주 나인브릿지의 하이랜드 9번 홀. 전략적인 티샷과 세컨드 샷이 가능한 아일랜드 그린을 가진 승부의 홀이다
11 외국에 소개할 만한 한국 골프장만의 자랑은
산악 지형이 많은 관계로 산을 깎아 만든 골프장들이 대부분이다. 코스 디자인을 보면 보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코스가 많다. 또한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함께한 코스와 클럽하우스 등은 한국적인 요소를 잘 가미시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골프장에 근무하시는 분들의 서비스 마인드와 전문성, 그리고 4백 1캐디 시스템은 독보적이라고 생각한다.
12 한국의 골프장 문화 중 이어져야 할 것과 없어져야 할 것은
골프의 대중화와 함께 보다 많은 이들이 거부감 없이 이용하게 됐다. 무엇보다 가족, 친구 간의 라운드가 많이 정착되고 있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클럽 이용료가 비싸고 골프 룰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점은 아쉽다
13 우리나라 골퍼들이 꼭 갖추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매너, 에티켓은
디봇 수리와 골프 룰에 대한 이해, 그리고 동반자에 대한 배려
14 가장 이상적인 동반자는 어떤 동반자라고 생각하나
골프에 대한 열정이 크고 동반자와 캐디를 충분히 배려하며 룰을 잘 지키고 자신에 엄격하고 상대에 관대한 동반자
15 가장 좋아하는 골프 선수는
잉글랜드의 토미 플리트우드와 우리 병원에서 교정 치료를 받은 현세린
16 좋아하는 골프 금언은
“Enjoy your golf(너의 골프를 즐겨라)” “연습이 필요한 사람일수록 연습에 게으르다”
17 골프 입문 계기는
2000년 제주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할 당시 모든 이가 해야 하는 의무인 것처럼 나도 모르게 연습장을 등록했음
18 나에게 골프란
언제나 생각나는 것!? 시간이 갈수록 내 인생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해 가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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