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부가 은퇴자들이 정년 이후에도 일할 경우 월 2000유로(약 330만 원)까지 소득세를 면제해주는 제도를 도입한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가 주도하는 이번 조치는 인력난을 완화하고 정체된 독일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구조 개혁의 일환이다.
14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입수한 관련 법안에 따르면 메르츠 정부는 내년 1월 1일부터 은퇴 연령 이후에도 계속 일하기로 한 독일인들에게 월 2000유로의 세금을 면제하는 일명 '활동 연금제'를 실시할 계획이다. 정부는 활동 연금제로 이미 근로 중인 약 28만5000명의 은퇴자가 즉시 혜택을 받고, 이로 인해 연간 8억9000만 유로(약 1조4700억원)의 세수가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일부 경제학자들이 예상한 금액(14억 유로)보다는 낮은 수치다.
독일 정부가 이 같은 실험에 나선 것은 급속한 고령화와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 때문이다.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심각한 인구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다. 2035년까지 480만 명의 근로자가 은퇴할 예정인데, 이는 전체 노동인구의 9%에 해당한다. 게다가 독일은 OECD 국가 중 평균 근로시간이 가장 짧고, 파트타임 근로자 비율도 1990년대 초 이후 두 배 이상 증가해 현재 노동인구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법안 초안은 "독일 노동시장이 인구 변화로 구조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베이비붐 세대가 점차 은퇴하는 반면 젊은 인력 유입은 줄어 많은 산업 분야에서 숙련 노동자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번 세금 감면이 기업에 경험과 지식을 더 오래 유지하게 할 것"이라며 "전체 고용률 증가로 이어져 경제 성장과 정부 세입 증가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한 근로자와 고용주는 이러한 급여에 대한 사회보험료를 납부하게 돼 재정난에 시달리는 독일의 의료 및 연금 시스템을 개선할 것으로 전망했다.
독일에서는 이미 은퇴 후 근로가 허용돼 있지만, 이번 조치는 세제 혜택을 통해 '일하는 은퇴자'를 적극 장려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는 그리스가 2023년부터 시행한 유사 정책에서 영감을 받았다. 당시 그리스 정부는 은퇴자들이 전액 연금을 받으면서도 추가 근로 소득에 대해서는 10%의 낮은 세율만 적용받도록 했고, 이 조치로 근로 은퇴자 수가 2023년 3만5000명에서 올 9월 기준 25만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홀거 슈미딩 베렌베르크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3년 안에 성장 등 긍정적 추가 효과가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라며 "은퇴 후에도 계속 일하기로 결정한 고령층의 기여를 사회가 인정한다는 상징적 조치"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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