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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스톡커] 美조선 열등한데 中보복만, '마스가'는 신기루

■윤경환 특파원의 트럼프 스톡커(Stocker)

215조원 투자 약속…李까지 필리조선소 갔지만

시설 극도로 열악, 美숙련공도 없는데 비자 제한

배 건조 비용 4~5배…미국 물량도 거제서 제작

105년전 '존스법'에 경쟁력 ↓…공기도 못 맞춰

中 한화 제재, 美는 달러 요구…미중 경쟁 '볼모'

이재명 대통령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지난 8월 26일(현지 시간)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열린 ‘스테이트 오브 메인’호 명명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한미 조선업 협력을 상징하는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가 미국 현지 시설·인력 낙후, 중국의 대미 보복 등으로 벌써부터 흔들리고 있다. 한국의 대미 조선업 협력은 미국의 제조업이 고임금, 혁신 부족으로 반등을 꾀하기 여려워진 상황에서 애초부터 일방적인 지원 사격 형식으로 구성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협박이 아니었다면 굳이 한국 기업이 거액을 들여 미국의 허술한 조선업을 일으켜 세워 줄 이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마스가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는데도 트럼프 행정부는 외환위기까지 초래할 수 있는 무역 합의 조건을 내걸며 관세율 인하를 미루고 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중국까지 한국의 조선업 협력을 미중 무역 갈등의 볼모로 삼으면서 국내 기업을 위축시키고 있다. 한국 기업이 고래 싸움에 낀 새우가 된 꼴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몇 안 되는 산업인 데다 안보와도 직결된 업종인 만큼 해운, 원자재 공급 등 조선업의 전후방 산업까지 언제든 미중 대결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李, 215조원 투자 약속하고 필리조선소까지 달려갔지만…트럼프에 ‘윈윈’은 없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일(현지 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노퍽 해군기지에서 열린 해군 창건 250주년 기념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마스가 프로젝트는 한미 무역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한미 조선업 협력 계획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 7월 30일(현지 시간) 마스가 프로젝트를 앞세워 3500억 달러(약 500조 원) 규모의 대미 직접 투자 등을 조건으로 한 큰 틀의 한미 무역 합의를 맺었다. 한국의 기술력과 미국의 시장을 결합해 ‘윈윈’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당초 한국 정부 관계자들의 기대였다. 한국은 한미 조선업 협력사업을 위한 1500억 달러(약 215조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마스가 프로젝트를 계기로 한 한미 협력 확대 계획에 고무된 이재명 대통령도 8월 26일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필라델피아의 한화(000880) 필리조선소를 찾아 미국 해양청이 발주한 국가안보 다목적선 ‘스테이트 오브 메인(State of Maine)’호의 명명식에 참석했다. 명명식은 선박을 건조한 뒤 이름을 지으며 안전 운항을 기원하는 행사다. 이 자리에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도 동참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축사에서 “대한민국의 조선업이 미국의 해양 안보를 강화하고 조선업 부활에 기여하는 새로운 도전의 길에 나선다”며 “마스가 프로젝트로 한국과 미국의 조선업이 더불어 도약하는 윈윈 성과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필리조선소는 앞으로 미국 최고의 조선소로 거듭날 것”이라며 “필리조선소를 통해 72년 역사의 한미동맹은 안보, 경제, 기술 동맹이 합쳐진 ‘미래형 포괄적 전략동맹’의 새 장을 열 것”이라고 덧붙였다.

필리조선소는 1801년 미국 해군조선소로 설립돼 1997년 민영조선소로 전환된 곳이다. 한화그룹이 1억 달러(약 1400억 원)에 이 조선소를 인수한 것은 지난해 12월이다. 이는 한국 조선기업의 미국 현지 조선소 첫 인수 사례이기도 하다. 이후 한화는 미국 해양청에서 3억 달러어치 국가안보 다목적선 5척 건조를 의뢰받았다. 이 가운데 하나인 스테이트 오브 메인은 평시에는 해양대 사관생도 훈련용으로 활용되다가 비상시에는 재난 대응 및 구조 임무를 수행할 방침이다. 대통령실은 이를 두고 한국의 조선 전문기업인 DSEC가 설계와 기자재 조달에 참여하기에 한미 간 대표적 조선 협력 사례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 대통령은 필리조선소에서 “한미 조선 협력의 주역은 기업인과 근로자 여러분”이라며 “한국의 기업인과 근로자들이 허허벌판에 ‘K-조선’의 기적을 일궈냈듯 한미가 힘을 모아 마스가의 기적을 현실로 빚어내자”고 독려했다. 한화그룹 관계자도 현장에서 이 대통령에게 “필리조선소에 투자를 추가해 생산 능력을 현재의 연 1.5척에서 20척 내외로 확대하겠다”며 “중장기적으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대형 첨단 선박도 제조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겠다”고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달 5일 미국 버지니아주 노퍽 해군기지에서 열린 해군 창건 25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전 세계에서 들어올 수천억 달러의 투자와 인력을 통해 조선소를 부활시킬 것”이라며 “그들이 미국에서 선박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우리는 더 많은 함정을 설계하고 있고 미 해군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함정을 건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낙후된 시설에 돈 4~5배 들고 숙련공도 無…한화 조선 물량, 실제론 美 아닌 거제도서 제작




문제는 마스가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조선업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찌감치부터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왔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따르면 미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이미 9만 달러에 육박해 3만 5000달러 안팎인 한국보다 월등하게 높다. 조선업이 전형적인 노동 집약적 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단순히 기술 문제로 극복할 수준이 아니다. 게다가 현지 조선소는 대다수가 부실한 상태로 방치돼 있고, 조선업 패권도 한국과 중국등에 넘어간지 오래라 미국 내에서는 현지 숙련공을 구하기도 힘들다. 조선업이 해군 군수 사업과 직결돼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강한 육성 의지를 가진다 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결과로 끝나기 십상인 상태라는 것이다.

해군 전력을 극대화해야 했던 2차 세계대전 때만 하더라도 미국 조선소에서는 100만 명이 넘는 인원이 일했으나, 현재에는 전국에 사업장조차 몇 군데 남지 않았다. 남은 일감마저 해외에 수출할 물량이 아니라 미국 해군 군함 건조·수리 작업이다. 이런 까닭에 한화그룹이 지난해 12월 한국의 중소형사 규모도 될까 말까 한 필리조선소를 인수할 때도 업계에서는 이 회사가 조선업 거점보다는 태양광 등 다른 미국 사업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를 단행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됐다.



실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2일 한화그룹이 만들 미국 선적 선박 12척 가운데 미국산 천연가스를 아시아와 유럽으로 운반할 대형 LNG 운반선 2척은 거의 모든 건조 작업이 한국 거제도에서 이뤄질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필리조선소에서는 한국에서 만든 LNG 운반선들이 미국 법과 해양안전기준을 준수하도록 점검하고 보완하는 작업만 이뤄진다는 내용의 보도였다.

WSJ에 따르면 이는 한화 필리조선소가 아직 복잡한 대형 선박 건조를 할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서는 이보다도 더 단순한 LNG 운반선을 건조하려고 했다가 공기 지연과 비용 초과 사태를 겪은 바 있다. WSJ가 인용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필리조선소에서 유조선(탱커)을 건조하는 비용은 2억 2000만 달러(약 3100억 원) 이상에 달한다. 반면 이를 중국이나 한국에서 만드는 비용은 약 4700만 달러(670억 원)에 불과하다. WSJ는 “대양을 건널 수 있는 선박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비용은 한국이나 중국보다 4~5배 더 든다"고 지적했다.

미국 조선업을 이렇게 주저앉게 만든 요인은 역설적으로 해당 산업을 보호할 목적으로 1920년 제정한 연안무역법 제27조, 이른바 ‘존스법’이다. 이 법은 미국 국내 항로를 오가며 상품을 실어나르는 배들의 소유권, 인원 등이 75% 이상 미국에 속해야만 한다고 규정한다. 이 법으로 미국 조선소들은 내수 수요만으로 편하게 운영되면서 경쟁력이 급락했고, 이제는 그 실력이 상업 선박용으로는 소형만 겨우 만드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미국 조선소는 배 만들 능력도 없는데…中까지 한화오션(042660) 美자회사 5곳 제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3일(현지 시간)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뜩이나 미국 조선업에 대한 투자의 미래도 불투명한데 트럼프 대통령의 고강도 이민 단속은 국내 업체들을 옴짝달싹하지 못할 처지로 내몰았다. 특히 지난달 5일 현대차(005380)·LG에너지솔루션(373220)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배터리 회사) 건설 현장에서 미국 이민 당국이 316명의 한국인 근로자를 대거 구금한 사태는 조선 업계에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미국 내에 숙련공도 없으면서 정치적 목적으로 비자 제한 조치 카드만 강력하게 꺼내면서 안 그래도 낙후한 미국 내 조선소 운영에 골머리를 앓는 한화·HD현대(267250) 등의 입장에 찬물만 끼얹었다.

여기에 업계 경쟁국인 중국까지 마스가 프로젝트에 딴지를 걸고 나서면서 한국 기업이 받는 압박 수위는 더 높아졌다. 미중 무역 대결에 조선업이 볼모로 잡힌 모양새가 된 까닭이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14일 "미국이 중국에 대해 취한 해사·물류·조선업 (무역법) 301조 조사 조치에 반격하기 위해 ‘한화오션의 5개 미국 자회사에 대한 반격 조치 채택에 관한 결정’을 공표한다"고 밝혔다. 제재 대상 업체는 한화쉬핑과 한화 필리조선소, 한화오션USA인터내셔널, 한화쉬핑홀딩스, HS USA홀딩스 등이다. 중국의 조직·개인 누구도 이들 업체와 거래하거나 협력하지 말라는 게 해당 조치의 골자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이날 입장문에서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는 미국 정부의 조사 활동에 협조하고 지지해 중국의 주권과 안보, 발전 이익에 위해를 끼쳤다”며 “중국은 이에 강한 불만과 단호한 반대를 표한다”고 주장했다. 한화오션이 항만 수수료 부과 등 미국의 대중 해운 제재에 협조한 부분이 불쾌하다는 의미였다.

앞서 미국은 무역대표부(USTR)가 중국 조선·해운사들에 관세와 항구 이용료를 부과하겠다고 공표했고 중국과의 이른바 ‘관세 휴전’ 기간에도 이를 걷기 시작했다.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도 이에 지난달 28일 ‘중국 국제 해운 조례’ 개정안을 서명·공포하며 맞불을 놓았다. 이는 중국과 국제 해운 조약·협정을 체결하거나 이에 참여한 국가가 규정을 위반해 중국에 손실을 끼친 경우 그 국가에 행동 중단을 요구하거나 규약을 중단할 수 있다는 내용의 법안이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한화는 중국 선박에 대한 미국의 입항 수수료 부과로 가장 수혜를 보는 기업 가운데 하나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오후 별도 입장문을 또 내고 “미국이 무역법 301조 조사 결과를 근거로 자국 선박에 대해 입항 수수료를 징수하기 시작했다”며 “미국의 조사를 도운 외국 기업도 보복 대상”이라고 재천명했다. 현재 미중 양국은 이달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정상회담를 추진하면서도 중국의 희토류 기술 수출 제한과 미국산 대두 수입 중단, 미국의 100% 추가 관세 예고와 중국산 식용유 수입 중단 검토 등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번 조치로 당장 한화가 피해를 입지는 않겠지만, 미중 간 갈등이 격화될 경우 실질적인 손해까지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상황이 심각해질 경우 한국 조선사에 대한 후판 공급 중단, 중국계 화주의 한국 기업 미국 조선소 건조 선박 거래 금지 등의 조치가 잇따를 수 있다는 전망이다. 물론 중국의 제재가 없어도 시설, 인력 등이 절대적으로 열악한 미국 조선소에서 10년 내에 유의미한 선박을 건조하기도 어렵지만 말이다. 심지어 한국은 마스가 프로젝트를 약속까지 해 놓고 3500억 달러 대부분을 현금성 달러로 투자하라는 등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 발목이 잡혀 아직까지 25% 관세를 그대로 내고 있다.



※'트럼프 스톡커(Stocker)'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미국의 시장·기업·정책·정치·외교 관련 현장 이야기와 현안 분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구독하시면 유익한 미국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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