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보수주의자들’은 새로운 뉴딜 정책을 향한 진보 진영의 복고적 열망을 공유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지지하는 이들은 자유 시장의 합리성 제고를 위해 정부가 경제에 개입해 자본과 기회를 적절히 배분해줘야 한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경제학자 조지 셀진은 최근 저서 ‘거짓 새벽: 뉴딜 정책과 회복의 약속. 1933-1947’에서 뉴딜에 열광하는 진보주의자들의 승리주의적 향수를 반박한다. 이 책은 ‘민족 보수주의자들’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경험이 주는 경고성 교훈을 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셀진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방대한 학문적 자료를 동원한다. “뉴딜 정책은 대공황으로부터의 회복을 달성하지 못했고 오히려 방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루스벨트의 가장 건설적인 업적은 취임 이틀째에 시행된 전국 은행 휴무 조치였다. 1933년에 단행된 1주일간의 은행 폐쇄는 대체로 경제의 위축을 막았다. 그러나 완전한 회복은 10년의 세월과 2차 세계대전을 필요로 했다.”
셀진에 따르면 대공황은 연방정부가 모든 가용 자산을 총동원해 끝내려 시도했던 첫 번째 경제위기였다. 그러나 경제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미국 경제는 1943년까지 완전고용에 걸맞은 생산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1930년대 말 실업률은 14.6%로 경기 대침체가 정점을 찍었던 2009년 10월의 11%보다 높았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국내총생산(GDP)은 대공황 이전 수준보다 30% 이상 높았고 20% 아래로 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시 노동력의 22%를 점했던 농부들에 대한 직접 지원금은 식품 가공 업체에 매긴 세금으로 충당했다. 정부는 이들로부터 개인세나 기업세보다 훨씬 많은 세수를 거둬들였다. 여기서 발생한 경비는 소비자들에게 전가됐다. 작물 감축 프로그램으로 소비자가격이 오르자 농부들의 수입이 늘어났지만 경작지 감소로 농업 분야에서 200만 명의 실업자가 추가됐다. 1939년의 농가 소득은 1929년 수준에 비해 상당히 낮았다.
뉴딜의 핵심 아이디어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침체기에는 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에 강제로 가격을 인상해야 경기가 회복된다는 게 뉴딜의 주된 논리다. 이에 따라 국가부흥청(NRA)은 기업 이익 단체들의 주도로 약 550개 산업체를 카르텔화하고 가격 하락을 초래할 경쟁을 불법화하는 공정 경쟁 규범을 만들었다. NRA는 피고용자들의 주당 근로시간을 의무적으로 축소했으나 임금 총액 삭감은 금지했다. 이에 따라 실업률은 하락했지만 이의 주된 이유는 일자리 공유였다.
1940년대 초에도 노동력의 17%는 완전히 실직했거나 근무 단축 상태였고 성인들은 1929년에 비해 20시간 이상 적게 일했으며 산업생산은 1929년의 정점에서 10% 아래로 처졌다. 루스벨트의 쉴 새 없는 규제 조치와 기업을 향한 적대감은 투자를 마비시키는 불확실성 분위기를 조성했고 이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뉴딜 정책이 만들어낸 정부 중심적 사고방식은 전시 동원에서 풀려난 산업 생산능력과 군에서 사회로 복귀하는 1000만 명의 제대군인 등이 불러올 민간 부문의 과도한 노동력 확대에 바탕을 둔 종말론적 전후 전망을 낳았다. 대신 정부 지출이 1년 만에 40% 감소하면서 연방 세수가 치솟았고 민간 부문의 활기로 실업률이 크게 떨어졌다. 셀진은 그의 책에 “전쟁이 행동주의적 관리 국가를 포함해 파시즘 냄새가 나는 모든 것에 악취를 안겨줬다”고 썼다.
그러나 교훈은 잊혀졌다. 국가 보수주의자들이 열렬히 찬양하는 트럼프 행정부는 가장 경제개입주의적인 행정부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현 정부는 뉴딜 이래 가장 진보적인 행정부인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농부들, 특히 대두 작농가에 수십억 달러의 지원금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의 관세로 인해 발생한 대두 농가의 손실 보전을 위해서다. 다른 국가들, 특히 중국은 트럼프의 보호주의에 맞서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반국영화된 US스틸은 일리노이의 공장을 폐쇄하는 것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지만 정부는 정치적 이유로 폐쇄를 금지했다.
이러한 조직적 비효율성이 증폭되면서 경제는 역동성을 잃었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과 민족 보수주의자들은 새로운 뉴딜이 지금 여기에 있다며 만족스러워할 것이다. 역사는 조기 경보 시스템으로 불려왔다. 셀진이 짚은 뉴딜의 역사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라는 진부한 경구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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