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야 국회의원들이 앞다퉈 발의하는 법안이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북극항로 특별법인데요. 이르면 5년 뒤인 2030년에는 북극항로 이용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회가 입법 뒷받침을 서두르는 모습입니다. 국민의힘에선 김정재·정희용·조승환 의원, 더불어민주당에선 주철현·문대림 의원 등 총 5명이 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정부도 서두르고 있습니다. 해양수산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북극항로 개척을 위해 북극항로 TF(태스크포스)를 구성했고 내년도 쇄빙선 건조와 해기사 양성 등에 약 5500억 원의 예산을 편성한 상태입니다.
불안한 수에즈 운하에 물류비 급등…대안은 북극항로
북극항로 특별법은 기존의 수에즈 운하 항로의 안정성이 크게 저하됐다는 점을 먼저 지적합니다. 김정재 의원은 특별법 제안이유에서 “최근 잦은 국제 분쟁으로 기존 해상 항로의 불안정성이 심화하고 물류비용이 상승해 수출입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은 지리경제학적 이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미래 신성장 동력 산업을 확보하고 동북아 물류 중심기지로 도약하기 위한 글로벌 해운 공급망의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는데요.
실제 2023년 12월 이후 예멘 후티 반군의 연이은 선박 공격으로 인해 수에즈 운하 항로의 안정성이 크게 훼손됐습니다. 이에 따라 주요 해운사들은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경로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우회 항로는 7~10일 이상의 추가 운송시간을 초래했고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을 유발함은 물론 물류비용의 급격한 상승을 야기했습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희망봉 우회로 인해 선박당 연료비가 약 100만달러 증가했습니다. 또 컨테이너 운임, 할증료, 보험료 증가 등으로 전체 물류비용이 최대 2배 이상 급등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주목받는 곳이 바로 북극항로입니다. 기후변화 가속으로 북극해 해빙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북극항로를 활용한 새로운 해운 공급망의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인데요.
김 의원은 “삼면이 바다인 지정학적 이점을 지닌 우리나라는 복합 기능을 기반으로 유기적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항만을 권역별로 거점항만으로 지정·육성하여 북극항로 해상물류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주도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의원의 지역구는 북극항로 국내 거점항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경북 포항입니다.
이에 질세라 부산 중구영도구가 지역구인 같은 당 조승환 의원도 대동소이한 특별법을 내놓았는데요. 거점항을 둘러싼 동·남해안권 해양도시의 치열한 경쟁도 본격화하는 모습입니다.
북극항로 개척하면 운송거리 32%↓, 운항일수 25%↓
북극항로가 개척될 경우 수에즈 운하 항로 대비 약 32%의 운송거리 단축과 25%의 운항일수 감소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물류 효율성이 대폭 향상돼 물류비 절감뿐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 저감 효과도 예상됩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부산-로테르담 운항 거리는 수에즈 운하 2만2000㎞에서 북극항로 1만5000㎞로 줄어듭니다. 운항일수는 수에즈 운하 40일에서 북극항로 30일로 단축되는데요.
특히 북극항로가 완전 해빙 이전에 상용화될 경우 쇄빙선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곧 국내 조선소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지난해 기준 러시아는 총 10척의 쇄빙선 보유 중으로 북극항로 상용화 시 추가 발주가 필수적인데 우리나라는 쇄빙 LNG선 설계·건조기술을 이미 확보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급 쇄빙 LNG선을 건조한 경험이 있습니다.
5건의 특별법은 각각의 이름과 조문 구성이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북극항로 구축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지원 근거를 담은 것을 핵심으로 합니다. 대표적으로 김정재안을 살펴보면 정부는 북극항로 개척 및 거점항만 지정·육성에 관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고 대통령 소속 북극항로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했습니다. 북극항로 개척 등을 위한 항만시설, 물류거점, 해상교통관제 체계, 쇄빙선 운영 지원 등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지원 의무도 명시했습니다.
또 해양수산부 장관은 북극항로를 통한 국제 해상물류 및 해양산업 활성화를 위해 항만의 지정학적 위치, 항만의 규모 및 하역능력 등을 고려하여 권역별로 거점항만을 지정할 수 있게 했는데요. 다만 북극 해역의 오염 방지 및 생태계 보전을 위해 친환경적인 선박을 개발하고 북극대학원대학을 설립하게 한 것이 김정재안의 특징입니다.
국제정세와 자연환경, 경제성 등 변수도 많아
하지만 국회와 정부의 북극항로 개척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려해야 할 사항이 적지 않습니다. 우선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 및 국내 여론인데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가 지속되고 있어 제재 해제 이후에야 본격적인 경제협력 논의가 가능할 전망입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러시아 은행과 금융 거래를 금지하고 러시아로의 직접 송금도 막는 등 대러 제재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북한군 파병문제로 러시아에 대한 국내 여론도 부정적인 상황에서 러시아를 통한 북극항로 운항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불분명한 북극해빙 시점 및 통항 안정성도 문제인데요. 여름철 북극해빙 완전 소멸시점에 대한 예측이 다양해 국적선사의 운항 참여여부 결정에 애로사항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장기적으로는 여름철 북극항로 해빙은 줄어들고 있으나 한해라도 여름철 해빙 크기가 줄어들지 않는 경우 북극항로 운항 선사의 경영 위기가 불가피해 일부 선사는 북극항로의 안정성·지속성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특히 북극항로에 대한 국내기업의 투자 매력도 감소가 최대 변수입니다. LNG, 석유 등 자원개발 사업은 사업성이 충분한 것으로 예상되나 국제사회 제재로 인해 국내기업은 대러 투자를 주저하기 때문입니다. 컨테이너 선사는 북극항로를 통해 부산-로테르담을 운항할 경우 환적 수요 부족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전망합니다. 실제 북극항로 인근에 사실상 대도시가 전무한데요. 러시아 무르만스크와 아르한겔스크의 인구는 각각 26만 명과 30만 명에 불과합니다.
정쟁 속 공감대 형성한 與野…입법 속도낼까
여야 간 극한의 대립 속에서도 북극항로 특별법 제정에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환영할 일입니다. 통상 특별법 제정에는 발의부터 통과까지 1~2년의 시간이 소요되는데요. 국익에 사활이 걸린 법안이라면 여야가 머리를 맞대 법안 심사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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