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취임 후 처음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의 순방길에 오른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전용기를 이례적으로 공개해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미국 국방장관이 타는 전용기에는 특별한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비밀을 언급하기에 앞서 미국 대통령 전용기를 살펴보자. 미국 대통령이 탑승하는 전용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에어포스 원’으로 불린다. 보잉 747-200B를 기반으로 한 VC-25A 기종이다. 현재 사용 중인 VC-25A가 제작된 지 30년이 넘어 교체 필요성이 제기돼 차세대 대통령 전용기인 VC-25B가 개발 중이다. 보잉 747-8을 기반으로 최신 통신 및 보안 시스템을 갖출 예정이다
이 비행기는 암호통신과 방어 체계, 의료 시설, 공중 급유 기능 등을 갖춘 세계 최고급 비행기다. 미 국방부와 보잉은 고가와 인도 지연에도 불구하고 미사일 탐지, 적외선 방해 장치, 전자전 시스템 등 첨단 보안 설비를 구축했다. 이 덕분에 ‘에어포스 원’은 핵전쟁 상황에서도 대통령이 국정을 지휘할 수 있는 ‘날아다니는 백악관’ 역할을 한다.
주목할 점은 ‘에어포스 원’이 전 세계를 날아다닐 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미 국방장관 전용기도 함께 움직인다. ‘하늘의 펜타곤’(국방부)으로도 불리는 ‘E-4B’는 ‘심판의 날 항공기’(doomsday plane)로 불린다. 미국도 4기 밖에 보유하지 않은 특별한 항공기다.
유사시 군 최고지휘부가 탑승해 대통령의 지휘를 받아 전 세계 미군에 공격암호를 하달한다. 이 때문에 ‘나이트워치(Nightwatch·야간감시)’란 별칭도 가지고 있다. 핵전쟁 발발 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폭격기, 핵잠수함 등 미국의 모든 핵 전력을 실시간 지휘하기 때문이다. 이에 핵전쟁 발발시 공중지휘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동체엔 방사능·열핵 및 전자기 펄스(EMP) 방호 처리가 돼 있다.
이 같은 가공할 비밀 때문에 북한을 겨냥해 역대 미 국방장관들은 ‘핵공중지휘통제기’ E-4B를 타고 방한해서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핵·미사일 도발 위협에 대해 경고하곤 했다. 2023년 1월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이 이 기체를 타고 오산공군기지에 도착해 화제가 됐다.
이 항공기는 보잉 747-200 민항기를 군용으로 개조했다. 모두 4대가 제작됐다. 대당 제작비는 2억 5000만 달러(약 3470억 원)다. E-4B에는 국방부 장관 일행과 현역 공군인 승무원 45명 등 최대 112명까지 탈 수 있다. 작전회의실과 브리핑룸이 마련돼 있고, 국방부 장관 전용의 스위트룸도 마련됐다. 공중에서 급유받으면 7일 동안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다.
이런 항공기가 한반도에서 비밀리에 훈련을 전개할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2년 11월 미 해군 ‘E-6B’ 1대가 한·미의 대규모 연합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 훈련 기간 동안 한반도 상공을 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 소식통은 “E-6B는 미 해·공군의 핵전력과의 교신을 위해 띄우는 통제기”라며 “당시 한반도 주변에 전략핵 및 전술핵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할 수 있는 핵잠수함이 배치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6B’ 는 E-4B의 해군용 항공기다. E-6B는 지상의 핵미사일 통제센터가 공격을 당해 무력화되더라도 항공기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를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든 기종이다. 예컨대 미 해군의 오하이오급 핵추진잠수함인 핵탄두 미사일을 탑재한 ‘네바다함’(SSBN-733)이 괌에서 이동하면 E-6B도 함께 전개해 통제를 받는다.
최근 미국은 E-4B를 대체할 최신형 항공기 개발이 한창이다. 미국 군사매체인 디펜스뉴스에 따르면 미 공군은 지난 9월 5일(현지 시간)부터 심판의 날 항공기 차세대 버전 ‘E-4C’ 항공기의 시험비행을 시작했다.
E-4C 개발은 2024년 6월부터 본격 시작했다. 기존 핵지휘통제기인 E-4B 항공기가 실전배치된지 50년이 지나 노후화되면서 2019년부터 교체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또 E-4B의 사용연한이 종료돼 안전 우려가 커지면서 E-4C 개발사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시험비행과 지상에서의 안전 시험 등은 2026년 초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미 공군은 시에라네바다社와 130억 달러(약 18조 원) 규모의 E-4C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최종적으로 2036년 7월까지 5대의 E-4C 항공기의 실전배치를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재미있는 건 최신형 ‘E-4C’ 5대의 기반이 될 보잉 ‘747-8i’를 최근 국적기인 대한항공으로부터 사들였다는 점이다.
신형이 아닌 중고 여객기를 구매한 것은 보잉이 747 기종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 이유다. 노후화하는 E-4B를 개량할 SAOC에 필요한 항공기는 747-2보다 큰 747-8 기종인데 보잉은 2021년 1월 생산을 종료했다. 이에 747-8 기종을 보유한 대한항공, 루프트한자, 에어차이나 중 대한항공을 선택해 5기를 계약했다. 매각 금액은 약 9200억 원으로 알려졌다.
미국 언론들은 “미국이 본토 미사일 방어체계인 골든돔(Golden Dome) 프로젝트에 이어 최신형 핵지휘통제기 개발에도 속도를 내는 배경은 최근 중국의 핵전력 강화 속도를 의식한 움직임”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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