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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가 열어준 '고추'의 세계 여행 [박선태의 중남미 이슈와 문화]





한류가 전 세계를 휩쓸며 이제는 한국의 매운맛도 글로벌 시장에 확고히 자리 잡았다. 김치, 고추장, 매운 라면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가운데, 최근 남미 파라과이에서 한국의 태양초 고추를 재배해 고추가루로 가공해 미국으로 수출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단순한 농업 뉴스 같지만 그 안에는 중남미와 한국, 그리고 세계를 잇는 식문화의 순환이 숨어 있다.

학계의 다수 견해에 따르면 고추는 중남미가 원산지로 멕시코와 볼리비아, 페루 등지에서 오래전부터 재배되어 왔다. 15세기 콜럼버스 교역을 거치며 유럽으로 전해지고, 다시 아시아로 건너왔다는 학설이 주류다. 전래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중요한 것은 고추가 김치와 만나 한국인의 식문화에 깊이 스며들었다는 점이다. 태양초는 그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파라과이는 고온다습한 기후와 강한 일조량을 지녀 고추 재배에 이상적이다. 참깨, 콩 등 작물 수출 경험도 풍부하다. 과거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중남미 여러 나라를 다니며 다양한 고추(Chile) 품종을 봤지만 태양초 고추를 본 적이 없다. 고춧가루 생산 이야기도 들은 기억이 없다. 그런데 파라과이에서 태양초를 재배해 미국으로 수출한다는 소식이 들여왔으니 놀라웠다. 세계 식문화의 흐름 속에서 중남미에서 ‘한국 고추’가 재배되는 새로운 장면이다.

이 변화는 김치 수요 확대와 맞물려 있다. 미국 김치 시장은 2024년 약 6억8000만 달러에서 2030년 9억4000만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고춧가루 수출은 김치 소비 증가의 반증이다.



40여 년 전 처음 중남미에 갔을 때 현지인들은 김치를 ‘삐깐테(Picante, 매운 음식)’라고 불렀다. 즉 김치는 매운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지금은 ‘건강식’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칠레, 콜롬비아, 파라과이의 한국 식당들은 주말마다 만석이라고 한다. 2011년 칠레에서 근무할 당시 김치 담그기 행사와 전시회를 열었을 때 현지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파라과이 명문가에 김치를 선물했을 때 하루 만에 다 먹고 다음 날 “더 없냐”는 전화를 받았던 기억도 있다. 콜롬비아의 한 기업인 아들이 선물 중에서도 특히 고추장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 것도 인상 깊었다. 요즘은 대사관 직원들이나 지인들 집마다 김치가 상비되어 있다고 들었다.

고추는 단순한 양념이 아니다. 안데스의 태양 아래에서 시작된 고추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한국에서 태양초로 다시 피어나고, 이제 파라과이에서 재배돼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고추가루 한 포대에는 김치와 한국의 매운맛이 세계 식문화 속으로 스며드는 순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제 정부도 한류를 통해 문화 영향력을 넓히고 국가 이미지를 높이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김치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지만 중남미에는 내세울 만한 한식당이 거의 없는 현실은 아쉽다. 한류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음식 문화 세계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과 인력 양성에 전략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한류가 일시적 유행을 넘어, 지속 가능한 문화 교류의 토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서경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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