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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진 칼럼] 안보가 튼튼해야 ‘모두의 대통령’

APEC 계기로 북미 정상회담설 ‘솔솔’

李대통령 빼고 진행된다면 ‘통미봉남’

김정은 “한국 영토는 안전한가” 협박

‘END구상’ 북핵 용인 자초 땐 큰 문제





이달 31일 열리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날 수도 있다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일단 북한이 최근 유엔총회에 외무성 고위 인사를 참여시키고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등 기류 변화가 예사롭지 않기는 하다. 미국 백악관도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전제 조건 없는 대화’ 의지를 갖고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회담 성사 가능성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방문 후 한국 체류 시간이 짧다는 점 등에 비춰 높지 않다. 그래도 만약 둘만의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북한은 이재명 대통령을 배제한 ‘통미봉남(通美封南)’의 길을 여는 셈이 된다.

북한은 6·25전쟁 이후 한국을 제외한 미국과의 직접 교섭을 주장하는 통미봉남 전략에 집요하게 매달렸다. 그러다가 1997년 1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4자회담’을 기점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간 협의에 마지못해 발을 들였다. 옛 소련 붕괴 후 고립 상태로 내몰린 북한이 미국·중국의 압박에 못 이겨 다자회담의 장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 4자회담은 북측의 통미봉남 주장과 우리의 비핵화 우선 원칙이 맞부딪쳐 결렬됐지만 한반도 문제에서 남북한뿐 아니라 정전협정 서명국인 미국과 중국까지 참여하는 다자회담의 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열린 한국경제설명회 투자서밋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28년을 이어온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협상의 틀이 위태롭게 느껴진다. 자칫하면 우리의 북핵 폐기 원칙마저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갖게 할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무기 생산 동결을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하면 이를 수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단→축소→폐기’라는 북한 비핵화 3단계 해법 중 첫 번째 단계를 북미가 합의하면 받아들이겠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사흘 뒤 유엔총회 연설에서는 ‘E·N·D 이니셔티브(교류·관계정상화·비핵화)’를 한반도·대북 정책으로 공식화했다. 그렇지만 이는 ‘D(비핵화)’ 단계 중 첫 단계인 ‘중단’이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해 보인다.

이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태도에서는 안이함마저 읽힌다. 지난달 25일 뉴욕증권거래소를 찾은 이 대통령은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에 대해 걱정이 생기는 건 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라며 “북한을 다른 이유 때문에 자꾸 자극하고, 북한에 대해서 도발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정치적 이유’는 윤석열 전 대통령 때의 평양 무인기 투입 작전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북한을 군사적으로 적대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적절한 발언으로 여기기 어렵다. 심지어 이 대통령은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핵무기는 이미 충분히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용인하는 뉘앙스로 들릴 만한 말까지 했다.



북한 무장장비전시회 '국방발전-2025'가 지난 4일 평양에서 개막했다고 조선중앙TV가 5일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잇단 유화적 발언과 지속적인 대화 요구에도 북한은 되레 대남 협박 수위를 극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북한은 4일 ‘국방발전-2025’ 무장장비전시회에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KN-23에 극초음속 탄두를 장착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성-11마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과 화성-19형 등 한국과 미국을 공격 대상으로 한 가공할 신무기를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한국 영토가 결코 안전한 곳으로 될 수 있겠는가”라고 협박했다.

이 대통령은 추석날 고향인 경북 안동에 있는 부모의 선영을 참배하고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이 대통령이 그렇게 되려면 국민 모두가 김정은의 어떤 협박도 가소롭게 여길 만큼 안보가 우선 튼튼해야 한다. 북핵 3단계 해법이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것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스 메이커’ 역할을 권하면서 ‘페이스 메이커’를 자임한 것이 북한의 통미봉남을 용인하는 것이라면 국민적 동의를 확보하기 어렵다. 북한이 서울을 패싱한 채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하는 것을 이 대통령이 방조한다는 오해가 불식되지 않는다면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도 공허한 다짐에 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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