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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 보냈는데 전달 안 돼서 연락했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재구성[울산톡톡]

울산경찰, 보이스피싱 조직 범죄 수법 공개

범죄 조직, 협박과 회유로 피해자 심리적 지배

사회 경험 적은 20~40대 사법기관 사칭 피해

60대 이상은 카드배송 미끼로 체크카드 등 건네

경찰 “신청하지 않은 카드 발급 연락 모두 가짜”

공공·금융기관 원격제어 앱 설치 요구하지 않아

보이스피싱 조직이 만든 위조서류 예시. 실제 서류엔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기재돼 있다. 사진제공=울산경찰청




“검찰청 김OO 수사관이다. 어제 등기를 보냈는데 전달이 안 되어서 연락했다. 등기를 직접 수령하기 어려우면 IP주소를 불러줄테니 접속해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9월 10일 30대 남성 A씨는 서울중앙지검 수사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실제 A씨는 셀프 감금된 상태에서 돈을 보내기 직전 경찰의 도움으로 피해를 면할 수 있었는데, 이 사례는 A씨가 돈을 보낸 것을 가정했다.

△심리적 지배

A씨가 사이트에 접속해 인적사항을 입력하자 위조서류 3종이 자동 생성된다. 서류는 검찰 공문에 은행 거래내역, 구속영장까지 포함돼 있었다. 가짜 서류인 것을 알아채지 못한 A씨는 특히 구속영장에 이름이 적혀 있어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김 수사관은 “당신은 이 사건의 피고인으로 기소되어서 몇 가지 진술을 해야 한다”며 1차 재산 파악에 들어간다. 10만 원 이상 보유 중인 계좌를 모두 진술하게 한 뒤엔 담당 검사를 연결한다.

“검찰청 이OO 검사다. 본인 사건 내용에 대해 진술해봐라”고 요구한다. 이에 A씨가 머뭇거리자 “당신 때문에 많은 피해가 발생했는데 정신 똑바로 안 차리냐? 녹취 수사를 해야 하니 공문과 구속영장을 직접 읽어라”고 협박한다.

이어 성매매 범죄 일당이 검거됐는데 범행에 쓰인 통장 중 당신 명의의 통장이 발견됐고, 공범으로 기소됐다는 내용을 설명한다. 중요 사건으로 사건 내용을 발설하면 관련자들까지 모두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될 것이라며 타인과 정보 공유를 차단한다. 그리고 A씨에게 “공범인지 피해자인지 조사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에 방문해서 재산 조사를 받아야 하니 연차를 내라”고 속인다.

계속된 협박과 속임수에 A씨는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이후 검사 사칭범은 2차 재산 파악에 나선다.

△계좌 인출을 위한 실행 단계

“당신이 진술한 계좌정보와 금감원에서 파악한 정보가 달라서 금감원 출입 허가가 거부됐다. 초범이고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으니 금감원에 재심사 요청을 해보겠다. ‘어OOOOO 앱(여러 금융기관의 계좌, 카드, 보험, 대출 등의 정보를 한 곳에서 조회 관리할 수 있는 통합 금융 관리 앱)’을 설치하고 계좌, 보험, 카드, 대출 현황을 전부 조회한 후 사진 촬영해서 보내라.”

A씨 계좌. 사진제공=울산경찰청


이후엔 보안을 위해 메신저를 설치하게 하고, 임시 폰도 개통하게 한다. 특히 원격제어 앱 설치를 지시하는데, 이를 이용해 악성 앱을 설치한다. 범인은 또 이상거래탐지 회피를 위한 지시까지 내린다.

“앞으로 연락은 임시 폰으로 하고, 자금검수를 위해 금융 앱을 이용하라고 지시할 때만 본폰에 유심을 교체해서 이용해라.”

금융 앱에 접속한 단말기 정보가 바뀌면 금융회사에서 이상거래로 탐지한다는 점을 알고, 금융거래 시에만 본폰을 이용하게 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 A씨가 셀프 감금된 호텔(왼쪽)과 임시로 개통한 휴대폰(오른쪽) 영수증. 사진제공=울산경찰청


△셀프 감금으로 현실 감각 무너뜨리기

또 심리적 지배상태를 이어가기 위해 셀프 감금까지 시도한다.

“본건은 구속수사가 원칙이라 금감원 출입 전까지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어야 한다. 수감되면 전과 기록이 남는데 앞으로 사회생활할 수 있겠느냐. 수사에 협조 잘 하면 금감원 출입 재심사 기간 동안 임시 보호관찰 조치를 해주겠다. 보호관찰이란 검사가 지정하는 장소에 대기하면서 약식수사를 받는 것을 말한다. 보호관찰을 위해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할테니, 경찰에서 전화가 오면 응답해라.”

셀프 감금된 A씨는 경찰 사칭범으로부터 악성 앱으로 변작된 112 번호로 전화를 받는다. 경찰 사칭범은 현재 위치와 복장을 묻고 보호관찰 시 유의사항 등을 안내한다. A씨는 112 번호를 보고 사실이라고 확신했다. 셀프 감금시 주의사항도 알려줬다. 주의사항은 PC 이용 금지, 금융권 어플 사용 금지, 휴대폰 임의조작 불가, 기상시간 및 취침시간 준수 등이 있다. 이들 모두 나름의 이유를 달아 A씨가 믿도록 했다.

A씨가 주의사항에 따라 잘 행동하면 “협조를 잘 하고 있으니 전과 기록이 안 남게 일단 당신을 피해자로 등록해뒀다. 경찰에서 방문을 요청하는 연락이 올 수도 있는데, ‘아무 일 없이 일상생활 중이고 시티즌코난 앱으로 피해가 있는지 확인도 했다’라고 답하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이는 경찰의 보이스피싱 예방활동을 막는 역할을 한다. 경찰이 악성 앱 설치자를 대상으로 한 피해구제 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회피방법까지 마련한 수법이다.

피해자 A씨와 보이스피싱 조직원 간 대화 내용. 사진제공=울산경찰청




이후엔 금융감독원 과장 사칭범이 등장한다. 검사 사칭범은 “금융감독원에 재심사를 해 달라고 부탁해 보라”고 한다. 금융감독원 사칭범은 “신원보증서와 파견절차 동의서가 필요하다”고 하자, 검사 사칭범은 “아직 피해자인지 공범인지 입증이 안 돼 보증을 서 줄 수 없다”고 한다. 다시 금융감독원 사칭범은 “당신이 협조하면 중징계를 무릅쓰고 피해자 입증절차를 도와주겠다”며 선심을 쓰는 척 한다. 그리고는 명의도용 관련 뉴스를 보내주며 시청 소감을 말해보라 한다. 뉴스는 은행에서 명의도용으로 계좌를 개설한 뒤 불법대출을 받거나 고객 자산을 횡령하는 경우가 있다는 내용이다. 특히 본인이 피해자임을 입증하려면 경각심을 갖고 피해자 입증절차에 임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돈 가로채기

이제 보이스피싱 조직은 본격적으로 돈을 가로챈다. 수사 협조 방식으로 A씨를 속인다.

“피해자 입증절차를 설명해주겠다. 금감원에서 당신의 신용점수를 임의로 낮출 것이다. 신용점수를 낮췄는데 대출이 나온다면 은행 직원이 불법대출을 승인하여 명의도용에 가담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 핀다 앱(대출 비교 플랫폼)을 설치하고 은행별로 대출 한도를 조회한 후 촬영해서 보내라.”

A씨가 대출 가능 상품을 보내면 “신용점수를 낮췄는데도 대출이 가능한 게 이상하지 않느냐? 증거 확보를 위해 해당 대출을 신청하라”고 지시한다.

또 수사사항이 노출되면 안 되기 때문에 국내와 해외 코인거래소에 계정을 생성하고 계좌를 연동시킬 것을 요구한다. A씨는 지시대로 대출금을 매일 1000만 원씩 2곳의 국내 거래소 계좌에 충전해 가상자산을 매수하고, 본인의 해외 거래소 지갑주소로 옮긴 후 범죄조직이 지정하는 지갑주소로 재전송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만약 거래소에서 전화가 오면 ‘유튜브 ○○TV에서 □□코인에 관한 정보를 보고 투자하는 것’이라고 답하라”며 이상거래탐지를 회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번에는 검사 사칭범이 전화한다.

“피해자 입증절차가 잘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다. 원래 보호관찰 기간보다 일찍 종료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좀 더 견디고 힘내라 격려한다.

다시 금융감독원 과장 사칭범은 “그동안 은행의 불법대출 건으로 전송한 검수 금액은 모두 정상 접수됐다. 주택청약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대출금으로 가상자산을 매수하여 전송하라”고 재차 요구한다.

이후 검사 사칭범은 “피해자 입증이 거의 진행됐다. 문제는 피해자들이 민원을 제기하는 걸 막아야 하는데, 법원에 공탁금을 걸어야 한다”고 속인다.

A씨가 공탁금을 구하자 금감원 사칭범은 기존처럼 가상자산으로 전송할 것을 요구했다.

다시 검사 사칭범은 “공탁 신청이 기각됐다”며 “500만 원을 더 구해 공탁금을 올리면 승인될 것 같다”고 속이며 3번째 돈을 가로챘다.

마지막으로 검사 사칭범은 “공탁신청이 승인됐으니 이제 귀가해도 된다. 사건 유포를 막기 위해 휴대전화를 초기화하고 가까운 경찰서에 가서 본인 이름을 말하면 피해자 입증서류를 줄 것이다”며 증거 인멸까지 한다.



△피해 예방

울산경찰청은 위 사례가 20~40대가 가장 많이 당하는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30대 A씨는 지난달 10일 등기배송 미끼전화를 시작으로 숙박업소에 셀프감금돼 7900만 원을 이체하려 했다. 울산 북부경찰서 전담수사팀은 피해구제 대상자 명단을 통보받은 즉시 A씨 소재를 추적, 직장에도 출근하지 않은 채 호텔에 투숙 중인 사실을 확인했다. 심리적 지배 상태로 협조하지 않는 A씨를 호텔 밖으로 나오도록 설득,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은 것을 확인시켜 A씨가 송금하지 못하도록 해 7900만 원의 피해를 예방했다.

경찰(왼쪽)이 호텔 앞에서 피해자 A씨를 만나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은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사진제공=울산경찰청


비슷한 사례로 60대 이상은 카드배송 전화로 접근해 골드바, 체크카드를 건네받는 등의 방식으로 범행하고 있다. 대환대출을 빙자한 사기 유형도 있다. 작업대출 대상자로 의심된다며 상환을 비롯한 공탁금, 보증금, 보험료, 위약금, 중도상환수수료 등 다양한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경찰은 악성앱 설치자, 가짜 국가기관사이트 접속자 등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 매일 피해구제 대상자를 선정·통보하고 있다. 통보를 받은 관할서 전담팀은 곧바로 출동해 피해자를 만나 사기를 예방하는 방식이다.

경찰은 “카드 및 등기배송을 미끼로 접근하는 보이스피싱 수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고, 특히 최근 숙박업소에 셀프 감금까지 시키는 악성 수법이 자주 발생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예방 수칙도 공개했다. 먼저 본인이 신청하지 않은 카드가 발급되었다는 연락은 모두 가짜다. 실제로 카드를 신청하면 카드사는 공식 채널 및 대표번호로 배송 관련 알림톡이나 문자를 발송하며, 계약된 배송업체를 통해 카드를 배송하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배송정보 조회가 가능하다. 따라서 본인이 신청하지 않은 카드가 발급됐다는 연락을 받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112로 신고하면 범죄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또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은 원격제어 앱 설치를 요구하지 않는다. 특히 모르는 사람에게 원격제어 앱의 접속(승인) 코드를 알려주어서는 안 된다. 주기적으로 백신 앱을 실행해 악성 앱을 삭제하거나 스마트폰을 초기화하는 것도 범죄를 예방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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