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관세 폭탄과 이재명 정부의 법인세율 인상 추진 등으로 한국 기업들의 국내외 환경이 녹록치 않습니다. 기업들이 각종 어려움을 호소하자 국회는 반도체·철강·조선 등 주력산업을 지원하는 각종 법안들을 내놓았는데요. 여전히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허송세월하며 기업들의 한숨이 늘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있는 법안들을 살펴볼까요. 물론 이해당사자들의 요구가 온전히 반영되지 않았고 여야 대치 문제도 지속되는 만큼 통과 과정에서도 여러 갈등이 표출될 전망입니다.
‘패트’ 태운 ‘52시간 완화’ 빠진 반도체특별법
우선 반도체특별법(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의 이번 정기국회 처리 가능성이 점쳐집니다. 반도체특별법에는 △정부의 5년마다 반도체산업 기본계획 수립 및 시행 △반도체산업혁신특구 조성 시 신속한 인·허가 △대통령 소속 국가반도체경쟁력강화위원회 △반도체산업특별회계 설치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반도체 업계가 강하게 요구했던 ‘주 52시간 예외’ 적용은 빠져 있습니다. 올해 대선 기간에 민주당은 해당 내용을 뺀 반도체특별법 처리를 주장했고, 국민의힘은 주 52시간 근로 예외조항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평행선을 달렸습니다. 결국 민주당은 지난 4월 17일 해당 조항을 뺀 특별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습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을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맡고 있어 상임위 의결을 우회하려 한 것이죠.
이때 패트에 태워졌던 반도체특별법은 오는 10월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될 전망입니다. 국회법에 따르면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 180일, 법제사법위원회 90일, 본회의 부의 후 60일 등 짧게는 180일에서 최장 330일이 소요됩니다. 반도체특별법이 법사위에만 올라오면 법사위원장도 민주당 소속이고, 민주당이 거대 여당인 만큼 본회의 통과도 무난해 보입니다. 다만 10월 13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 일정을 고려하면 빨라야 11월에 법안 처리를 위한 법사위가 열릴 것으로 보입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도 지난달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찾아 "반도체가 살아야 한국 경제가 산다는 말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며 "인프라 구축, 설비 확충, 연구·개발 지원 등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하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해 이러한 시나리오에 힘을 실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이던 올 4월 “반도체 특별법 제정으로 기업들이 반도체 개발·생산에 주력할 수 있게 하겠다”며 후보 선출 후 첫 공약으로 반도체특별법을 꼽기도 했습니다.
최근 삼성전자와 SK그룹이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반도체 산업의 업황 상승 분위기가 느껴지는데요, 이같은 상황이 앞으로 진행될 반도체특별법 처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됩니다. 업계 관계자는 “전세계가 반도체 산업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 주 52시간에 발 묶여서는 산업 경쟁력이 뒤처질 수 밖에 없다”며 “주 52시간제 완화가 담긴 특별법 처리가 간절하다”고 전했습니다.
여야 의원 106명 뭉친 ‘K-스틸법’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은 지난 8월 여야 의원 106명이 공동 발의하며 관심을 끌었던 법인데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 설치 △녹색철강기술 개발 및 관련 설비 도입 비용 보조 △철강 산업 인력 양성을 위한 고용 보조금 지급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사업 재편에 필요한 세제·재정 지원 등이 담겨 있습니다.
여야 대치 정국 속에서도 초당적 협력을 이뤄내 K스틸법은 빠르게 국회 문턱을 넘을 것으로 예상됐는데 여전히 상임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여야는 K스틸법을 ‘민생경제협의체’ 안건으로 논의할 계획이었는데요, 민주당의 쟁점 법안 강행 처리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가 도돌이표로 진행되며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가 “3주째 멈춰 있는 민생경제협의체를 즉시 재가동하자"고 촉구했고,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민생입법을 처리하기 위해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합의한 후에 본회의를 열고 법안을 처리했으면 좋겠다"고 한 만큼 민생경제협의체가 추석 이후에는 가동될 거란 관측이 나옵니다.
물론 철강 업계는 늦어지는 법안 통과에 속이 탑니다. 국회철강포럼 공동대표이자 법안을 대표 발의한 민주당 어기구·국민의힘 이상휘 의원이 지난달 K스틸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어 의원은 후속 입법으로 구체적 세금 감면 내용이 담긴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도 발의하려 했지만 여야 갈등에 해당 안을 내놓는 시점도 늦췄습니다.
미국 정부가 수입 철강 관세를 50%로 높인 데 이어 유럽연합(EU)도 50% 철강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는데요. 이 방침이 시행되면 한국 철강 기업들은 수출액 기준 1위인 EU와 2위 미국 수출 시장에서 고관세 직격탄을 맞게 됩니다. 한국 철강 업계는 추석 연휴 직후에라도 민생경제협의체 출발이 간절한 상황입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