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최근 출범 6개월 만에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받으며 본격적인 연금 구조개혁 논의를 시작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때 맞춰 당 차원의 전문가 간담회를 연이어 개최하고 관련 논의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지난 4월 출범 이후 탄핵·대선 등 정치 일정과 여야 대립 탓에 지지부진하던 연금특위가 반년 만에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그러나 특위 논의가 구체적인 결실을 맺으려면 갈 길이 멀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다가올 국정감사와 예산 심사, 지방선거 정국 등을 감안하면 국민연금은 물론 기초·퇴직·개인연금 등 노후소득보장 체계를 손봐야 하는 방대한 구조개혁 논의가 지속되기 어려운 탓이다.
4일 국회에 따르면 연금특위는 지난달 30일 4차 전체회의를 열어 연금개혁 논의를 위한 민간자문위원회 명단을 발표하고 정부부처의 업무보고를 받았다. 지난 3월 연금특위가 출범한 이후 반년 만에 본격적인 개혁 논의에 돌입한 셈이다.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보건복지위원회·금융위원회의 업무보고가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여야는 한 목소리로 연금의 재정건전성 문제를 짚었다. 김남희 민주당 의원은 “이번 연금 개혁으로 미래세대가 더 큰 부담을 지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이해해야 한다”며 “국민연금에 적정한 수준으로 국고를 투입하면 기금 고갈을 막고 청년세대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은 “(재정안정화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입장은 뭔가. 국정과제에 (관련 방안이) 한 개도 없다.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정부를 질타했다.
민주당도 특위 재개에 맞춰 당 차원 연금특위 간담회를 연이어 개최하며 개혁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국회에서 당 연금개혁특위·코스피5000특위 주도로 열린 ‘퇴직연금 제도 혁신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현재 개별 증권사 차원에서 운용되는 퇴직연금을 국민연금처럼 한 데 모아 기금화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연금특위 위원장인 남인순 의원은 “최근 5년간 퇴직연금 수익률이 2%에 불과하고 전체 사업장 도입률은 27%에 불과한 상태이기 때문에 퇴직연금을 더 확장·강화해서 노후소득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도걸 의원은 “퇴직연금은 규모의 경제와 자산운용의 전문성을 잘 활용한다면 수익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며 “기금화 문제에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일 열린 ‘국민연금-기초연금 관계 재구조화’ 토론회에서 남 의원은 “2050년이면 기초연금이 현재보다 6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연금을 다층적 체계로 발전시키는 부분에서 기초연금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점검할 시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김윤 의원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관계 재설정 시기를 놓치면 국민연금을 받는 고령층 노인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기초연금 지출액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기초연금액의 수급액을 올려서 실질적인 노후소득 보장이 되도록 하되, 대상자는 좀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면서 국민연금과의 관계 설정해 나가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3월 국회는 국민연금 보험료율(내는 돈)을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받는 돈)은 40%에서 43%로 높이는 연금 모수개혁을 단행했다. 하지만 이는 연금 기금 고갈 시기를 2056년에서 2064년으로 8년 늦출 뿐이어서 연금 구조개혁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를 논의하기 위해 3월 여야 합의로 연금특위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구조개혁은 단순히 국민연금의 보험료율 등을 조정하는 것을 넘어 기초연금, 기초·퇴직·개인연금 등 연금제도의 근본 틀을 바꾸는 복잡한 작업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하위 70% 노인에게 모두 지급되는 기초연금의 수혜 대상과 수준을 바꾸는 등 국민연금 제도와의 정합성을 높이는 작업을 비롯해 국민연금(1층)·퇴직연금(2층)·개인연금(3층) 등 여러 연금제도가 상호보완적으로 역할하도록 법제와 수급구조를 재설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연금특위는 방대한 논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하는 고차방정식 과제를 안고 있지만 그간 특위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4월 1차 회의에서 특위 구성의 건을 가결하며 공식 출범했으나 4월 말 2차 회의를 끝으로 대선 일정에 밀려 한동안 진행되지 못했다. 8월21일 약 4개월 만에 세 번째 회의를 열었지만 민간자문위와 분과 구성 등을 두고 여야가 대립하면서 ‘자문위 구성을 위원장·간사가 정한다’는 원론적 내용만 의결하고 회의를 마쳐야 했다.
윤영석 특위 위원장은 9월 초까지 자문위 구성을 마무리 짓겠다고 했으나, 특정 전문가를 자문위원에 선임하는 문제를 두고 여야 이견이 쉽게 좁혀지지 않으면서 또다시 회의가 미뤄졌다. 결국 특위는 한 달 이상이 지난 후에야 4차 회의에서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22명의 민간 자문위원회 명단을 발표했다.
연금특위가 가까스로 활동을 재개했지만 향후 국회 및 정치권 일정과 그간 논의의 우선순위를 감안하면 가시적 성과를 내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추석 연휴 이후엔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사가 줄줄이 예정된 데다, 연말이면 내년 6월 예정된 지방선거가 정치권 이슈를 빨아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여당이 검찰·사법·언론개혁 등 권력 구조 개편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과정에서 연금개혁 논의는 정가의 관심권 밖으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금제도에 대한 청년 세대의 불신이 굉장히 크므로 하루빨리 구조개혁을 통해 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비전과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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