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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누가 ‘테메레르 전함’ 예인선 침몰시키나

트럼프 ‘동맹 궁핍화 전략’에 韓경제 직격탄

‘기술 굴기’ 성공한 中, 한국 핵심 산업 추월

‘동굴 우상’ 갇힌 당정, 기업옥죄기 법안 양산

전통 제조업 바통 이을 첨단 산업 싹 자르는 꼴





작은 예인선이 짙은 연기를 뿜어 대며 덩치 큰 범선을 앞에서 끌고 간다. 뱃머리에 일렁이는 물결이 힘차다. 석양 노을이 자아내는 황금 빛깔 배경은 희망을 노래한다. 영국을 대표하는 국민 화가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가 1839년 그린 ‘해체를 위해 예인되는 전함 테메레르’ 얘기다. 영국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으로 20파운드 지폐 모델이기도 하다. 전함 ‘테메레르’는 1805년 트라팔가르해전에 참전해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를 격파하고 영국이 승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영국 제해권이 굳건해지자 나폴레옹은 결국 영국 침공을 단념한다.

수명을 다하고 런던 템스강 조선소로 퇴역하는 ‘범선’ 테메레르를 이끄는 것은 ‘증기 기관’ 예인선이다. 범선은 구(舊)시대의 영광, 예인선은 산업혁명 신(新)시대의 도래를 상징한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테메레르의 바통을 이어받아 이제는 첨단기술이 적용된 예인선이 경제발전을 주도하고 과거 영국의 국격을 지키겠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한국 경제가 거친 마디숨을 토해내고 있다. 내수 부진과 경기 둔화도 버거운데 밖에서는 미국발(發) 관세 폭탄과 중국발 공급 쇼크라는 ‘이중 쓰나미’가 휘몰아치고 있다.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3.2%로 이전 전망 때보다 0.3%포인트 올렸지만 한국은 1.0% 그대로 유지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에도 한국 경제성장률이 1.8%에 그쳐 잠재성장률(1.9%)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 경제에 ‘모범생’ 성적표를 안겨줬던 국제사회가 시각 교정에 들어간 것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명분을 앞세워 동맹국에 관세 폭탄을 때리는 ‘동맹 궁핍화 전략’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 한국을 시범 타깃으로 거칠게 몰아붙여 관세 협상을 벌이고 있는 다른 국가들에 본보기로 삼겠다는 의도다.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에 대해서는 “현금 선불(up front)”이라며 강경 일변도다. 동맹 상징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더니 무관세였던 한국 자동차에 25%의 고율 관세를 강제했다. 관세율이 15%인 일본과 유럽연합(EU)과의 경쟁에 밀려 현대차그룹 영업이익은 2분기에 1조 6000억 원이나 줄었다.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철강에는 이미 50% 관세율을 매겼고 반도체에도 고율 관세를 예고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미 통상 규범은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에 불과할 뿐이다.



‘짝퉁 공장’에서 ‘기술 제국’ 변신에 성공한 중국은 물량 공세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한국 기업을 추격하거나 추월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위협적이다. 한국 석유화학과 철강 산업은 구조조정을 단행하지 않으면 생존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다. CATL(배터리)을 비롯해 비야디(전기차)·BOE(LCD)·화웨이(통신장비)·DJI(드론)·론지솔라(태양광)·바오우스틸(신소재) 같은 기업은 해당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자랑한다. 기술 혁신과 규제 혁파, 정부 지원, 인재 양성을 표방한 ‘중국제조 2025’를 뚝심 있게 추진한 결과다. 인공지능(AI)·휴머노이드·우주 등 16개 첨단산업에 초점을 맞춘 담대한 ‘제조 2035’ 프로젝트가 다음 바통을 이어받는다.

미중 협공에 우리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고 있다. 초격차 첨단산업이 전통 제조업을 이끌어야 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장착한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바통 터치를 해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당정은 파업을 조장하는 노란봉투법, 기업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법 개정 시리즈를 속전속결로 통과시킨 데 이어 주 4.5일제, 정년 연장 법제화도 서두르고 있다. 피 튀기는 적자생존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통상 현실은 외면한 채 노조에 영합하는 기울어진 법안과 거미줄 규제를 양산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는 개별 기업 혼자서는 대응이 불가능한 ‘국가 대항전’ 뉴노멀 시대로 접어들었다. 기업과 정부·국회가 의기투합해 손을 맞잡아도 승산을 담보할 수 없다. 노조와 강성 지지층을 겨냥한 ‘기업은 악(惡), 노조는 선(善)’이라는 왜곡된 ‘동굴 우상’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언제까지 낡은 이념과 진영 논리로 뒤틀린 썩은 동아줄을 움켜잡고 있을 건가. 테메레르 범선(전통 산업)을 이끌며 바통을 이어받아야 할 예인선(첨단산업)마저 서서히 심연으로 침몰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가 그린 ‘해체를 위해 예인되는 전함 테메레르’ 1839년. 사진 제공=런던 내셔널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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