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이 시작된 지 사흘째인 1일 인천항을 통한 크루즈 관광객 입국은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온라인을 중심으로 ‘장기매매 괴담’ 등 각종 음모론과 범죄예고 글까지 확산되며 사회적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인천항만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중국 선사 톈진동방국제크루즈 소속 7만7000톤급 ‘드림호’가 인천항에 입항했다. 당시 약 2600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인천과 서울 일대를 관광한 뒤 당일 천진으로 귀국했다.
정부는 지난달 29일부터 내년 6월 30일까지 중국인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을 한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국내·외 전담여행사가 모집한 3인 이상 중국인 단체 관광객은 최대 15일간 무비자로 한국에 머무를 수 있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11월부터 한국인에게 무비자 입국을 허용해온 중국에 상응하는 호혜 조치라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10대 사이서 확산되는 ‘장기매매 괴담’
하지만 제도 시행 직후부터 온라인에서는 “중국인들이 한국에서 장기매매를 한다”는 식의 괴담이 퍼지고 있다. 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10대들 사이에서 계속 퍼지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이미지 한 장이 공유되고 있다. 사진 속 글에는 “중국 무비자로 입국해 남녀노소를 납치해 장기매매를 한다”는 자극적 주장이 담겼고, ‘중국인 무비자 입국 재검토’ 청원 동의를 촉구하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실제 일부 청소년들 사이에서 공유되며 불안감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분위기를 틈타 중국인 무비자 관광객을 겨냥한 범죄 예고 글까지 등장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은평경찰서는 “중국인 무비자 관광객이 1일 아침 7시 모든 학교 앞에서 칼부림한다”는 글이 올라왔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경찰은 해당 글이 관광객을 직접 겨냥한 협박성 예고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작성자 IP를 추적 중이며 학교 주변 순찰을 강화하는 등 긴급 대응에 나섰다.
불안감은 거리 집회로 번졌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서는 약 100여 명이 모여 ‘중국인 무비자 입국 반대 집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반중멸공” 구호를 외치며 정부의 무비자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대표적 음모론, 검증해 보니 ‘가짜뉴스’
온라인에 퍼진 대표적 음모론은 두 가지다.
가장 먼저 “무비자로 중국인 2000만 명이 들어온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무비자 시행을 통해 올해 외국인 관광객 2000만 명 돌파를 기대한다"고 밝힌 내용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무비자 시행 첫날인 지난달 29일 입국한 중국 단체관광객은 약 2600명이다.
또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로 불법체류 목적 입국자가 발생한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전산망 마비로 전자여행허가(K-ETA) 사이트 일부 기능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자 퍼진 얘기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번 무비자 입국 대상자는 K-ETA와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법무부는 이번 무비자 단체관광객이 국내 전담 여행사를 통해 사전 심사 절차를 거친다고 설명했다. 여행사는 입국 24시간(선박 입국 시 36시간) 전까지 관광객 명단·체류지·여권 정보를 법무부 산하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하이코리아’ 시스템에 제출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불법체류 전력자는 걸러진다.
법무부 관계자는 “(무비자로 들어오는) 관광객에 대해 출입국관리법 위반 여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수배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고위험군 여부를 판단하는 등 사전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광객 무단 이탈 방지를 위해 여행사에 대한 책임도 강화됐다. 단체 관광객이 이탈해 불법체류자가 발생할 경우 전담 여행사 지정이 즉시 취소되며 무단 이탈률이 분기별 평균 2% 이상일 때도 지정이 해제된다. 기존 5% 기준보다 크게 강화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무비자 제도를 도입하면서 무단이탈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자는 차원에서 지정 취소 기준을 높였다"며 “여행사 입장에서는 굉장히 보수적인 기준으로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도 음모론 확산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일 야권 일각과 온라인에서 국정자원 전산실 화재와 중국인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을 연관 짓는 주장이 퍼지는 데 대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김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국가정보자원 화재를 무비자 입국 문제와 억지로 끌어다 붙이며 국민 불안을 선동하고 있다”며 “전산망 문제와 출입국 심사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실과 다른 억지 주장일 뿐 아니라 특정 국가 국민을 겨냥하는 건 위험한 외국인 혐오”라며 “지금 필요한 건 혐오와 정쟁이 아니라 국익과 민생”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시급한 것은 내수 살리기와 관광산업 회복”이라며 “부산과 대구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수개월 전부터 중국 단체관광객 특수를 위해 철저히 준비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혐오와 불안 조장은 지역의 노력을 짓밟고 경제와 국익을 해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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