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주요 연극상을 휩쓸며 관객과 평단의 주목을 받은 창작 연극 ‘퉁소소리’가 이달 5일~28일 다시 무대에 오른다. 서울시극단은 앵콜 공연을 앞두고 개막에 앞서 최근 언론을 대상으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시사회를 열었다.
퉁소소리는 스타 연출가 고선웅 서울시극단장이 조선 문인 조위한의 고소설 ‘최척전(1621)’을 각색해 만든 작품이다. 초연 당시 탄탄한 서사와 해학적인 연출, 국악 라이브 연주가 어우러지며 호평을 받았다. 서울시극단이 제작하는 만큼 안정적인 제작 환경 속에서 무대 장치와 의상, 음악까지 다채로운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선사한다.
이번 무대는 초연보다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배우들의 호흡과 무대 전환의 속도감을 끌어올려 한층 매끄럽게 완성됐다. 가족의 애끓는 사랑과 전란 속 눈물, 그리고 이를 웃음으로 녹여내는 힘이 작품의 핵심이다. 신파적인 요소를 품고 있으면서도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해학과 유머가 비극성을 중화시켜주며 관객에게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선사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16세기 말~17세기 초의 전란기를 배경으로 평범한 평민 가족의 파란만장한 삶을 따라간다. 주인공 최척과 아내 옥영은 전쟁으로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며 무려 30년에 걸친 긴 세월 속에서 흩어지고 재회한다. 일본과 명나라, 베트남, 중국 등 국경을 넘나드는 이 작품은 원작자인 조위안이 직접 이야기꾼으로 등장하는 액자식 구성을 갖췄다. 원로 배우 이호재가 스토리텔러 역을 맡아 자칫 산만할 수 있는 방대한 서사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준다.
1부는 최척과 옥영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전쟁이 끝난 뒤 혼인해 첫 아들을 얻으며 잠시 행복을 누리지만, 곧 정유재란이 발발하면서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옥영은 일본으로, 최척은 명나라로 끌려가지만 결국 먼 이국 안남(베트남)에서 극적으로 다시 만난다. 재회의 순간 매개가 된 것은 바로 최척이 아내에게 불어주던 퉁소 소리다. 그러나 명·청 전쟁이 터지며 또다시 이별이 찾아온다.
여성 캐릭터들의 주도적인 활약이 돋보이는 2부에서는 극의 긴장감과 감정선이 한층 고조된다. 옥영이 둘째 아들 내외와 함께 나머지 가족을 찾아 험난한 뱃길을 떠나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중국인인 둘째 며느리 홍도는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한다. 그는 “오머니(어머니) 괜찮아, 다이죠부, 메이꽌시~ 우리 살아 있어야 돼”라고 외치며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옥영을 끝없이 격려한다. 조선 후기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진취적이고 강인한 여성상들이 무대를 이끈다.
20여 명의 배우가 찰떡같이 호흡을 맞추며 무대를 휘어잡는 동안 국악 라이브 밴드는 극의 울림을 배가시킨다. 퉁소의 투박하면서도 깊은 소리, 양금과 해금의 애절한 선율, 거문고와 가야금이 만들어내는 풍성한 울림이 무대를 감싼다. 북을 비롯한 타악기는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전란의 혼돈과 민초들의 역경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장태평 음악감독은 “전란의 상흔을 위로하고 민중의 자취를 담기 위해 여섯 악사가 이야기와 호흡한다”고 설명했다.
‘퉁소소리’의 메시지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하다. 아무리 큰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해학과 유머를 잊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고,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의 서사다. 연극 평론가 이은경은 “‘퉁소소리’는 서구 고전 못지않은 우리 고전 콘텐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세련되고 스펙터클한 무대 미학과 전통 서사가 잘 어우러져 K연극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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