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3일 중국 베이징에서는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북중러 지도자가 66년 만에 한자리에 모여 반미 연대를 조직적으로 형성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지금 전 세계가 격동의 회오리 속에 처했다. 가장 큰 원인은 미국 중심의 일극 질서가 불완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정신 바짝 차리고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엔(UN)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 상징되는 범세계적 공공재 창출을 주도하며 세계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왔다. 그 이면에는 한때 약 50%까지 달했던 경제 비중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 자연스레 달러 중심의 기축통화 체제를 모든 국가가 추종했다. 특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이념을 국가 발전의 보편적인 모델로 각국에 전파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창설도 주도, 세계화의 물결을 이끌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사의 변곡점이 됐다. 개혁·개방과 WTO 체제의 최대 수혜국으로서 질주하던 중국도 체질 개선을 위해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다국적기업들은 자구 노력의 일환으로 자발적 기술 이전을 진행했고 중국 등 개도국들은 약진했다. 그 결과 2013년 전 세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 달러를 돌파했다. 특히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브릭스(BRICS) 5개국의 경제력 총량은 GDP 25조 달러, 무역 규모 8조 6000억 달러로 미국에 근접한 상황이다.
재집권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놓고 중국을 때리고 있다. WTO 체제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상호관세를 무기로 동맹국까지도 압박하고 있다. 기술 장벽도 강화했다. 트럼프의 행태는 미국의 법치가 권치(권력자 전횡 통치)로 변질되고 있다는 인식을 주고 있다. 옛 사회주의권을 권위주의 국가로 공격할 명분이 약해졌다. 더 우려되는 것은 미국의 분열이다. 지난해 출간된 소설 ‘원더풀 랜드’, 같은 해 상영된 영화 ‘시빌 워 : 분열의 시대’는 미국이 두 동강 나는 것으로 묘사했다. 동맹국들의 이반 조짐은 없을까. ‘피크 차이나’도 가능하지만 ‘피크 아메리카’도 있을 수 있다.
중국 주도의 세계 질서도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전승절 행사에서 연출된 중국의 이미지는 ‘신황제국으로의 회귀’로 비쳐졌다. 시 주석이 빨간 카펫 위에서 참가자 전원을 영접한 것이 하이라이트였다. 특히 시 주석, 푸틴 대통령, 김 위원장 등 권위주의 대표 지도자 3인이 무대를 장악해 서방 세계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문제는 경제 통상 국가를 지속해야 할 우리나라다. 안미경중(安美經中) 논란에만 빠져있을 때가 아니다.
세계에는 아직도 개발 국가들이 많다. 1인당 GDP 1만 달러를 돌파하지 못한 국가가 100여 개다. 이들은 발전에 목말라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인구 5000만 명 이상, 1인당 GDP 5000~1만 5000달러 국가들을 더욱 주목해야 한다. ‘브릭스+5(인도네시아·멕시코·베트남·튀르키예·태국)’ 같은 나라들이다. 이들 10개국 인구는 딱 세계의 절반이다. 과거 17년간의 발전 경로를 추적해본 결과 이들 국가의 가중 평균 경제성장률은 5.1%였다. 세계 평균치 2.7%의 약 2배다.
이 경로를 막 지난 우리나라에 관심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한국은 장기간 남북한 대치 상태에 놓여 있지만 이런 상황이 역설적으로 제조업 분야에서 민수와 군수산업이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우리는 앞으로 경제 영역을 선진국가권과 발전국가권으로 나누고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맞춤형 협력을 강화해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서야 한다. 특히 대미 정책은 이웃 일본뿐 아니라 유럽연합(EU) 개별 국가들과 정책 공조를 펼 필요가 있다. 미국 등 선진국들과의 협력에만 ‘올인’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세계는 넓고 ‘아직도’ 할 일은 많다. 경제 통상 외교력 강화와 함께 IMF 위기 극복 때처럼 전 국민이 예지를 모아 실천한다면 못 풀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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