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고생 많았고 대견하다고 하면서 ‘이제 진짜 시작이다’라고 얘기했어요.”(고지우)
“언니한테 ‘이번에는 내가 밥 살게’라고 얘기할 수 있어서 정말 뿌듯했죠.”(고지원)
지난달 고지원(21·삼천리)의 제주삼다수 마스터스 우승은 ‘고자매’한테는 물론이고 한국 골프에도 큰 사건이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한 시즌 자매 우승’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두 살 위 언니인 고지우(23·삼천리)가 6월 맥콜·모나 용평 오픈에서 통산 3승째를 거두고 고지원이 2023년 데뷔 후 첫 승을 하면서 없던 기록이 탄생했다.
최근 경기 용인의 한 대회장에서 만난 자매는 기록 달성의 순간을 어제 일처럼 떠올리며 웃음꽃을 피웠다. “우승은 동생이 했는데 18번 홀 그린에서 기다리던 제가 완전 눈물 바다였어요.”(지우) “언니가 원래 눈물이 많아요. 그걸 알고 있는데도 너무 많이 울고 있으니까 그 모습 보니 저는 너무 웃긴 나머지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지 뭐예요.”(지원)
MBTI(성격 유형 검사) 하면 둘 다 ISFJ(수호자, 헌신적이고 따뜻한 보호자)로 나오지만 자매는 “우리는 겉모습과 걸음걸이 빼고는 다 다르다”고 강조한다.
제주 출신 자매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잘했다. 합기도장을 운영했던 아버지 영향에 합기도를 했고 육상도 했다. 그러다 골프도 하게 됐고 재능을 발견해 선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고지원은 “중학교 때까지는 언니가 사용했던 클럽을 물려받아서 썼다. 그 뒤로는 용품 지원을 받게 되면서 제 클럽이 생겼다”며 “언니는 정말 골프랑 운동, 딱 이 둘뿐인 사람이다. ‘K장녀’ 마인드가 탑재돼 있어 훈련 가면 제 머리까지 감겨줬다”고 돌아봤다.
딸 둘을 골프 시키려면 여간 돈이 많이 드는 게 아니다. 더욱이 자매의 동생도 운동(축구)을 한다. 어머니는 교사로, 아버지는 완도에서 양식업을 하며 열심히 돈을 벌었다. 자매는 어릴 때부터 철이 들었나 보다. 학교 마치면 버스를 세 번씩 갈아타고 골프 연습장에 다녔다. 고지우는 “골프백을 메고 버스 탄 적도 많다. 1시간에 한 번 오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몇 분 안에 3㎞를 전력질주해야 했다. 지원이 손잡고 거의 끌고 가다시피 뛰었다”고 돌아봤다. 고지원은 “저는 그냥 다음 버스 타자 할 때도 있었는데 언니는 절대 안 된다면서 제 손 붙잡고 엄청 뛰었다. 덕분에 그 버스를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자매는 “그때 체력 훈련이 많이 됐던 것 같다”며 서로를 보며 까르르 웃었다.
동생이 들려준 것처럼 고지우는 K장녀 그 자체였다. 해외 훈련 때 동생이 쉬고 있으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며 일으켰다. 휴대폰도 못 만지게 했다고. 그때 언니가 고1, 동생은 중2였다. 고지우는 “어렸지만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는 마음이 너무 컸다. 그러려면 미친 듯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었다. 남들 10시간 하면 우리는 20시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일일이 따라다니며 돌봐줄 수 없던 부모가 야속하지는 않았을까. 고지원은 “그런 것은 없었다. 각자 다 힘든 상황이라고 받아들였다”고 했다. 고지우도 “정말 각자 다 바빴고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자매는 “지금 생각해도 엄마 아빠 진짜 대단하다”며 눈을 맞췄다.
남동생은 K리그 FC서울 유스팀 미드필더 고필관이다. 차범근축구상을 받을 만큼 어릴 때부터 유망했다. 고지우는 “막내가 요즘 저희를 보면서 ‘나만 잘하면 되겠다’고 얘기한다. 삼남매가 서로 좋은 자극이 되고 있다”고 했다. 고지원은 “언니가 먼저 잘 돼서 좋은 것 같다. 엄마 입장에서는 언니가 본보기가 돼야 동생들이 따라간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언니가 먼저 우승하고 잘 돼서 이렇게 좋은 방향으로 잘 가고 있지 않나 싶다”고 했다.
고지우는 버디 수 1위 등의 기록으로 ‘버디 폭격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고자매’ 말고 그럴듯한 자매의 별명을 하나 지어보자는 제안에 고지원이 말했다. “언니 별명이 버디 폭격기니까 저도 그쪽으로 따라갈게요. ‘폭격기 자매’ 좋지 않아요?” 언니는 “좋다, 좋다”며 맞장구쳤다.
주니어 때 둘은 ‘같이 정규 투어 다니기’와 ‘챔피언 조에서 만나 우승 경쟁하기’를 목표하고 약속했다고 한다. 이제 챔피언 조 우승 경쟁이 남았다. 고지원은 “언니가 3승이니까 제가 먼저 이겨야 하지 않겠느냐”며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언니의 승리욕과 근성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고지우는 “저는 가끔 감정적일 때가 있어서 동생의 단단한 멘털을 저도 갖추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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