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아 고(뉴질랜드)는 다른 선수들보다 그립을 1~2인치 짧게 잡고 친다. 많은 교습가들도 정확하게 핀을 공략해야 할 때는 살짝 내려 잡으라고 조언한다.
그립을 내려 잡으면 비거리와 방향성에는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이론적으로는 그립을 짧게 잡으면 클럽 스피드가 줄면서 비거리가 감소한다. 하지만 이는 스윙 머신으로 때렸을 때 얘기다. 콘택트가 불안정한 일반 아마추어 골퍼들은 그립을 짧게 잡으면 좀 더 페이스에 정확하게 볼을 맞힐 확률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거리가 늘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프로 중에서도 LIV 골프에서 뛰고 있는 앤서니 김(미국)은 전성기 시절 짧은 그립으로 장타를 펑펑 날렸다. 반대의 추측도 가능하다. 그립을 내려 잡는 게 어색하거나 스윙에 악영향을 미쳐 거리와 방향성에 마이너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드라이버 1.5인치 짧게 잡자 ‘거리는 최대, 구질은 드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어느 정도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핑골프 본사 스튜디오를 찾았다. 핑 테크팀의 한동현 사원이 그립을 바꿔가면서 때려보기로 했다. 그는 평소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 스코어를 유지한다고 했다.
먼저 드라이버부터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핑 G440 LST 모델 45.5인치 드라이버를 일반 그립(45.5인치), 1인치 짧게 잡은 그립(44.5인치), 1.5인치 짧게 잡은 그립(44인치) 순으로 5회씩 때렸다. 새로운 그립을 잡을 때는 테스트 전 충분히 적응 시간을 갖도록 했다.
평균 샷 거리를 살펴보니 일반 그립은 281.0야드, 1인치 짧은 그립은 275.5야드, 1.5인치 짧은 그립은 282.4야드였다. 이론과 달리 1.5인치 짧게 잡았을 때 가장 멀리 날린 것이다. 클럽 스피드는 1인치 짧게 잡았을 때가 가장 높았지만 샷 거리에 그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정타의 정도를 보여주는 스매시 팩터도 1.5인치 짧게 잡았을 때 1.47로 가장 높았다. 나머지 일반 그립과 1인치 짧은 그립의 스매시 팩터는 1.46이었다. 그만큼 1.5인치 내려 잡았을 때 좀 더 정확하게 스위트 스폿에 볼을 맞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샷
분포도를 살펴봤더니 역시 1.5인치를 내려 잡았을 때 가장 밀집도가 높았다. 반대로 클럽 길이가 가장 긴 일반 그립일 때 샷 밀집도가 가장 낮았다. 그립을 1.5인치 내려 잡았을 때는 샷이 상대적으로 왼쪽으로 향하는 드로 구질을 보인 점도 특징이었다.
한동현 사원은 “1인치를 내려 잡아보니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금방 적응이 되면서 좀 더 빠르게 휘두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1.5인치 짧게 잡자 나도 모르게 더 강하게 휘둘렀다. 컨트롤도 나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험 진행과 분석을 맡은 김의진 핑 테크팀 대리는 “샷 분포도를 보면 그립을 짧게 잡을수록 샷이 왼쪽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이는 클럽 길이가 짧아질수록 헤드가 빨리 돌아오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아이언은 반대 결과 “동적인 라이각 변화가 원인”
우리는 아이언으로도 실험했다. 핑의 올해 하반기 신제품인 i240 아이언으로 때렸다. 7번 아이언 기준으로 37인치 길이가 스탠더드인데, 우리는 38인치 클럽을 하나 더 준비했다. 38인치와 37인치 아이언, 그리고 37인치 아이언을 1인치 내려 잡고 각 5회 때렸다.
테스트 결과 38인치와 37인치 아이언 샷에서는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평균 샷 거리는 각각 193.5야드(38인치), 193.4야드(37인치)로 사실상 같았다. 샷 분포도 역시 대동소이했다.
그런데 37인치 아이언을 1인치 내려 잡고 때린 샷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평균 샷 거리가 192.1야드로 1야드 이상 줄었다. 보다 의미 있는 변화는 방향이었다. 샷이 상대적으로 우측으로 밀렸다.
한동현 사원은 “아이언을 1인치 짧게 잡았을 때는 잘 맞은 샷도 우측으로 밀렸다. 스윙은 약간 깊이 들어가는 듯하면서 때론 뒤땅을 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헤드 무게도 덜 느껴지면서 안정감이 떨어졌다”고 했다.
김의진 대리는 “아이언 그립을 짧게 잡으면 볼에 좀 더 다가서게 되고 몸은 약간 서게 된다. 그러면 동적인 라이각이 변한다. 이런 영향으로 1인치 짧게 잡았을 때 샷이 우측으로 향하는 경향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드라이버와 아이언의 방향 변화를 보면 드라이버는 짧아질수록 왼쪽, 아이언은 짧아질수록 우측으로 향하는 반대 현상을 보였다. 이에 대해 김기환 남서울CC 로직골프아카데미 원장은 “드라이버는 티 위의 볼을 어퍼 스윙으로 때리고, 아이언은 지면에 놓인 볼을 업라이트한 각도로 내려 친다. 이런 차이 때문에 아이언이 라이각에 따른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원희 핑 테크팀 팀장은 “그립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실제 클럽 길이가 달라지고 그로 인해 스윙 웨이트에도 변화가 생겨 헤드 무게감이 변한다”며 “스윙 머신과 달리 사람은 이런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골퍼마다 결과도 다양하다”고 했다.
이번 호기심 해결소 실험 결과는 이렇다. “그립을 짧게 잡으면 콘택트가 어느 정도 정교해지는 걸 기대할 수 있다. 단, 방향 변화도 감안해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