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인공지능(AI) 보급 확대에 따른 전력수요 급증과 에너지 안보에 대응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을 늘리기로 하면서 관련 기업들의 인력 채용과 사업 확장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전체 에너지원에서 10% 미만에 그치는 원전 비중을 2040년까지 2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미쓰비시중공업은 내년도 입사자를 뽑는 ‘2025년도 채용’에서 원전 관련 인력을 역대 최대치인 200명 이상 선발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의 원전 인력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 약 5000명에서 사고 직후 1000명까지 급감했으나 최근 4400명 수준으로 회복됐다. 직원을 늘리는 만큼 사업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미쓰비시중공업과 차세대로를 공동 개발하는 간사이전력이 올 7월 후쿠이현 ‘미하마 원전’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첫 원전 신설을 위한 지질 조사 시작과 신형 경수로 도입 방침을 발표하면서 이 같은 움직임이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닛케이는 “조사 결과는 몇 년 후에야 나올 것으로 전망되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은 장래의 수주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인력을 늘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외 원전에 설비를 공급하는 IHI도 관련 사업 인력을 현재 800명에서 2030년 1000명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이 회사는 원전 장비 공급과 함께 일본 내 기존 원자로 재가동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공장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IHI는 출자사인 미국 신생 기업 뉴스케일파워의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용 격납 용기 등의 생산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요코하마 공장 내 중단됐던 일부 라인을 재가동하고 설비투자도 추진한다.
기업들의 원전 사업 확대는 일본의 전력수요 급증 전망에 따른 것이다. 일본의 국가 인가 법인인 전력광역운영추진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2050년 일본의 전력 수급은 최대 1조 2500억 ㎾h로 2019년(8800억 ㎾h) 대비 40%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 기관은 2050년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등 디지털·반도체 산업에서 약 2000억 ㎾h, 자동차 산업에서 750억 ㎾h의 전력수요 증가를 가정했다. 특히 2050년 전력 수급을 4개 구간(9500억 ㎾h, 1조 500억 ㎾h, 1조 1500억 ㎾h, 1조 2500억 ㎾h)으로 나누고 노후 화력발전소 교체 유무에 따라 총 16개 시나리오를 검토한 결과 전력 수급이 가장 부족한 여름 야간을 기준으로 13개 시나리오에서 ‘전력 부족’이 예상됐다.
하야시 긴고 전기사업연합회 회장은 “노후 화력발전을 모두 교체하고 원전을 최대한 오래 가동해도 전력이 부족할 수 있다”며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에 큰 위기감을 갖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일본 정부가 에너지 정책 방향을 대대적으로 전환하면서 기업들의 원전 사업 확대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올 2월 각의에서 결정한 제7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원전을 포함한 탈탄소 전원의 최대 활용을 명기했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지속해온 ‘가능한 한 원전 의존도를 줄인다’는 문구를 삭제하고 폐로 결정 원전이 있는 발전소 내에서 차세대형 원전으로의 교체 등을 추진한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일본 자원에너지청이 발표한 기본계획을 보면 2023회계연도 기준 8.5%였던 전체 에너지원 중 원전 비중은 2040회계연도까지 20%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20%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재가동이나 신·증설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일본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력발전 비중을 68.6%에서 30~40%로 낮추고 재생에너지(40~50%)를 포함한 원전 등 탈탄소 전원을 최대 70%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탈원전을 택했던 주요국들의 원전 회귀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본 내 전문 인력 고갈도 기업들의 채용 및 사업 확대 필요성을 키우고 있다. 일본원자력산업협회에 따르면 정년퇴직 등 자연 감소로 주요 기업의 원전 관련 인력 부족이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협회 조사에서 기업의 17%가 ‘필요 인력의 절반 이하만 확보했다’고 답했고 ‘필요 인원보다 20~30% 부족하다’는 응답은 50%에 달했다. 원전 산업에 관심을 갖는 인재 자체도 줄었다. 일본 정부의 원자력백서에 따르면 2024회계연도 원자력 관련 학과·전공 입학자 수도 177명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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