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열릴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는 북한이 존재감을 과시할 최적의 무대다. 북한·중국·러시아의 3각 연대 가능성만으로도 서방세계에는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북중러 연대가 실현될 공산이 크지 않더라도 중국 견제를 최우선 과제로 꼽아온 미국을 자극해 결과적으로 한미 동맹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1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위원장은 이날 평양을 출발해 2일 베이징에 도착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는 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베이징 톈안먼 망루에 나란히 올라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를 지켜보게 된다.
냉전 이후 처음으로 북중러 최고지도자가 한자리에 모이는 광경을 연출하게 될 김 위원장의 노림수는 우선 소위 3각 연대를 구축해 ‘반미 그룹’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아무리 표면적인 연대라 해도 3국을 주시해온 미국 등 자유 진영에는 큰 위협이고, 북한 입장에서는 대내외에 영향력을 뽐낼 기회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중국과 러시아는 궁극적으로는 경쟁 관계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이 강력한 상황에서는 연합하는 수밖에 없다”며 “미국을 앞에 두고 기본적으로 북중러 협력 분위기를 계속 가져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일각에서 예상하는 3자 회의 또는 정례적인 협력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강 교수는 “국제적 영향력을 주도하려는 중국 입장에서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프레임에 갇히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차피 러시아 외에도, 북한에 대해서도 ‘갑’인 중국이 나서서 3국을 묶을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행사 참석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료된 후 북한의 활로를 열어줄 디딤돌이기도 하다. 북한은 지난해 러·우 전쟁 파병을 통해 러시아와 혈맹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중국과는 2019년 1월의 정상회담을 끝으로 소원한 관계였다. 러·우 전쟁이 종료되면 북한으로서는 러시아로부터 예전만한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만큼 북중 관계 회복이 필요한 시점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명예교수는 “북한이 이번 전승절 행사에서 외형상 북중러 연대를 부각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북중 관계 복원에 방점을 찍고 중국과 경제협력을 논의할 것”이라며 “김 위원장의 방중 기간 중국의 경제·산업 분야 현장 방문이 예상되고, 향후 북중경제협력위원회 등을 재구성하려 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과의 관계 재개, ‘표면적인’ 3각 연대는 향후 북미대화·남북대화 등이 재개될 때를 위한 지렛대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후보자 시절부터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김 위원장과의 대화 의지를 밝혀 왔다. 이재명 정부도 전임 정부와 반대로 유화적인 대북 조치를 잇따라 취하고 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서는 비교적 열려 있으나 남북대화 재개에는 철저히 선을 긋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이 무기한 연기되거나 중단돼야만 남북대화에 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김 위원장은 방중을 코앞에 두고 미사일 생산 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새로 조업한 중요 군수기업소 미사일 생산 공정을 시찰했다고 1일 보도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개된 사진 속의 화성-11가, 화성-11나 계열 전술유도탄은 모두 전술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모델”이라며 “핵무기를 다량 배치해 운용하는 ‘중견 핵보유 국가’로서 위상을, 또 동북아에서 중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략적 지위를 갖는 국가라는 점을 과시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결과적으로 한미 동맹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최우선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중러의 대면을 바라보는 한미 시각이 엇갈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북한 도발이 더 우려되는 만큼 북한 억제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반면 미국은 거꾸로 중국의 위협이 더 커지는 만큼 한미 동맹을 전반적으로 조정하자는 주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미의 대북 억제력 약화든, 혹은 한미 간 이견 심화든 북한으로서는 반길 만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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